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덤핑’ 피해 일파만파 확산, 제재 칼날 꺼내든 미국
미국, 무역법 301조 앞세운 '반덤핑' 움직임 본격화
저가 상품 판매로 경기 침체 타파하려던 중국 '반발'
중국산 저가 상품 공세에 국내 기업들도 줄줄이 흔들
세계 주요국이 중국의 덤핑(채산을 무시하고 저가 상품을 대량으로 판매하는 행위)을 적극 경계하고 나섰다. 특히 중국과 긴장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미국의 경우, 보호무역주의의 상징인 ‘슈퍼 301조’(무역법 301조) 카드를 꺼내 들며 중국을 본격적으로 견제하는 양상이다.
“중국은 부정행위 중” 미국의 질타
17일(현지시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펜실베이니아주 피츠버그에서 철강노조원들을 대상으로 연설을 진행, “캐서린 타이 무역대표부(USTR) 대표에게 중국산 철강·알루미늄 제품 관세를 현행 7.5%에서 25%까지 올리는 것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고 밝혔다. 11월 미국 대선이 다가오는 가운데, 러스트벨트(기계 제조업과 함께 쇠퇴한 미국 북부와 중서부 지역) 노동자 표심을 의식해 중국에 대한 제재를 강화한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 연설이 진행된 피츠버그 역시 러스트벨트 지역에 포함된다.
바이든 대통령은 “중국 철강 업체들은 중국 정부가 보조금을 많이 주기 때문에 이윤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며 “그들은 경쟁(competing)이 아니라 부정행위(cheating)를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중국 중앙 정부와 지방 정부가 각종 정책 보조금 등을 쏟아내며 저가 상품 양산의 ‘기틀’을 제공하고, 가격 경쟁력을 확보한 중국 업체들이 국제 시장에 덤핑 제품을 쏟아내면서 불공정 무역을 한다는 지적이다.
같은 날 미국 무역대표부(USTR) 역시 성명을 통해 “중국 해운·물류·조선 부문에 대해 (반덤핑) 조사를 시작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지난 3월 제기된 철강노동조합(USW) 등 다섯 개 노동조합의 청원서를 검토한 뒤, 슈퍼 301조에 근거한 ‘덤핑 경계 태세’를 본격화한 것이다. 이들 노조는 USTR 측에 “해양·물류·조선 분야에서 이뤄지는 중국의 불공정 행위·관행을 조사해달라”고 청원한 바 있다. 중국 정부가 보조금 등을 앞세워 관련 분야 무역 시장에 혼란을 야기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궁지에 몰린 중국
중국은 곧장 반발의 뜻을 표명했다. 중국 상무부는 17일 오후 대변인 명의 담화를 통해 “미국 USTR이 4월 17일 중국 해운·물류·조선업에 대한 슈퍼 301조 조사의 시작을 알렸다”며 “중국은 이에 대해 강한 불만을 표시하며 완강히 반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미국이 중국의 정상적인 무역·투자 활동을 미국의 국가 안보와 기업 이익을 해친다고 곡해하고, 자국의 산업 문제를 중국에 전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어 상무부 측은 “미국은 자국 산업에 수천억 달러의 차별적 보조금을 제공하면서 중국이 이른바 비시장적 접근을 채택한다고 비난한다”며 “미국이 다자간 규칙을 존중하고, 규칙에 기반한 다자 무역 시스템으로 돌아갈 것을 촉구한다”고 강조했다. 미국이 각 분야에서 대규모 보조금을 지급하며 중국 산업계 전반을 배제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 미국 측의 제재에 맞불을 놓은 것이다.
중국 측이 권리와 국익을 보호하기 위해 모든 조치를 취하겠다는 경고의 뜻을 전달한 가운데, 업계에서는 중국이 사실상 궁지에 몰렸다는 분석이 흘러나온다. 지속되는 경기 침체의 ‘돌파구’였던 해외 물량 밀어내기 전략이 본격적인 제재에 부딪혔기 때문이다. 미국의 무역 제재가 △첨단 반도체, 인공지능(AI) 등 전략 기술 △중국산 전기차·배터리 등 녹색산업 등 특정 분야를 넘어 산업계 전반을 관통하는 해운·물류 분야로 확대되고 있다는 점 역시 중국에 있어 치명적인 악재다.
한국도 ‘중국 덤핑’ 피해국
주목할 만한 부분은 중국발 ‘덤핑’으로 인한 피해가 우리나라에도 고스란히 돌아오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국내 철강사들의 경우, 쏟아져 들어오는 중국산 저가 철강 제품으로 인해 줄줄이 경쟁력을 잃을 위기에 놓였다. 중국은 1990년대 이후부터 2010년대까지 대규모 철강 설비를 증설했으며,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경기회복이 늦어지면서 공급과잉에 처한 상태다. 수요 부족으로 해소되지 못한 물량은 고스란히 ‘덤핑’용 재고로 전락했다.
지난해 중국의 철강재 수출은 9,026만 톤으로 전년 대비 35.3%나 급증했다. 올해 1~2월 수출 물량은 1,591만 톤으로 전년 동기 대비 32.6% 늘었다. 이는 2016년 이후 최고치다. 중국산 제품이 글로벌 철강 시장을 휘저으며 위기감이 고조되는 가운데, △포스코 △현대제철 △동국제강그룹 등 국내 주요 철강사들은 중국산 제품에 맞서 고부가가치 제품 판매를 확대하고 나섰다. 수요층 자체를 전환하며 경쟁력 확보에 나선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중국의 ‘초저가 공세’로 인해 휘청이는 것은 철강 시장뿐만이 아니라는 점에 있다. 최근 들어 토종 이커머스 업체들은 줄줄이 설 자리를 잃었다. 초저가 공산품을 앞세워 국내 유통업계에 안착한 중국 이커머스 업체들이 급속도로 성장하면서다. 애플리케이션(앱)·리테일 분석 서비스 와이즈앱·리테일·굿즈에 따르면, 중국 이커머스 업체 테무의 한국인 이용자 수는 2월 580만6,000명에서 3월 829만6,000명으로 249만 명(42.8%) 급증했다. 같은 기간 알리익스프레스 사용자 역시 818만3,000명에서 887만1,000명으로 68만 명(8.4%) 늘었다.
대규모 중국산 공산품이 유통되며 국내 제조 중소기업들의 입지 역시 좁아지고 있다. 특히 의류, 잡화 등 품목을 제조·판매하는 중소 제조업체들의 위기감이 고조되는 양상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해외 직구를 통해 중국에서 한국으로 가장 많이 들어온 품목은 의류 및 패션 상품(전체 중국 직구액 중 58%)으로, 그 규모만 1조9,191억원에 달했다. 이는 2020년(3,182억원) 대비 503% 급증한 수치다. 중국산 제품이 저렴한 가격을 앞세워 소비자 수요를 흡수하는 가운데, 경쟁력을 잃은 국산 제품들은 줄줄이 시장 외곽으로 밀려나는 실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