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주 지연·분양가 상승 문제에 ‘폭탄’된 사전청약, 결국 제도 전격 폐지
문재인 정부 시기 부활한 사전청약, 2년 10개월 만에 또 폐지 수순
본청약 지연 등 기존 문제 답습에 불만↑, 분양가 상승 등 되려 '퇴보'하기도
수요자도 공급자도 '불편한 거래', 근본 원인은 '관련 제도 미비'
공공분양 아파트 사전청약 제도가 폐지된다. 전임 정부가 집값 급등기에 수요 분산을 목표로 해당 제도를 부활시킨 지 2년 10개월 만이다. 그간 시장에선 사전청약을 받을 때 약속했던 본청약 시기가 길게는 3년 넘게 뒤로 밀리면서 ‘희망 고문’이라는 지적이 이어져 왔다. 실제 제도 부활 후 예고한 본청약 시기를 지킨 아파트 단지는 단 1개뿐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사전청약 제도 전격 폐지한다
국토교통부는 14일 사전청약 제도를 더 이상 시행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사전청약은 아파트 착공 때 진행하는 청약 접수를 1~2년 정도 앞당겨 받는 제도로, 지난 2009년 이명박 정부 때 보금자리주택에 처음 적용됐지만 폐지된 바 있다. 입주가 3~4년 늦어지면서 계약을 포기하는 사례가 많았던 게 원인이다.
이후 문재인 정부가 사전청약 제도를 다시 도입하면서 지연 사태가 없게 하겠다고 했지만, 이번에도 본청약이 예정대로 진행되는 사례는 거의 없다시피 했다. 이명박 정부 때와 마찬가지로 지구 조성과 토지 보상이 완료되지 않은 상태에서 사전청약을 받다 보니 문화재가 발굴되거나 맹꽁이 같은 보호종이 발견되면 본청약이 기약 없이 늦어진 것이다.
국토부에 따르면 사전청약이 재도입된 2021년 7월부터 지난해 12월까지 공공에서 진행한 사전청약 물량은 99개 단지 5만2,000가구에 달하는데, 이 중 본청약이 완료된 건은 13개 단지 6,915가구에 불과했다. 13개 단지 중 사전청약 당시 예고한 본청약 시기를 지킨 곳도 양주회천 A24 단지(825가구) 한 곳뿐이었다. 정부가 사전청약 제도를 다시 폐지하겠다 나선 이유다.
일정 지연·분양가 상승 폐해에 ‘청약 무용론’ 나오기도
사전청약 제도에 대한 불만은 지난 2022년부터 꾸준히 제기돼 왔다. 일정이 제대로 맞춰지지 않는 건 물론 본청약 지연으로 분양가가 상승하는 문제도 거듭 이어졌기 때문이다. 예컨대 ‘인천 검단신도시 AB20-1블록 제일풍경채 검단 3차’의 경우 계획보다 1년 이상 본청약이 늦어지면서 분양가가 대폭 올랐다. 2022년 1월 사전청약 당시 알려진 추정분양가는 전용 84㎡A타입 기준 4억6,070만원이었으나, 본청약에선 최고 5억2,220만원으로 13.3%나 급등했다. 전용 115㎡A도 6억1,880만원에서 최고 6억7,900만원으로 9.7% 뛰었다.
이렇다 보니 사전청약에 당첨된 이들이 이탈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실제 본청약이 예정보다 늦어진 8개 단지의 모집공고를 분석한 결과 본청약에 응한 사전 당첨자 수는 평균 45%에 그쳤다. ‘인천 검단신도시 AB19블럭 호반써밋’의 경우 사전청약에서 771가구를 모집했으나 이들 중 상당수가 계약을 포기하면서 사전 당첨자 수는 301가구로 절반 이상까지 줄었고, ‘검단신도시 AB20-2블록 중흥S-클래스’도 사전청약으로 1,344가구를 모집했으나 대거 이탈로 최종 계약자는 729가구에 그쳤다. 청약 당첨자들 사이에서 ‘사전청약 무용론’이 피어오른 것도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던 셈이다.
공급자도 수요자도 ‘불편한 거래’, 원인은 미흡한 제도
시간이 흐름에 따라 분양가가 오른 건 원자잿값 급등으로 건축비가 상승한 영향이 크다. 일례로 ‘인천 검단신도시 AB20-1블록 제일풍경채 3차’의 84타입 건축비는 사전청약 당시 2억9,299만원에서 본청약 당시 3억5,428만원으로 21%나 증가했다. ‘검단신도시 AB20-2블록 민간사전청약 중흥S클래스’의 경우 84타입 추정분양가에서 건축비는 2억9,700만원이었으나 본청약 당시 건축비는 3억4,300만원까지 올랐다. 101타입 또한 3억1,500만원에서 3억6,600만원까지 상승했다. 건축비로만 두 타입 모두 16%가 증가한 것이다.
해당 사업장들은 국토부가 공시한 건축비 고시 인상분 대비 훨씬 높은 수준의 건축비 상승 폭을 보이면서 청약 당첨자들의 볼멘소리를 들어야 했으나, 건설사들도 불만이 없지 않았다. 지자체의 인허가 지연으로 사업이 늦어지면서 원자잿값 급등으로 분양 원가가 오른 건데, 민원의 화살은 오롯이 건설사들에만 쏠린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대해 한 건설사 관계자는 “건설사 입장에서는 청약을 두 번이나 진행하는 등 일이 두 배 이상으로 많아지기 때문에 사전청약을 꺼린다”며 “당시 인센티브 제공 등 정부 독려로 인해 사전청약을 하긴 했지만 완성된 설계도조차 없는 상태로 청약이 진행되는 만큼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는 제도”라고 지적했다. 결국 사전청약 제도는 공급자 입장에서도 수요자 입장에서도 불편한 거래였던 셈이다.
이처럼 양측 모두에서 불만이 터져 나오는 건 민간 사전청약과 관련한 제도 자체가 미비하기 때문이다. 2021년 문 정부는 사전청약 제도를 도입하면서도 본청약 시기 및 확정 분양가 등에 대한 별도의 규정은 마련하지 않았다. 이명박 정부 시기 사전 당첨자들에게 물가상승률 등의 반영 없이 사전예약 때 밝힌 분양가 그대로 주택을 공급해 온 것과는 대비된다. 사실상 사전 당첨자 보호 측면에서 제도가 10여 년 전보다도 퇴보한 것이다. 이에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사전청약 제도의 미비함을 인지하고 반면교사 삼아 미흡한 제도의 폐해가 재현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쏟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