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체 기업 급증에 ‘국책은행’, 1조원 규모 부실채권 털어낸다
KDB산업은행, 5,100억원 부실채권 매각 추진 "이달 중 입찰 마감"
IBK기업은행도 5.400억원 부실채권 턴다, 회계법인 선정 작업 돌입
연이어 부실기업 정리 실패한 산업은행, 구조조정 능력 논란도
KDB산업은행과 IBK기업은행 등 국책은행이 1조원 규모의 부실채권(NPL) 매각에 나선다. 부실채권은 3개월 이상 연체됐거나 원금이 정상적으로 상환되지 않은 대출채권이다. 코로나19 시기 기업에 대한 만기연장·상환유예 등 금융 지원에 앞장섰던 국책은행은 금융지원이 종료된 이후 억눌렸던 기업 부실이 터지자 자산건전성 관리를 위해 부실채권 매각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산업은행, 5,100억 규모 부실채권 일괄 매각 돌입
8일 금융권에 따르면 산업은행은 지난달 부실채권 매각 주간사로 EY한영 회계법인을 선정하고 NPL을 일괄 매각할 방침이다. 매각 대상 채권은 미상환원금잔액(OPB) 기준 특별자산 3,284억원·일반자산 1,817억원·온랜딩자산 7억원 등 5,108억원 안팎이며, 차주 수는 92개 내외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집계된 산업은행의 총 고정이하여신 1조4,765억원 대비 34.6%에 해당하는 규모다. 산업은행은 이달 중으로 입찰을 마감하고 내달 거래를 종결한다는 계획이다.
은행은 부실채권을 매각하면 연체율과 부실채권 비율 등 건전성 지표가 나아지는 효과를 누릴 수 있다. 산업은행도 기업 구조조정 선봉장에 선 국책은행 특성상 건전성 지표가 국내 은행들보다 좋지 않은 만큼 부실자산을 일괄 매각함으로써 부담을 덜기 위한 차원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이달 산업은행이 공개한 2023년도 연간 경영보고서를 보면 지난해 말 기준 산업은행의 부실채권 비율인 고정이하여신비율은 0.81%다. 전 분기 대비 1bp(1bp=0.01%포인트), 전년 말 대비로는 8bp 나빠졌다. 연체율도 0.46%로 1년 새 14bp 악화됐다. 국민·신한·하나·우리·농협은행 등 5대 시중은행 평균 고정이하여신비율이 0.27%, 평균 연체율이 0.29%인 점과 비교하면 각각 54bp, 17bp씩 뒤처진 셈이다.
자본 적정성의 대표적인 지표인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본 비율 역시 비슷한 흐름이다. 산업은행의 BIS 비율은 2020년 16%를 정점으로 꾸준히 하락해 지난해 말 13.7%를 기록했다. 국제 최저 규제비율인 8%를 넘긴 했으나, 금융당국 권고치인 13%를 턱걸이하는 수준이다. 이런 가운데 HMM 매각 협상 결렬과 영구채 전환 이슈로 인한 주가 하락으로 산업은행의 BIS비율 추가 하락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여기에 지난해 말부터 진행 중인 태영건설 워크아웃(기업구조개선) 작업도 산업은행의 재무건전성에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산업은행은 태영건설의 주채권은행으로, 당초 산업은행은 태영건설 워크아웃 개시 3개월 후인 오는 11일 기업개선계획을 의결하기로 했지만,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주단이 제출한 사업장 처리방안을 분석하는 데 추가적인 시간이 필요하다는 실사법인의 요청에 따라 한 달 더 의결 기한을 연장하기로 했다. 태영건설 채권단은 기존 채권 중 7,000억원 이상 출자전환해야 할 것으로 예상한다. 아울러 워크아웃 기간 동안 지원했던 4,000억원 신규 자금 외에도 추가 대출 가능성도 있다.
기업은행도 5,400억원 규모 부실채권 매각 추진
기업은행 역시 5,400억원 규모의 부실채권 매각에 나선다. 기업은행은 다음 달 1일까지 2분기 2,500억원 부실채권 매각을 위한 회계법인 선정 작업에 돌입했다. 제1금융권에 속한 금융사들의 담보부 NPL을 매각한 트랙레코드가 있는 회계법인이 후보군이다. 매각대상은 3개월 이상 원리금이 연체됐거나 정상적으로 상환되지 않은 일반담보부채권 및 회생채권이며, 규모는 3,000억원 내외로 책정했다. 예상 NPL 인수자는 유암코(연합자산관리), 대신F&I, 하나F&I 등 전문투자업체와 NPL펀드를 운용하는 자산운용사들이다. 매각 대상 차주와 금액은 매각 과정에서 변경될 수 있다.
앞서 기업은행은 지난 1분기에도 2,900억원 규모의 NPL을 매각한 바 있다. 경쟁입찰을 통해 1,650억원, 1,240억원 2개로 나뉜 풀을 하나F&I와 유암코에 넘겼다. 이번 매각건과 합산하면 올 상반기 NPL 매각 규모는 6,000억원에 달하는 셈이다. 그동안 기업은행은 분기별로 2,000억~3,000억원 규모의 NPL을 처분해 왔다. 연간 규모는 1조~1조5,000억원 규모다. 기업금융 중심의 자산구조 특성상 주기적으로 NPL을 매각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올해도 1조원 이상의 NPL을 처분할 것으로 예상된다. 고금리, 고물가 등 복합 위기로 기업들의 경영환경이 악화하면서 정책금융 지원을 늘렸기 때문이다. 정책금융 특성상 경기에 민감한 차주가 많아 부실 위험이 높다. 통상 NPL 총량이 증가하면 매각하는 규모도 커진다. 특히 기업은행은 시중은행에 비해 위험업종여신 및 코로나19 민감업종 여신 비중이 큰 편이다. 지난해 9월 말 기준 총여신 대비 위험업종여신 비중은 8.8%로 시중은행 평균인 5.7%보다 3.1%포인트 높았다. 코로나19 민감업종 여신 비중은 53.5%로 시중은행 평균(23.2%)의 두 배를 웃돌았다.
무엇보다 금융규제 유연화 방안 및 정부의 적극적인 소상공인·중소기업 유동성 지원 대책으로 2022년까지 건전성 지표가 개선됐으나 최근 높아진 금리 수준과 실물 경기의 더딘 회복세 등으로 부실 위험이 커졌다. 실제로 2020년 1.08%이던 NPL비율은 2021~2022년 0.85%까지 떨어졌으나 지난해 1.05%로 다시 1%대를 기록했다.
도마에 오른 산업은행의 구조조정 능력
한편 국책은행들이 부실기업 정리에 잇따라 실패하면서 부실채권 털기에 나서자 국책은행의 능력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특히 최근 KDB생명에 이어 HMM 매각도 불발되면서 산업은행의 구조조정 능력이 시험대에 오른 모양새다. 지난 2월 산업은행과 해양진흥공사는 HMM 매각의 우선협상 대상자였던 하림에 매각 불발을 통보했다. 7주간의 협상을 이어갔지만, 의견이 좁혀지지 않아 결렬됐다. 표면적으로는 JKL파트너스와 구성된 하림 컨소시엄에 대한 이해관계와 잔여 영구채 주식 전환 문제를 이유로 들었다.
하림은 재무적투자자(FI)인 JKL파트너스는 3년 뒤 자금을 회수하는 만큼 매각 대상에서 제외해 달라고 요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하림이 독자적으로 인수하는 방안도 거론됐으나, 역시나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하림 측이 산업은행과 해양진흥공사가 보유한 1조6,800억원 상당의 영구채를 주식으로 전환하는 기간을 3년 뒤에서 5년 뒤로 늦춰달라고 요구한 것도 끝내 타협점을 찾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산업은행과 해양진흥공사가 영구채를 주식으로 전환하면 하림의 지분율은 57.9%에서 38.9%로 떨어진다. 반면 산업은행과 해양진흥공사는 HMM 매각 이후 영구채 전환권 행사로 2대 주주(지분 32.8%)로 남아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는 경영권 분쟁이 주요한 원인이었다. 산업은행은 매각 이후에도 중요 경영 사항을 사전 협의나 동의를 받아야 한다며 일정 기간 경영권 관여를 요구했다. 이에 하림은 잔여 영구채 3년간 주식 전환 유예와 배당 제한 등의 제안 사항들을 다 수용했음에도 경영 간섭까지 하는 건 받아들일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일각에선 ‘새우(하림)가 고래(HMM)를 삼킬 수 없다’는 태생적 문제를 지적하기도 했으나, 산업은행의 부실기업 정리 실패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앞서 하나금융지주에 KDB생명 매각을 추진한 것도 무산된 바 있다. 지난해 10월 27일 양재혁 하나금융지주 상무는 3분기 실적발표 컨퍼런스 콜에서 “KDB생명 인수 관련해선 두 달간 실사를 거쳤으나, 그룹의 보험업 강화 전략과 부합하지 않아 진행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부실기업 구조조정 및 매각 실패가 반복되자 일각에선 산업은행의 역할에도 의문이 커지고 있다. 금융권의 한 고위 관계자는 “매각가가 기대보다 낮으면 여러 조건을 달아 페널티를 주는 경우는 있지만, 구조조정이 끝난 이후에도 경영권에 개입하는 건 일반적이지 않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