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마무리에 PF 구조조정 본격화 조짐, 저축은행은 정부 낙관론 ‘후폭풍’ 불가피할 듯
부동산 PF 구조조정 나선 정부, '낙관론' 기조 버렸나
자금 조달 강조한 금융당국, 정작 보험업계 리스크는 '쉬쉬'?
저축은행업계 '치명타', 신용등급 하락에 적자 장기화 가능성도
4월 총선이 마무리된 가운데 부동산 PF(프로젝트파이낸싱) 업계의 구조조정이 본격화할 전망이다. 정치적 부담이 줄어든 정부가 본격적으로 칼바람을 불러일으킬 수 있단 것이다. 특히 저축은행업계의 타격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신용등급 강등은 이미 벌어진 일인 데다 저축은행의 부동산 PF 연체율이 금융권 전체 평균의 4%p 이상을 웃도는 수준이기 때문이다. 이렇다 보니 업계에선 “저축은행의 PF 부실화 관련 손실이 PF 대손충당금 규모를 뛰어넘을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부실 PF 문제 심화, 금융당국도 ‘손질’ 나섰다
17일 업계에 따르면 부실 PF 문제는 시간이 흐르면서 더욱 공고화했다. 고금리가 여전하고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금리 인하가 요원해지면서다. 이에 미분양 그림자는 지방을 넘어 수도권까지 뒤덮었다. HUG(주택도시보증공사)에 따르면 경기 안성과 대구 남구, 울산 울주, 강원 강릉, 충북 음성, 전북 군산, 전남 광양, 경북 포항·경주 9곳이 지난 10일부터 미분양관리지역으로 지정됐다. 안성은 지난해 7∼9월 3개월 연속 미분양관리지역으로 지정됐다가 10월 해제된 바 있다.
이렇다 보니 최근 시장에선 4월 위기설을 넘어선 ‘5월 위기설’이 제기되고 있다. 총선이 끝나 정치적 부담이 줄어든 정부가 본격적으로 부동산 PF업계 구조조정에 나설 것이란 관측에 따른 것이다. 실제 금융감독원은 이미 부실 PF 사업장 정리 절차를 밟기 시작했다. 살릴 가치가 있는 사업장은 살리되 사업성이 없다면 과감히 정리하자는 게 금감원 입장이다. 이복현 금감원장은 최근 기자들과 만나 “성장성이나 수익성이 안 맞는 부동산은 주인이 바뀌는 것이 적정하다”고 언급했다. 본격적인 구조조정을 실현하겠단 의지를 전면에 내세운 셈이다.
산업은행도 태영건설 PF 사업장 구조조정에 나섰다. 산은의 청산 절차는 브릿지론 단계 사업장에 집중됐다. 업계에 따르면 산은은 브릿지론 단계의 PF 사업장 20곳 중 1곳만 사업을 진행하고 10곳은 시공사 교체, 9곳은 토지경공매 절차로 넘기기로 했다. 브릿지론이란 사업의 계획만 보고 대출을 내주는 금융회사로부터 자금을 조달하는 것을 뜻한다. 즉 브릿지론 단계는 땅만 확보했을 뿐 아직 삽도 뜨기 전의 사업장이란 의미다. 결국 브릿지론 사업장을 대거 정리하면서 국내에 만연한 마구잡이식 투자를 뿌리 뽑겠다는 게 산은의 입장인 것으로 풀이된다.
한 업계 관계자는 “본PF 단계의 사업장은 부동산과 관련한 최고 불확실성인 인허가 문제를 해결한 곳이라는 의미이기 때문에 청산절차를 밟는 것보다는 사업을 마무리하는 것이 손실을 최소화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며 “브릿지론 단계인 경우는 최근 경기 동향을 봤을 때는 일단 사업을 접는 것이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이라고 본다”고 설명했다.
낙관론 견지하던 정부, 정작 자금 조달처는 ‘꽉’ 막혔다
건설업계는 정부 차원의 PF 구조조정에 대해 환영한다는 반응이다. 위기를 뒤로 미루기만 해선 산업 전반이 몰락할 수밖에 없는 만큼 정부가 개입해 빠르게 문제 해결을 도모하는 게 낫다는 시각에서다. 다만 일각에선 정부의 대응이 다소 늦은 게 아니냐는 반응도 나온다. PF 부실 우려 등 잠재 리스크를 충분히 관리할 수 있다고 단언하던 정부가 얼기설기 구멍을 메꾸고 나선 데 부정적인 시선을 던진 것이다.
실제 당초 정부는 부동산 PF 리스크에 낙관적인 입장이었다. 앞서 지난 3월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은 서울 전국은행연합회관에서 비상거시경제금융회의를 열고 “제2금융권, 부동산 PF 등의 잠재 리스크는 충분히 관리 가능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저축은행 등 제2금융권의 경우 그간 금리 인상 등의 여파로 연체율이 다소 상승하고 있지만 여전히 과거 평균을 하회하는 수준”이라며 “자본비율도 규제비율을 큰 폭으로 상회하는 등 양호한 손실흡수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부동산 PF에 대해선 “대출 연체율이 다소 상승하고 있지만 정상 사업장은 적시에 유동성을 공급하고, 사업성이 부족한 곳은 재구조화를 유도하는 등 연착륙이 진행되고 있다”고 역설했다. 금융권 자체적으로 충분히 감내 가능한 상황인 만큼 타 분야로 리스크가 전이될 가능성은 극히 제한적이란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시장은 혼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자금 확보처가 제한적이었기 때문이다. 보험업계의 PF 시장 진출이 어려웠다는 점은 특히 치명적이었다. 보험업계에 따르면 유효만기 2~3년 채권에 투자할 때 보험사에 적용되는 위험계수는 AAA급 채권 기준 0.9%다. 여기서 일반 부동산 PF는 9.9%, 우량 부동산 PF는 6.6%가 적용된다.
우량 PF 자산은 킥스(K-ICS) 산출 시점 기준 분양률 또는 사전 임대계약률이 100%여야 한다는 까다로운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부동산 PF의 위험계수가 채권과 비교해 10배 넘게 차이가 난다는 건 자본 관리 영역에서 그만큼 어려움이 크다는 의미다. 이에 대해 업계 관계자는 “PF와 채권 간 위험계수가 10배 넘게 차이 나다 보니 킥스 관리를 위해 웬만해서는 PF는 하지 않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부실 PF 자산에 대한 충당금 적립 압박이 큰 점도 보험사의 PF 투자를 어렵게 하는 요인 중 하나다. 지난해 연말 이후로 금융당국이 부동산 PF 자산의 부실 대응을 강조하면서 충당금 적립 규모가 늘었고, 충당금을 고려하면 보험사가 가져가는 실익이 크지 않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보험업계 관계자는 “PF 투자는 충당금 때문에 보험사에 돌아오는 게 사실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며 “킥스 관리 측면까지 생각하면 채권 투자가 훨씬 나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금융당국은 보험업계에 PF 시장 내 자금 공급을 요구하면서도 투자 여건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셈이다.
저축은행업계 타격 불가피, M&A 매물로 나올 가능성도
보험사의 PF 진입이 가로막힌 사이 가장 치명타를 입은 건 저축은행업계다. 저축은행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저축은행 79곳 중 순손실을 낸 곳은 41곳으로, 규모만 총 5,559억원에 달한다. 저축은행업계의 실적은 지난 2015년부터 2022년까지 8년 동안 흑자를 기록하다 2023년 돌연 적자전환했다. 구체적으로 최근 연간 순이익 규모를 살펴보면 △2018년 1조1,000억원 △2019년 1조3,000억원 △2020년 1조4,000억원 △2021년 2조원 △2022년 1조6,000억원 등이다.
수익성과 건전성이 악화하면서 저축은행들의 신용등급도 덩달아 강등되는 양상이다. 신용평가업계에 따르면 최근 페퍼저축은행의 신용등급은 ‘BBB(부정적)’에서 ‘BBB-(부정적)’로 하향 조정됐다. 신용등급이 한 단계 낮아지면 등급 전망은 ‘부정적’에서 ‘안정적’으로 바뀌는 게 일반적이지만, 실적 추세 개선이 쉽지 않다는 점에서 ‘부정적’이라는 꼬리표가 남았다. 사실상 투기등급(BB급)으로 강등될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단 의미다.
이외 오케이저축은행을 비롯해 웰컴저축은행, 키움저축은행, 더케이저축은행, 페퍼저축은행 등의 신용등급 전망도 ‘부정적’으로 하향 조정됐고, 바로저축은행의 신용등급은 ‘BBB+(부정적)’에서 ‘BBB(안정적)’로 강등됐다. PF 부실 아래 저축은행업계의 위기가 가시화한 것이다. 저축은행 중 건재한 모습을 보이는 건 부동산PF 대출에 집중하지 않아 관련 위험도가 낮은 남양저축은행 정도다.
PF 사업장 정리 과정에서도 저축은행의 타격은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금감원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금융권 전체 부동산 PF 연체율은 2.7%인데, 저축은행은 6.9%로 평균보다 높은 수준이다. 이에 한국기업평가는 저축은행 업계에 대해 “향후 발생할 PF 부실화 관련 손실이 PF 대손충당금 규모를 뛰어넘을 가능성이 있다”는 평가를 내렸다. 대손충당금으로도 손실을 막을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어 충당금을 더 쌓아야 한다는 것이다.
일각에선 사업 운영에 어려움을 겪는 일부 저축은행이 M&A 시장에 매물로 나올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당초 저축은행은 부동산 PF 위기 속 가장 ‘약한 고리’로 꼽히면서 M&A 물망에서 번번이 제외돼 왔다. 그러나 올해부턴 토지담보대출이 부동산 PF로 분류됨에 따라 대손충당금을 추가 적립해야 하는 등 저축은행들도 재무건전성 압박이 커졌다. 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을 맞추기 위해 시장 자율 조정의 일환으로 M&A가 활성화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문제는 M&A 시장에 저축은행이 나오더라도 연내 매각은 힘들 것으로 전망된단 점이다. 저축은행에 대한 수요가 부족한 데다 앞으로도 생존 경쟁을 이어가야 할 저축은행에 대한 투자 메리트가 적다는 이유에서다. 여러모로 저축은행 고난사가 예견되는 한 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