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흘 만에 철회한 ‘해외직구 규제’, 알테쉬 안전성 논란은 여전
80개 품목 '해외직구 원천 차단'에 반발 확산
사흘 뒤에 '위해성 확인된 제품만 제한' 해명
중국 제품 안전성 논란 속 KC인증 기준 논의
정부가 안전인증을 받지 않은 해외 제품에 대한 직접 구매(해외직구) 금지 방안을 내놨다가 사흘 만에 번복했다. 과도한 소비자 선택권 제한이라는 반발이 커지자 이를 철회한 것이다. 알리익스프레스, 테무, 쉬인 등 중국 이커머스 플랫폼의 공세를 의식해 내놓은 정책이 되레 소비자 혼란만 부추겼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게 됐다.
‘KC 미인증 제품 직구 금지’ 소비자 혼란만 가중
19일 이정원 국무조정실 국무2차장은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예정에 없던 브리핑을 열어 “80개 위해 품목의 해외직구를 전면 금지·차단한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라며 “국민 여러분께 혼선을 끼쳐 드려서 대단히 죄송하다”고 말했다. 이 차장은 “80개 품목에 대해 관세청, 산업통상자원부, 환경부 등과 함께 집중적으로 위해성 조사를 하고 “실제로 위해성이 확인된 제품에 한해서만 6월부터 반입을 제한한다는 취지”라며 “위해성이 없으면 지금처럼 직구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앞서 지난 16일 국무조정실 등 관계부처는 어린이 용품과 전기·생활용품 80개 품목에 대해 국가통합인증마크(KC)가 없는 제품의 해외직구를 원천 금지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당시 한덕수 국무총리는 국정현안관계장관회의를 열어 “해외직구 급증에 따라 안전성이 입증되지 않는 제품이 국내로 반입되고 있다”며 “80개 품목에 대해 유해성이 확인된 경우, 신속한 차단 조치를 통해 국민들이 안심하고 제품을 사용하실 수 있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KC 인증이 없는 경우 해외직구가 금지되는 품목으로 유아차, 완구 등 어린이 제품 34개 품목과 전기온수매트 등 전기·생활 용품 34개 품목을 제시했다. 가습기용 소독제 등 생활화학제품 12개 품목은 신고·승인이 없으면 금지 대상이 된다고 밝혔다.
하지만 사흘이 지나 브리핑에 나선 정부 관계자는 “사전에 해외직구를 차단하고 금지하려면 법적인 근거가 마련돼야 하는데 다음 달부터 갑자기 이 모든 품목을 법률에 따라 사전적으로 차단·금지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라며 “정부는 이러한 대안조차 검토해 본 적이 없다”고 해명했다.
소비자 선택권의 과도한 침해, 국민청원까지 등장
사흘 만에 해외직구 금지 조치를 사실상 철회한 것을 두고 정부 스스로 논란을 키웠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애초 이번 조치는 안전인증 없이 국내로 유입된 해외직구 제품에서 유해성 물질이 검출됐다는 검사 결과가 나오는 상황에서 알리익스프레스, 테무 등 해외직구 제품에 대한 안전 규제를 강화하고 국내 중소 제조업체에 대한 역차별 해소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하지만 관련 법률은 물론 해당 규제를 위한 지침과 시행계획이 전혀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해외직구 원천 차단’을 내세우면서 소비자들의 혼란을 가중시켰다. 실제로 발표 당시 정부가 배포한 6쪽 분량의 보도자료 제목은 ‘국민 안전을 해치는 해외직구 제품 원천 차단’으로 KC 인증을 받지 않은 어린이제품과 전기·생활용품의 해외직구를 전면 금지한다는 의미로 읽힌다.
당장 소비자들은 선택권을 과도하게 침해하는 규제라며 반발했다. 해외직구를 하는 이유가 국내에 원하는 물건이 없거나 더 저렴한 가격에 제품을 구매하기 위한 것인데 KC 인증을 받은 물건만 직구가 허용될 경우 가성비 효과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특히 유아차 등 유아 용품을 해외직구로 사는 부모들의 반발이 거셌고 배터리, 충전기 등 일상 생활에 자주 사용하는 전자제품까지 금지 품목에 포함되면서 컴퓨터·전자기기 커뮤니티와 소셜미디어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다. 지난 17~18일에는 광화문·용산 등에서 ‘직구제한 개인통관 제한조치 철회하라’는 피켓을 든 1인 시위가 다수 열리기도 했다.
규제를 반대하는 국민청원도 등장했다. ‘해외직구 자유를 보장해 주세요’라는 제목의 청원글에서는 “정부는 안전을 이유로 수많은 제품의 해외직구를 금지하려 하지만 국민 스스로 위험을 평가하고 선택할 자유가 있다”며 “국민을 과보호한다면 이는 국민 자유의 본질을 훼손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여권에서도 질타의 목소리가 나왔다. 총선 이후 현안에 대한 언급을 자제해 온 한동훈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개인 해외직구 시 KC 인증 의무화 규제는 소비자의 선택권을 지나치게 제한하므로 재고돼야 한다”는 게시물을 올렸다. 유승민 전 국민의힘 의원도 “안전을 내세워 포괄적 일방적으로 해외직구를 금지하는 것은 무식한 정책”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정부 “법 개정, KC 인증 적용 여부 등 검토할 것”
실제 정부가 해외직구를 제한하기 위해서는 관세법 개정이 필요하다. 관세법 제237조에 따라 정부는 ‘국민 보건 등을 해칠 우려가 있는 물품’의 통관을 보류할 수 있다. 정부는 “앞으로 다양한 의견 수렴 과정을 거쳐 법률 개정 여부를 신중히 검토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그동안은 산업부, 환경부, 서울시 등 관계기관이 주관한 안전성 조사 결과와 향후 추진할 조사에서 위해성이 확인된 제품에 한해 반입을 제한한다는 입장이다. 일례로 앞서 관세청과 서울시의 안전성 조사에서 발암가능물질이 국내 안전 기준치 대비 270배 초과 검출된 ‘어린이용 머리띠’나 기준치를 3,026배 초과한 카드뮴이 검출된 ‘어린이용 장신구’ 등 위해성이 확인된 특정 제품은 반입이 제한된다. 위해성 판단 기준을 KC 인증 여부로 할지에 대해서도 여러 가능성을 열어 놓고 재검토할 계획이다.
이커머스 업계에서는 해외직구 제품의 안전관리 기준으로 KC 인증만이 적용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중국산 저가 제품에서 인체에 치명적인 카드뮴, 납 등이 검출되는 등 국내 소비자들에게 유해 제품이 무방비로 노출돼 있는 상황에서 안전 규제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있다. 최근 관세청이 알리익스프레스와 테무에서 판매하는 장신구 404개를 직접 구매해 성분을 분석한 결과, 24%에 해당하는 제품에서 안전 기준치를 초과하는 발암 물질이 검출된 바 있다.
수많은 직구 제품에 대한 조사가 제대로 이뤄질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의문이 제기된다. 정부는 직구 자체를 막을 방법은 없지만 통관 과정에서 최대한 걸러낼 계획이다. 이를 위해 통관의 심사 인력을 대폭 보강할 방침이지만 현실적으로 통관 전수조사를 통해 안전관리 기준을 통과한 물품을 걸러내는 것도 쉽지 않다. 실제로 올해 1분기 국내로 들어온 통관 물량은 약 4,133만 건이며, 하루에만 46만 건에 달한다.
국내 중소기업의 역차별 논란도 짚어봐야 할 문제다. 해외직구 제품들은 제대로 된 인증이나 규제 없이 단순한 안전성 검사만 받으면 되는 데 반해 국내 중소기업은 KC 인증 등 수많은 규제 속에서 제품을 생산하고 판매해야 한다. 이 때문에 제조업 등 관련 업계에서는 안전성 인증 과정에서 결국 국내 중소기업이 생산한 제품의 가격이 더 비싸질 수밖에 없고 이는 경쟁력 하락으로 이어져 해외직구 판매자만 살아남게 될 것이란 우려가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