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인야후 ‘지분 매각’ 강력 요구, 네이버 지우기 현실화
일본 정부, 라인야후 지배력 확대 의지
소프트뱅크, 라인야후 요청으로 지분 협의
韓 정부는 뒷짐만, "네이버가 원하는 방향대로"
네이버가 라인야후의 경영권을 잃을 위기에 처하면서 정부의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네이버가 라인야후의 지주회사인 A홀딩스의 지분을 매각할 경우 인수합병(M&A) 등에 활용할 수 있는 자금을 받을 수 있지만 아시아 대표 테크 기업으로 성장하려는 계획은 수정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소프트뱅크도 ‘네이버 지분 조정’ 공식화
네이버와 함께 라인야후를 공동경영하고 있는 소프트뱅크는 9일 2023년 실적 발표 콘퍼런스콜에서 “라인야후의 강력한 요청으로 네이버와 지분 관계 조정을 협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라인야후의 최대주주인 A홀딩스의 지분을 놓고 협상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야카와 준이치 소프트뱅크 사장은 자본 관계 비율 조정과 관련해 “현재 50대 50인데 한쪽이 다수 %를 가지든지, 아니면 1% 더 가지든지 우리가 결정할 것”이라고 했다. 8일 라인야후에 이어 소프트뱅크도 네이버와의 지분 조정을 기정사실화한 것이다.
소프트뱅크가 최대 주주가 되는 것을 전제로 한 이번 협상에서 매입 주식 비중과 금액까지 논의 테이블에 올라온 것으로 보인다. 라인야후 주식은 네이버와 소프트뱅크가 설립한 합작법인인 에이홀딩스가 약 65%를 보유하고 있다. 소프트뱅크와 네이버는 라인야후의 중간 지주회사인 에이홀딩스에 각각 50%씩 출자하고 있다. 소프트뱅크가 네이버로부터 주식을 인수해 독자적인 대주주가 되면, ‘공동 경영권’ 체제가 무너지면서 네이버의 영향력은 상당히 저하된다.
다만 협상에 나선 소프트뱅크에서도 네이버로부터 지분을 매입하는 것이 크게 실익이 없다고 판단하는 등 부정적인 기류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사히신문은 관계자를 인용해 “소프트뱅크 쪽에선 (지분) 추가 매입에 메리트가 보이지 않는다”, “기술적인 재발 방지책을 만들 수 있다면, 자본 관계를 재검토할 필요가 있을까”라는 분위기가 있다고 전했다. 에이홀딩스의 지분을 네이버와 절반씩 보유하고 있긴 하지만, 일본에서 하는 사업인 만큼 이사회 구성 등 경영권은 사실상 소프트뱅크가 주도하고 있다. 또 지분을 사려면 상당한 자본이 필요한 것도 부담이다. 소프트뱅크가 일본 정부의 ‘행정지도’를 활용해 싼 값에 네이버 지분을 매입하려고 할 가능성이 있다.
지분 매각 시 아시아 대표 테크기업 도약 불투명
네이버의 지분매각은 일본 정부와 정치권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일본을 대표하는 ‘국민 메신저’인 만큼, 지분을 정리해 완벽하게 일본 기업화시키겠다는 복안이다. 아사히신문은 “라인 앱은 약 9,600만 명의 이용자가 있다. 자민당 일부 의원들은 명실상부한 일본의 인프라로 삼아야 한다”며 “경제안보상 중요성 때문에 엄중한 조처를 요구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총무성이 소프트뱅크에도 자본 관계의 재검토를 요청했다. 소프트뱅크가 자본적 관여를 강화하면 네이버 의존 관계가 해소될 것으로 기대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즉 일본 정부가 행정 지도 대상인 라인야후뿐만 아니라 소프트뱅크를 상대로 네이버의 지분을 매입하라고 사실상 압박했다는 뜻이 된다.
일본 매체인 ‘비지니스 인사이더’도 “국민이나 지방자치단체가 이용하는 메시지 서비스에 해외 자본이 들어와 기술적으로 의존하는 것을 총무성은 탐탁지 않게 생각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총무성이 (개인정보유출에 따른) ‘보완 대책’을 요구한다는 명목으로 ‘네이버 자본과의 분리’를 소프트뱅크가 이행하도록 한 것 같다”고 강조했다. 일본 총무성이 라인야후에 대한 두 번의 행정 지도(3월 5일, 4월 16일)에서 ‘네이버와 자본 관계 재검토’라는 표현이 “지분매각 강요가 아니다”라고 밝힌 것은 눈속임에 불과했던 셈이다.
일본 정부의 압박 속에 파트너인 소프트뱅크마저 라인야후에 대한 경영권 확보 의지를 드러내면서 네이버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일본 총무성의 행정지도는 강제력이 없기 때문에 지분을 매각하지 않고 버틸 수 있지만 경영 불확실성이 커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네이버가 라인야후 지분을 매각할 경우 수조원대의 자금을 손에 쥘 수 있다. 매각 자금을 차기 먹거리인 AI 기술 개발에 투자하거나 M&A를 시도할 수 있다. 네이버가 보유한 지분의 가치는 라인야후 시가총액 약 24조원 중 32.3%에 달하는 7조8,000억원가량으로 평가된다. 다만 아시아 대표 테크 기업으로 성장하려는 계획에 대해서는 수정이 불가피하다. 한 달에 한 번 이상 이용하는 사람 수가 2억 명에 이르는 플랫폼인 라인을 해외 사업의 교두보로 삼기가 어려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정부는 강 건너 불구경
이런 상황에서 한국 정부는 원론적인 대응만 내놓고 있다. 대통령실은 “네이버가 원하는 방향대로 돕는다는 게 공식적인 입장”이라고 밝힌 상황이다. 정보통신기술(ICT) 관련 주무부처장인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도 지난 8일 취임 2주년 기자간담회에서 “어떤 시기에 어떤 말을 해야 하는지 고민이다. 네이버가 중요하고 민감한 경영적 판단을 해야 하는 데 갑자기 (정부 측에서) 뭐라고 하면 문제의 소지가 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우리 기업의 해외 사업과 투자가 부당한 대우를 받지 않도록 하는데 최우선 가치를 두고 대응할 것”이라고 했다. 강도현 과기정통부 2차관은 “(정보 유출이 발생한) 지난해 11월부터 행정지도가 나온 때까지 네이버의 입장을 듣고 있었다. 외교부를 비롯한 관계부처와 긴밀한 협의 중”이라면서 책임 소재를 사실상 외교부로 돌렸다.
하지만 외교부는 윤석열 정부가 ‘한일 관계 개선’을 외교 업적으로 내세우는 만큼 눈치만 보는 상황이다. 지난달 30일 “네이버 측의 요청을 전적으로 존중해 협조하고 있다. 일본 측과도 계속 소통해 나갈 것”이라고 공지한 이후 별도의 대응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 오히려 외교부는 주한 일본대사 초치 등의 항의는커녕 일본 총무성을 도와 한국에 일본 정부의 입장을 전달하는 내용의 언론 인터뷰 섭외까지 도운 것으로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