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 쿠팡 ‘알고리즘 조작’ 의혹에 과징금 5,000억원 부과 검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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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B 상품을 검색 상단에 노출하려 알고리즘 조정
임직원 동원한 리뷰도 '소비자 기만' 행위로 판단
쿠팡, 조작 의혹 부인 "매장의 상품 진열과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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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거래위원회가 알고리즘 조작으로 자체브랜드(PB) 상품을 검색 상단에 노출한 혐의를 받는 쿠팡에 대해 최대 5,000억원의 과징금 부과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에 쿠팡은 소비자가 원하는 상품을 우선으로 보여주는 것을 알고리즘 조작이라고 판단한 것은 무리한 해석이라며 반발하는 모습이다. 공정위는 조만간 전원회의를 열어 쿠팡에 대한 제재를 확정 지을 예정이다.

공정위 “알고리즘 조작해 고객 유인, 소비자 기만해”

10일 유통업계 등에 따르면 공정위는 쿠팡의 PB 상품 우대 행위가 공정거래법이 정한 ‘위계에 의한 고객 유인’ 행위에 해당한다고 보고 제재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를 발송했다. 앞서 지난 2021년 7월 공정위는 쿠팡이 PB 상품이 다른 납품 업체 상품보다 우선 노출되도록 검색 알고리즘을 조작했다는 혐의를 인지하고 조사에 착수했다. 이후 2022년 3월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는 공정위 조사로 인해 알고리즘 조작이 어려워진 쿠팡이 이번엔 임직원을 동원해 상품평을 다수 작성하도록 해 PB 상품의 노출도를 높이고 있다고 공정위에 신고했다.

조사 결과, 공정위는 혐의의 상당 부분을 사실이라고 판단했다. 특히 ‘쿠팡 랭킹 순’ 정렬 방식에 대해 지적했다. 쿠팡은 △판매 실적 △고객 선호도 △배송 기간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쿠팡 랭킹 순 정렬 순위를 결정한다고 앱에 고지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이와 무관하게 자사 PB 상품을 무조건 랭킹 목록 상위에 올라가도록 알고리즘을 조작했다는 것이다.

공정위는 쿠팡이 조작된 알고리즘을 적용해 쿠팡 랭킹 순이 가격이나 판매량 등 객관적인 기준에 따라 도출된 결과처럼 보이도록 소비자를 속였다고 판단했다. 임직원의 리뷰 조작 의혹도 소비자 기만행위에 해당한다는 게 공정위의 시각이다. 임직원 체험단이 작성했다는 문구를 상품평 말미에 삽입했지만, 소비자들은 일반 고객이 작성한 리뷰로 인식할 가능성이 높다는 판단에서다.

이와 함께 과징금 산정의 기준이 되는 ‘관련 매출’에 대해서는 알고리즘 조작 등의 주체가 쿠팡임을 고려해 PB 상품을 납품하는 자회사가 아닌 쿠팡 본사의 매출을 기준으로 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산정기간은 쿠팡이 최저가를 유지하기 위해 실시간으로 가격을 조정하는 알고리즘을 도입한 2019년부터다.

2019년 쿠팡의 매출은 7조1,530억원을 기록했다. 이후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면서 지난해 31조8,298억원으로 급성장했다. 이 중 관련 매출은 5년간 누계 기준으로 10조~12조5,000억원으로 추산된다. 공정거래법에 따르면 ‘위계에 의한 고객 유인’은 관련 매출의 4%까지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어 공정위는 최대 4,000억~5,000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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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쿠팡 뉴스룸

쿠팡 “고객 원하는 상품 노출한 것일 뿐, 조작이라 볼 수 없어”

쿠팡 측은 공정위의 주장을 전면 부인하고 나섰다. 알고리즘 조작 의혹에 대해서는 “고객이 원하는 제품을 원하는 방식으로 보여주는 것은 유통업의 본질”이라며 “배송 속도, 정품 여부, 가격 등에서 유리한 제품을 우선 노출하는 것을 두고 알고리즘 조작이라는 판단한 것은 모든 유통업체에서 이뤄지는 상품 진열 방식이 문제라고 지적하는 것과 같다”고 반박했다. 임직원 리뷰 조작 의혹에 대해서도 쿠팡은 “임직원을 포함한 체험단이 작성한 모든 후기는 체험단이 작성했음을 반드시 명시하고 있다”며 “임직원 상품평을 통해 PB 상품을 상단에 노출했다는 것도 사실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유통업계에서도 공정위 조치가 무리한 제재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공정위 주장대로라면 PB 상품이 잘 팔려도 검색 순위에서 내리는 등 기계적인 중립성을 지켜야 한다”며 “다른 나라에서도 유통업체에 검색의 중립을 요구하는 경우는 보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논란 때문에 일각에서는 전원회의의 심의 과정에서 과징금 액수가 줄어들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지난해 공정위가 CJ올리브영에 대해 대규모유통업법 위반으로 6,000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할 것이란 관측이 있었지만, 전원회의에서 올리브영의 시장 지배적 지위가 인정되지 않으면서 예상보다 크게 줄어든 19억원을 부과했다. 공정위는 오는 29일과 다음 달 5일 전원회의를 열어 쿠팡에 대한 제재를 확정할 계획이다. 쿠팡은 “임직원 상품평을 통해 자사를 우대했다는 지적은 사실이 아니며 알고리즘 조작도 없었다”며 “전원회의를 통해 사실관계를 밝히고 적극 소명할 것”이라고 밝혔다.

2020년, 네이버에 ‘알고리즘 조작’ 혐의로 과징금 부과

이커머스 플랫폼의 알고리즘과 관련한 공정위의 과징금 부과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2020년 공정위는 네이버가 2012~2020년 비교쇼핑 서비스인 ‘네이버쇼핑’의 검색 알고리즘을 자사의 쇼핑몰 플랫폼 ‘스마트스토어’의 경쟁사들에 불리한 방식으로 알고리즘을 부당하게 조정했다고 판단해 265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이와 함께 동영상 서비스인 ‘네이버TV’에도 2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하고 시정명령을 내렸다. 이는 온라인 플랫폼 사업자의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과 불공정거래 행위에 대한 첫 번째 제재 사례다.

당시 공정위 조사 결과에 따르면 네이버는 2012년 2~5월부터 G마켓·11번가·옥션·인터파크 등 경쟁사들의 네이버쇼핑 검색 결과를 낮게 조정했다. 같은 해 7월에는 네이버쇼핑 검색 결과 페이지에서 자사 스마트스토어에 입점 상품의 비율이 15~20%가 되도록 했다. 이후 2012년 12월, 2013년 1월과 9월에도 알고리즘을 변경하면서 네이버에 입점한 자사 상품을 우대하는 효과를 반영했다.

이에 대해 네이버는 “소비자가 원하는 검색 결과를 보여주기 위해 검색 알고리즘을 ‘조정’한 것이지 ‘조작’한 게 아니다”라며 공정위 처분에 불복해 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법원은 공정위의 손을 들어줬다. 2022년 12월 서울고법 행정 6-1부(최봉희·위광하·홍성욱 부장판사)는 네이버가 공정위를 상대로 낸 ‘시정명령 및 과징금 납부 명령 취소’ 소송을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당시 재판부는 “네이버 직원들이 주고받은 이메일이나 회의자료 등에 의하면 네이버는 검색 알고리즘을 조정하면서 스마트스토어 상품의 노출 빈도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고 향후 계획을 수립했다”며 “네이버의 비교쇼핑 서비스는 오픈마켓의 중요한 유입 경로에 해당하고, 네이버가 스마트스토어 입주업체를 상대적으로 우대해 이들의 매출을 촉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시장 지배적 지위를 남용한 행위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이처럼 최근 공정위는 알고리즘 조작 등과 관련해 플랫폼에 대한 규제 수위를 높이고 있다. 실제로 2020년부터 3년간 공정위가 네이버와 카카오에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으로 부과한 과징금은 534억3,2000만원에 달한다. 공정위는 2020년에만 네이버쇼핑과 네이버동영상, 네이버부동산에 총 과징금 277억3,200만원을 부과했으며 2023년에는 카카오모빌리티가 카카오T 앱 일반호출 배차 알고리즘을 조작해 ‘카카오T블루’에 콜을 몰아주는 등 자사 가맹택시를 우대했다며 시정명령과 함께 257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이는 전년도 카카오모빌리티 영업이익의 2배가 넘는 규모다.

美·EU 등 주요국에서도 ‘알고리즘 투명성’ 논란

이같은 ‘알고리즘 규제’는 비단 한국에서만 논란이 되는 것은 아니다. 미국, 유럽연합(EU)을 비롯한 전 세계 주요 국가에서도 알고리즘 투명성 문제를 놓고 열띤 공방을 벌이고 있다. 이들 국가는 알고리즘 규제가 사회의 기본 가치를 훼손하지 않는 것을 최우선 가치로 삼고 법과 제도의 정비에 초점을 두고 있다. 혁신과 규제, 신기술과 사회적 혼란 사이에서 균형을 모색하기 위해 다소 느리더라도 신중하게 접근하겠다는 복안이다.

먼저 미국의 알고리즘 규제는 각 주 정부가 독자적으로 집행하는 시스템이다. 다만 지난 2020년 연방거래위원회(FTC)가 발표한 ‘인공지능(AI)과 알고리즘 사용지침(Using artificial intelligence and algorithm)’에서는 알고리즘의 오류와 편향성 등을 규제하기 위해 투명성, 설명가능성, 공정성, 실증적 타당성, 정확성과 최신성 등의 원칙을 제시함으로써 사회적 합의의 토대를 마련했다.

EU는 지난해 4월 알고리즘투명성센터(ECTA)를 발족했다. ECTA는 AI를 활용한 추천 시스템 등이 인종이나 젠더에 대한 편견을 드러내지 않는지 감시하고 평가하는 역할을 한다. 올해는 디지털서비스법(DSA)를 전면 시행해 온라인 플랫폼에서 허위정보나 혐오발언들이 확대 재생산되는 것을 막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특히 DSA는 페이스북, 구글 등 빅테크 기업들이 추천 알고리즘을 투명하게 공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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