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조원으론 부족해” 정부 수출입은행 추가 출자 요구하는 방산업계, 기획재정부 ‘난감’
정부, 수출은행법 개정 이후 2조원 대규모 출자 예정
"폴란드 계약 생각하면 부족" 추가 출자 주장하는 방산업계
방산 지원에 총력 기울이는 세계 각국, 지금이 터닝 포인트?
수출입은행법 개정으로 수출입은행(Export-Import Bank of Korea, 이하 수은)의 법정 자본금 한도가 대폭 늘어난 가운데, 방산업계가 연 4조원 대규모 정부 출자를 요구하고 나섰다. 올해 2조원 규모 현물 출자를 단행하겠다는 정부에 추가 출자를 요청한 것이다. 폴란드와 추진하는 수출 계약 건 등을 고려하면 정부의 출자 계획만으로는 금융 지원이 부족하다는 주장이다.
수출입은행법 개정 통해 대규모 출자
지난 2월, 국회는 수은의 법정 자본금 한도를 15조원에서 25조원까지 확대하는 내용의 수출입은행법 개정안을 통과시킨 바 있다. 개정안 통과 이전 수은의 자본금은 약 14조8,000억원, 법정자본금(15조원) 소진율은 98.5%에 달했다. 하지만 수출입은행법이 국회를 통과한 이후 법정 자본금 한도가 증액되며 대규모 추가 출자가 가능해졌다. 이에 지난 24일 정부는 한국수출입은행에 2조원 규모의 출자를 추진한다고 밝혔다.
기획재정부는 측은 출자 규모를 작년 1분기(2조원) 수준으로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단 정확한 규모와 시기, 방식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이처럼 정부가 대규모 출자를 추진하면 대규모 방산 수출에 대한 수은의 금융 지원 여력이 확대되는 효과가 있다. 자본금을 2조원가량 늘릴 경우,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이 상승하며 수은은 최대 14조원의 유동성을 추가 공급할 수 있게 된다.
특히 국내 방산업계의 폴란드 수출 계약에 힘이 실릴 것으로 전망된다. 수은은 2022년 국내 방산업체들이 폴란드와 124억 달러(약 16조6,900억원) 규모의 1차 수출계약을 체결하는 과정에서 신용공여 한도를 대부분 소진한 상태다. 300억 달러(약 40조3,800억원) 규모에 달하는 2차 계약 때 지원 자금을 마련하는 게 쉽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 이유다. 시장은 정부의 대규모 출자 이후 수출입은행이 유동성의 상당 부분을 방산 수출 지원에 활용할 것이라 보고 있다.
4조원 출자 주장하는 방산업계
하지만 국내 방산업계는 폴란드와 추진하는 수출 계약 건 등을 고려, 2조원 이상의 정부 출자가 필요하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출자 제한이 풀리긴 했지만, 여러 건의 계약을 체결하기 위해서는 정부 계획 이상의 출자가 필요하다는 시각이다. 실제 방산업계는 최근 수은 출자 규모를 연 4조원까지 늘려달라고 기획재정부에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기획재정부는 난감한 입장에 놓였다. 정부가 수은에 출자하는 방식은 현재 진행 중인 ‘현물 출자’와 재정을 소모하는 ‘현금 출자’ 방식으로 나뉜다. 원칙적으로는 국회의 심의를 거쳐 현금 출자를 진행해야 하지만, 상황의 시급성을 고려해 예외적으로 현물 출자 방식을 추진할 수도 있다. 문제는 한 번에 4조원에 달하는 현물 출자를 단행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점이다.
현물 출자 부담을 줄이기 위해 현금 출자 방식을 함께 동원할 경우, 실제 출자가 이뤄지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는 문제가 있다. 예산으로 출자하기 위해서는 해당 출자분을 2025년도 예산안에 반영해야 한다. 올해 예비비를 동원하는 방법도 있지만, 예측 불가능성·시급성·불가피성 등 예비비 집행 요건에 해당하는지를 면밀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 무작정 방산업계 금융 지원을 늘리는 것이 적절한지에 대한 논란이 잇따를 위험도 무시할 수 없다.
“시장 입지 지켜야” 방산업계의 입장
한편 방산업계 일각에서는 정부의 충분한 금융 지원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한국이 세계 방산 시장에서 입지를 잃을 수 있다는 우려가 흘러나오고 있다. 민간 기업의 역량만으로 세계 각국 정부의 대규모 방산 지원에 대항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실제 한국의 방산 분야 경쟁국들은 정부의 전폭적 지원을 등에 업고 빠르게 시장 영향력을 키워가고 있다.
세계 1위 무기 수출국인 미국의 경우 해외 군사 재정지원(Foreign Military Financing, FMF) 프로그램을 통해 무기 구매국들에 100% 금융지원을 실시하고 있다. FMF는 미국 국무부의 대표적인 군사 지원 프로그램으로, FMF 대상국은 무상 자금이나 대출을 이용해 각국 수요에 맞는 미국산 무기를 사들일 수 있다. 특히 미국은 지난해 말부터 한국 방산업계의 ‘큰손’으로 떠오른 폴란드를 대상으로도 지원을 강화하고 나섰다.
이 밖에도 중국은 최장 30년간 저리로 무기 구입 대금을 빌려주고 있으며, 프랑스 역시 금융지원과 신용보험 등 지원책을 실시하고 있다. 세계 각국이 방산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미끼’를 내거는 가운데, 국내 방산업계는 한국 방산이 입지를 다지기 위해서는 정책금융의 지원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호소하고 있다. 폴란드와의 대규모 무기 계약이 예정돼 있고, 지정학적 불안으로 무기 수요가 급증한 현재가 본격적으로 지원을 확대할 ‘터닝 포인트’라는 주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