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투세 폐지 근거로 ‘대만’ 거론한 윤석열 대통령, 전문가들은 “사례로 부적절해”
여전히 안갯속 걷는 금투세, 윤석열 대통령 "대만 반면교사 삼아야"
'대만' 언급에 전문가들, "대만 실패 주원인은 세금 아닌 실명제"
금투세 도입 강조하던 민주당도 '물러서기', 대중 반응 살피나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 도입 시점이 7개월도 남지 않았지만 시행 여부는 여전히 안갯속이다.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주식 시장 저평가 현상) 해소 방안 중 하나로 정부여당이 금투세 폐지를 내걸었기 때문이다. 4월 총선에서 압승한 야당이 힘겨루기를 이어가고 있지만, 대중들의 반응이 부정적인 만큼 야당도 한발 물러나는 모양새를 보이고 있다.
윤 대통령 “금투세 폐지 않으면 개인 투자자 타격 클 것”
윤석열 대통령은 9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취임 2주년 기자회견에서 “금투세를 폐지하지 않는다면 아마 우리 증시에서 엄청난 자금이 이탈이 돼 1,400만 개인 투자자들에게 막대한 타격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이 다른 국가에 비해 주식 관련 세금이 높다고도 언급했다. 윤 대통령은 “우리나라는 금융투자, 주식투자와 관련해 배당소득세나 상증세(상속·증여세), 이런 것이 선진국에 비해서 매우 높다”며 “여기에 금투세까지 얹히면 별로 남는 게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대만 같은 경우에는 금투세를 시행하겠다는 발표만 했다가 증시가 난리가 나고 막대한 자금 이탈이 돼서 결국 추진을 못 했다”고 덧붙였다.
금투세는 국내 주식·공모펀드 등 금융투자 상품으로 연간 5,000만원 초과 양도차익을 거둔 투자자에게 차익의 20~25%를 양도소득세로 물리는 제도다. 주요국 가운데 미국·영국·일본 등은 양도소득세를 매기고 있고, 중국·대만·홍콩 등은 적용하지 않고 있다.
윤 대통령이 금투세 폐지를 주장하면서 대만을 거론한 건, 대만이 한 차례 양도세를 도입했다가 주가 폭락을 겪고 거둬들인 바 있기 때문이다. 실제 지난 1989년 대만은 양도세를 도입해 상장주식에 대한 과세를 전면 시행한다고 발표했으나 시장의 반응은 극도로 부정적이었다. 양도세 도입을 발표한 이후 한 달 만에 대만 TWSE 지수는 8,789포인트에서 5,615포인트로 36% 급락했고, 일일 거래금액도 17억5,000만 달러(약 2조3,900억원)에서 3억7,000만 달러(약 5,057억원)까지 5분의 1토막이 났다. 대만은 결국 1990년 주식에 대한 양도세 부과를 전면 철회했다.
반면교사 사례로 ‘대만’ 꺼내 들었지만, 전문가들은 “글쎄”
하지만 전문가들 사이에선 대만의 사례를 금투세 도입의 반면교사로 삼기엔 무리가 있다는 반응이 지배적이다. 대만 증시가 폭락한 가장 큰 이유는 세금 자체보다 금융실명제 도입에 있었다는 이유에서다. 당시 대만은 금융실명제가 도입되지 않은 상황이었는데, 양도세에 세금을 부과하기 위해선 금융실명제 시행이 필수적이었다. 금융실명제 시행이 가시화하자 차명계좌가 드러나는 것을 우려한 자금이 대거 빠져나갔고 결과적으로 증시 폭락 현상이 발생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대만의 경우 정책 시행을 너무 섣불리 한 게 패착이었다는 의견도 있다. 대만은 정책 발표 후 3개월 만에 양도세 도입을 전격 시행했는데, 전산 시스템이 제대로 구축되지 않은 상황에서 정책 시행일을 앞당긴 탓에 혼란이 컸다는 것이다. 당시 시장 악재를 무시할 수 없다는 견해도 적지 않다. 중국과의 지정학적 갈등이 거듭 불거지던 시기 양도세 도입이 공식 발표된 것이 정책 실패의 원인이라는 주장이다.
실패 사례뿐 아니라 성공 사례도 함께 살펴봐야 한다는 조언도 쏟아진다. 대표적인 사례로 거론되는 건 일본이다. 일본은 지난 1953년 양도세를 폐지했다 1989년 재도입했다. 당시 일본은 정책 시행에 따른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초기에는 양도세와 거래세 부과를 병행하다 거래세율을 점차 인하하는 방식을 활용했다. 이후 제도가 정착됐다는 평가가 나온 1999년엔 증권거래세를 완전히 폐지했는데, 그 결과 증시에 큰 타격 없이 무난한 양도세 도입에 성공했다. 전문가들이 금투세를 지나치게 두려워할 필요 없다고 주장하는 건 이 같은 성공 사례도 분명 있기 때문이다.
총선 대승에도 발 빼는 야당, 금투세 논의 ‘공전’하나
이런 가운데 금투세가 본격 시행될 수 있을지 여부는 여전히 미지수로 남아 있다. 금투세에 대한 대중 불안이 높은 탓이다. 야당인 더불어민주당도 눈치를 보는 모양새다. 당초 민주당은 “금투세 폐지는 ‘부자 감세'”라며 금투세 시행 의지를 확고하게 드러내 왔다. 진성준 민주당 정책위의장이 지난달 25일 정책조정회의에서 “금투세는 단순하고 효율적인 과세체계, 선진국형 과세체계를 도입하자는 것이며, 우리 당은 예정대로 2025년부터 금투세가 차질 없이 시행되도록 할 것”이라고 언급한 것도 이 같은 맥락에서다.
그러나 윤 대통령이 기자회견을 통해 금투세 폐지를 거듭 언급하자 다소 태도를 누그러뜨렸다. 이날 박찬대 민주당 원내대표는 긴급 입장 발표 기자회견을 갖고 “금투세 폐지를 요구하는 시민들의 목소리가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조세 정의와 국민들이 원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잘 파악해서 신중하게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금투세에 대한 오해도 많이 있는데, 이 부분에 대해선 국민들과 소통의 시간을 충분히 갖겠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야당이 총선 대승을 거둔 가운데서도 금투세 폐지 이슈에서 발을 빼는 모습을 보인 만큼, 당분간은 관련 논의에 지지부진한 줄다리기만 반복될 것으로 시장은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