국내 기업 발목 잡는 징벌적 상속세, 총선 이후 수술대 오를까
국내 상속세, 기업에 최대주주 할증과세 적용 '실제 상속세율' 60%
한미약품그룹-OCI그룹 통합 신속 추진 배경도 상속세 문제 영향
과도한 상속세 부담으로 경영권 위협 및 기술개발(R&D) 발목 우려
故(고) 조석래 효성 명예회장이 타계하면서 오너 일가에 부과될 상속세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조 명예회장이 보유한 계열사 지분 가치가 7,000억원을 상회하는 만큼 상속세만 최소 4,000억원이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에 재계에서는 효성가의 상속세가 ‘징벌적 상속세율 완화’ 논의에 다시 한번 불을 지필지 주목하는 모양새다. 이런 가운데 재계 일각에서는 이번 총선 후에 세법 개정에 대한 행방이 가려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효성 오너 일가, 4,000억원대 상속세 마련해야
2일 재계에 따르면 조 명예회장이 보유한 효성 지분은 213만5,823주로 지분율은 10.14%에 달한다. 주요 계열사인 효성티앤씨의 경우 39만3,391주(9.09%), 효성중공업 98만3,730주(10.55%), 효성첨단소재 46만2,229주(10.32%), 효성화학 23만8,707주(6.16%)를 각각 보유하고 있다.
조 명예회장의 별세일인 지난달 29일 기준 효성의 종가는 주당 6만3,700원, 효성티앤씨 32만4,500원, 효성중공업 28만4,000원, 효성첨단소재 34만2,000원, 효성화학 6만2,800원이다. 이를 기준으로 할 경우 조 명예회장의 지분 가치는 약 7,200억원으로, 발생하는 상속세만 무려 4,300억원 수준이 될 것으로 추산된다.
이에 추모 기간 동안 한켠에선 ‘징벌적 상속세’ 논란이 일고 있다. 비단 조 명예회장뿐만 아니라 국내 재계의 큰 별이 질 때마다 상속세 논란은 반복돼 왔다. 2020년 타계한 이건희 삼성 선대 회장의 유산 약 26조원에 부과된 상속세는 12조원에 달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을 비롯한 유가족은 상속세를 내기 위해 주식을 담보로 대출을 받고 계열사 지분도 팔았다.
2022년 별세한 김정주 넥슨 창업자의 유산은 10조원 규모였고 상속세는 약 6조원이었다. 상속세 재원 마련에 어려움을 겪은 유가족은 넥슨 지주회사 NXC의 지분 약 30%를 정부에 상속세로 물납했다. 상속세 납부로 얼떨결에 NXC의 2대 주주가 된 기획재정부는 NXC 지분을 매각한다는 방침이지만 아직 인수자를 찾지 못하고 있다. 만약 정부가 가지고 있는 NXC의 지분이 해외 자본으로 유출된다면 경영권과 관련한 분쟁이 일어날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
세계 최고 수준 상속세율에 ‘조세불복’도 증가세
현행 상속세는 사망자의 유산을 기준으로 10~50%의 5단계 초과누진세율로 과세하고, 최대주주 등으로부터 주식을 상속받을 경우에는 평가액에 할증평가(20% 가산)를 적용해 최대 60%의 세율이 적용된다. 이는 고세율 국가로 평가되는 일본(55%)·프랑스(45%)·미국(40%)·독일(30%) 등과 비교해 훨씬 높다. 한국의 상속세 최고세율은 그동안 꾸준히 상승했는데 이는 해외 주요국의 흐름에 역행한 것이다.
실제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38개 회원국 중 15개국은 상속세를 부과하지 않고 있고, 상속세를 부과하는 23개국의 경우에도 직계비속에게는 세율을 경감하거나 면제해 주는 국가가 대부분이다. 캐나다는 이중과세 문제 해소를 위해 1972년 상속세를 폐지하고 자본이득세로 전환했고, 미국은 55%에서 50%, 이어 35%까지 낮췄다가 2012년에 40%로 고정했다. 상속세를 세계 최초로 도입한 영국은 상속세 최고세율을 40%에서 20%로 대폭 낮추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 스웨덴의 경우 상속세 대신 상속인이 상속 재산을 처분하는 시점에 세금을 물리는 자본이득세를 도입했다.
이에 우리 기업들은 지난 수년 동안 꾸준히 상속세 부담 완화를 건의해 왔지만, 관련 제도가 개정된 2000년 이후 24년간 개혁이 전무한 상태다. 이렇다 보니 납세자가 상속세에 불복해 조세 심판을 제기하는 사례도 증가하고 있다. 1일 조세심판원에 따르면 지난해 심판원이 취급한 상속세 조세 불복 건수는 307건으로 전년 대비34.6% 급증했다. 이는 관련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2008년 이후 최고치다. 이 가운데 지난해 새로 제기된 조세 심판 건수만 235건으로 1년 전과 비교해 89.5% 증가했다.
기술 수출 ‘8조원’ 기록한 한미약품도 상속세에 발목
최근 불거진 한미약품그룹의 경영권 분쟁도 오너 일가에 부과된 5,400억원의 상속세가 시발점이었다. 송영숙 회장과 장녀 임주현 부회장 측이 수천억원에 이르는 상속세 문제 해결을 위해 지난 1월 OCI그룹과 통합을 추진하자, 장남인 임종윤 전 한미사이언스 사장과 차남 임종훈 전 한미약품사장 형제가 회사를 상대로 법원에 통합 작업을 중단해 달라는 가처분 신청을 하면서 갈등이 극단으로 치달았다. 만약 통합이 이뤄졌다면 송 회장은 본인 지분과 가현문화재단 지분 744만674주를 OCI그룹에 매각해 2,775억원의 현금을 쥐게 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경영권 분쟁 패배와 OCI그룹 통합 무산으로 모녀 측은 물론, 승기를 잡은 형제 측도 새로운 해법을 찾아야 하는 상황이 됐다.
경영권 분쟁이 일기 전까지 한미약품은 한국을 대표하는 우량 기술 기업이었다. 2015년 한 해에만 글로벌 제약 업체들과 6건의 계약을 맺었고, 총 8조원 규모 기술 수출에 성공하기도 했다. 하지만 2020년 고(故) 임성기 한미약품그룹 창업주의 타계 이후 대주주들이 상속세 문제 해결에 매달리면서 신약 개발이 부진에 빠지고 연구개발(R&D) 투자도 지연되고 있다. 심지어 핵심 연구 인력도 빠져나가고 있는 상황이다. 한미그룹이 상속세에 발목 잡혔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재계는 이같은 상속세 리스크가 기업 매각 또는 경영권 위협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우려한다. 실제 2012년 4조원 규모였던 상속세 징수액은 10년 만인 2021년 15조원 규모까지 급증했고, 과중한 상속세는 소득재분배라는 정책 효과보다는 기업 투자와 개인 소비를 위축시키며 국가 경제 성장을 옭아매고 있다.
이에 정부는 유산취득세 전환과 공제액 상향을 검토 중이다. 앞서 윤석열 대통령의 상속세 완화 언급이 있었던 만큼 재계에서는 기대감이 커지는 분위기다. 현재 기획재정부는 상속세 개편팀을 편성해 다양한 논의와 검토를 이어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재계에서는 상속세를 둘러싼 논의의 향방은 총선 이후에나 윤곽이 드러날 것으로 보고 있다. 야당 측이 상속세 완화를 두고 선거용 감세라고 지적하며 못마땅한 기색을 내비치고 있기 때문이다. 여당이 승리할 경우 상속세를 포함한 세제 개편안에 속도가 붙겠지만, 야당이 다수를 점할 경우 동력을 상실할 수밖에 없다는 시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