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릭터 IP로 승부수 던지는 롯데, 파급 효과 기대 높지만 “디즈니도 부진한데 ‘IP 병아리’ 롯데가 성공할 수 있을까”
IP 활용 사업 본격화한 롯데, "유명 IP 집객 효과 이용할 것"
홈쇼핑 업황 부진에 반전 꾀하지만, "IP 대부 디즈니도 부진한데" 회의적 의견도
정부 지원마저 OTT에 편향? 롯데, 캐릭터 IP 불모지 한국서 성공할 수 있을까
롯데가 해외 유명 콘텐츠 IP를 활용하는 사업을 본격 확대하고 나섰다. 유명 콘텐츠의 집객 효과를 통해 그룹 차원에서 각 계열사를 아우르는 사업을 꾸림으로써 수익 다변화를 이루겠단 목표다. 롯데가 신사업 발굴에 적극적으로 임하기 시작한 건 ‘창사 최대 위기’를 맞은 롯데 내부적 상황과 연관이 적지 않다. 롯데는 최근 홈쇼핑 업황 악화 및 실적 부진, 두 자릿수대 송출 수수료 증가율 등으로 시름을 앓고 있다. 결국 집객 효과가 보증된 유명 IP를 적극 이용하겠단 취지인 셈이지만, 막상 업계에선 회의적인 의견도 적지 않다. 정부 지원이 OTT에만 몰려있는 데다 국내에서 캐릭터 IP 활용은 유독 힘을 못 쓰는 분야 중 하나기 때문이다.
IP 사업 전개하는 롯데, 26일부터 ‘포켓몬 타운 2024 위드 롯데’ 개최
8일 롯데는 오는 26일부터 내달 19일까지 서울 잠실 롯데월드타워에서 ‘포켓몬 타운 2024 위드 롯데’를 연다고 밝혔다. 롯데가 그룹 차원에서 진행하는 첫 번째 콘텐츠 비즈니스 프로젝트다. 이번 프로젝트에는 롯데물산·웰푸드·GRS·백화점·호텔 등 10개 계열사가 참여한다. 롯데는 행사 기간 전시·퍼레이드·이벤트 등 포켓몬 콘텐츠로 롯데월드타워와 인근 광장을 꾸밀 예정이며, 이 밖에도 식품 계열사는 포켓몬 IP를 활용한 라이선스 상품을 단독 출시하고 문화 계열사는 포켓몬 영화와 콘서트를 기획하는 등 다양한 콘텐츠를 선보인다.
이 같은 콘텐츠 비즈니스는 신동빈 롯데 회장의 역점 사업이다. 신 회장은 최근 콘텐츠 비즈니스 관련 회의에 참석해 “전 세계 유수 콘텐츠 IP 기업들과 협업하며 콘텐츠 비즈니스를 강화해 달라”며 “롯데의 자산 가치를 높일 수 있는 중장기 지속 가능한 모델 개발에 힘써 달라”고 강조한 바 있다. 이에 따라 콘텐츠 사업 전담 조직도 신설됐다. 조직은 지주 ESG경영혁신실 산하에 마련됐는데, 각 계열사 간 시너지를 창출하고 기존의 사업 영역에 얽매이지 않는 사업 모델을 구상하겠단 신 회장의 고심이 엿보인다. 태스크포스(TF) 형태의 이 조직은 글로벌 콘텐츠 기업과의 제휴를 담당하고 신규 콘텐츠 사업모델도 발굴한다.
롯데가 콘텐츠 사업을 통해 가장 기대하는 건 수익 다변화다. 본격적인 ‘탈TV’를 계획하고 있는 것이다. 롯데가 다양한 시도를 하기 시작한 건 롯데홈쇼핑의 홈쇼핑 업황 악화 및 실적 부진의 영향이 크다. 실제 지난해 1분기 롯데홈쇼핑은 매출액 2,310억원, 영업이익 40억원을 기록했는데 이는 전년 동기 대비 각각 16.0%, 87.6% 감소한 수치다. 홈쇼핑 산업은 전반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상황이다. TV 시청 시간 감소가 지속하고 있는 데다 코로나19 특수마저 사라졌기 때문이다.
송출 수수료 증가율 또한 매년 두 자릿수대를 보이고 있다. 2021 회계연도 방송사업자 재산 상황을 보면 2021년 TV홈쇼핑과 T커머스 업체들이 유료방송사업자에 낸 송출 수수료는 전년 대비 11% 늘어난 2조2,49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됐다. 롯데홈쇼핑이 새벽방송 중단 처분을 받았던 것도 뼈아팠다. 앞서 지난 2022년 12월 롯데홈쇼핑은 방송 재승인 심사 과정에서 임직원들의 범죄 행위를 고의로 누락하는 등 방송법을 위반해 6개월간 새벽 시간대 방송을 금지당한 바 있다.
‘폭발적 파급력’ 기대하는 롯데, 막상 업계선 “글쎄”
이런 가운데 롯데가 IP에 기대하는 바는 크다. IP 특유의 폭발적인 파급력이 롯데그룹 전반을 견인해 나갈 원동력으로 작용하리란 것이다. 실제 시장에선 “잘 키운 IP 하나가 연예인보다 파급력이 크다”는 언급까지 있다. 일례로 한국의 더핑크퐁컴퍼니가 개발한 IP인 핑크퐁 아기상어의 경우 전 세계 유튜브 최다 조회 영상 1위를 기록한 데다 세계 최초로 조회수 100억 뷰를 돌파했다.
2022년 전국을 뜨겁게 달군 포켓몬빵 구매 열풍도 IP의 힘을 여실히 보여준다. 특히 캐릭터 IP 하나가 생기면 세계관 구축 및 스토리텔링 효과까지 겸할 수 있어 확장성이 더욱 크다. 대표적인 예시가 하이트진로의 푸른 두꺼비다. 하이트진로는 주류업계 최초로 IP를 개발해 브랜드 이미지를 리뉴얼하는 데 성공했단 평가를 받는다.
이에 롯데는 포켓몬 등 국내외 유명 IP와의 협업은 물론 자체 IP 사업도 확대할 방침이다. 이에 대해 롯데그룹 관계자는 “앞으로 더욱 창의적인 콘텐츠를 통해 고객들에게 새롭고 이로운 가치가 담긴 경험을 제공할 것”이라며 “다양한 소비자 접점 채널을 가진 롯데만의 강점을 기반으로 차별화된 콘텐츠 비즈니스 기회를 발굴하겠다”고 전했다.
다만 롯데의 도전이 성공할 수 있을지 여부엔 회의적 전망이 적지 않다. IP 업계의 글로벌 공룡 디즈니조차 최근 부진을 면치 못하는 상황에서 새로이 발품 팔아 뛰어다녀야 할 롯데가 돌연 IP로 인기를 얻어낼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것이다. 업계에 따르면 디즈니는 전례 없는 위기를 겪고 있다. 지난해 실사 영화 ‘인어공주’의 흥행이 참패한 데다 스트리밍 플랫폼 디즈니+의 성장도 더디고, 시청자들의 콘텐츠 소비 패턴까지 변화해 주 사업 모델 자체가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IP를 활용한 영화만 봐도 그나마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ume 3’가 선방했지만 ‘인어공주’, ‘인디아나 존스: 운명의 다이얼’ 등은 흥행 참패를 기록했다.
이에 디즈니는 콘텐츠 IP 생활용품화를 통해 활로를 모색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7월 현대백화점 판교점에 한국 공식 ‘디즈니스토어’를 오픈한 것이 대표적이다. 디즈니는 판교점을 통해 ‘미키 마우스’, ‘백설공주’, ‘신데렐라’ 등 디즈니 인기 캐릭터들을 활용한 각종 생활용품을 선보였다. 지난 2022년엔 ‘다이소 디즈니 캐릭터 빅시즌’을 출시해 고양이 캐릭터인 마리를 활용한 빨대컵, 디즈니 캐릭터 손잡이 유리컵 등 IP를 접목시킨 다양한 주방용품을 공개하기도 했으며, 공식 매장 오픈에 앞서 팝업 스토어를 활발하게 운영하는 등 IP 활용성 다변화에 거듭 힘을 실었다.
문제는 제아무리 파급력이 강한 IP라 할지라도 희소가치가 작아질수록 IP의 수요와 가치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특정 캐릭터 상품이 한두 개 존재할 때와 시중에 아무렇게나 팔릴 때 소비자가 느낄 IP의 가치는 달라질 수밖에 없다. 익명을 요구한 한 미디어 전문가가 “소비자들이 디즈니의 IP에 피로감을 느끼기 시작했다”는 평가를 내린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IP 최강자 디즈니의 몰락이 가시화한 상황에서 타사 IP를 가져오는 데 주력할 수밖에 없는 ‘IP 병아리’ 롯데가 성장을 이뤄낼 수 있을지, 시장의 불안이 높아지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OTT 아래 가려진 캐릭터 IP 사업, 정부 지원도↓
불안 요소는 또 있다. 정부 지원이 캐릭터 IP보단 OTT에 집중돼 있다는 점이다. 최근 정부는 K-콘텐츠 산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하겠다며 향후 5년간 1조원대 민관 합동 전략펀드를 조성하겠다고 밝혔다. 드라마와 영화 등 제작사 부담을 완화해 고품질 콘텐츠 생산이 이뤄지도록 제작비의 최대 30%까지 세금을 공제해 주겠단 방침도 세웠다. 콘텐츠 기획 단계에서 융자받도록 보증하는 ‘콘텐츠 IP 보증’, 수출 맞춤형 보증을 제공하는 ‘수출 특화보증’도 신설하고, 제작비 대출에 대한 보증을 지원하는 완성보증과 중소 제작사의 대출 이자 일부(2.5%p)를 지원하는 이자 지원도 확대한다.
이렇듯 정부 정책의 방점은 대부분 OTT에 찍혀 있는 상태다. 537억원 규모로 확대되는 사업도 OTT 특화 제작지원이 조건으로 달려 있고, 세액공제도 대부분 영상 콘텐츠에만 해당하는 사항이다. 캐릭터 IP에 집중하겠단 롯데의 전략에 기대가 떨어질 수밖에 없는 환경이 조성된 셈이다.
영상 콘텐츠가 대박을 터뜨릴 동안 게임 등 캐릭터 IP를 적극 활용한 콘텐츠는 인기를 얻지 못하고 있단 것도 문제다. 대표적인 예시가 웹툰 원작 게임이다. 게임의 원작으로 선정되는 웹툰은 흥행이 보증된 IP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신의탑’, ‘달빛조각사’ 등이 그렇듯 말이다. 그러나 원작 서사를 빌려 신작을 선보인 게임사 중 성공을 이룬 게임사는 크게 없다. 예컨대 엑스엘게임즈의 모바일게임 ‘달빛조각사’는 2019년 출시 당시 사전 예약에만 320만 명을 끌어모으며 서비스를 시작했으나 장기 흥행에 실패했다.
게임 웹소설 장르의 원조 격인 동명의 원작도 2007년 출간 이후 국내 장르 문학계에 한 획을 그었다고 평가받고 있지만, 게임의 경쟁력으로는 이어지지 않았다. 라인스튜디오가 개발한 네이버웹툰 기반 모바일 캐주얼 게임 ‘라이브 퍼즐 배틀: 여신강림’, ‘고수: 절대지존’ 등도 부진을 면치 못했다. 물론 게임 자체의 만듦새가 적잖은 영향을 미친 게 사실이겠으나, 원작을 잘 살렸다며 그나마 긍정 평가를 받았던 ‘신의 탑: 새로운 세계’마저 장기 흥행에 실패한 점은 국내 캐릭터 IP 업계가 지닌 한계성을 여실히 보여준다 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