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의 ‘연금개혁’, 공적연금 통합에 기초연금 인상까지 우왕좌왕
초고령사회 앞두고 공적연금 구조개혁 논의 뜨거워
지난해 '국민연금운영계획' 발표했지만 구체성 미흡
'기초연금 40만원 인상'에 서민들 부담만 가중 우려
국민연금개혁은 윤석열 대통령이 정부 출범 당시 약속한 ‘3대 개혁과제’ 중 하나다. 최초 보험료 인상이 이뤄질 것이란 기대를 모았지만 여야 간 소득대체율에서 이견을 좁히지 못하면서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오는 29일 21대 국회 임기 종료를 앞두고 24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연금개혁안 막판 처리를 위한 영수회담을 제안했지만, 정부와 여당이 이를 거부하면서 사실상 연금개혁이 차기 국회로 넘어갈 가능성이 높아졌다. 정부와 여당은 22대 국회에서는 모수개혁에 앞서 공적연금의 구조개혁이 논의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여야, 보험료 인상 합의에도 소득대체율 1% 차이 좁히지 못해
24일 정치권에 따르면 천준호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비서실장은 전날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제안한 ‘국민연금개혁안 원포인트 영수회담’과 ‘여야 대표·대통령 간 3자회담’을 대통령실이 거절했다고 밝혔다. 천 실장은 “영수회담과 3자회담 제안과 실무 협의를 위해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에게 연락했지만, 대통령과 정부가 ‘지금은 함께 하기 어렵다’는 의사를 밝혔다”고 말했다.
현재 연금개혁 논의의 핵심은 국민연금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이다. ‘보험료율’은 국민연금 가입자가 소득 대비 내는 돈의 비율로 현행 보험료율은 9%다. ‘소득대체율’은 가입자가 납부한 기간의 평균 소득 대비 받는 돈의 비율을 의미하며 현재 42%로 오는 2028년까지 40% 낮출 예정이다. 21대 국회에서 여야는 보험료율 인상에 합의했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다. 그간 두 차례 연금개혁이 있었지만, 소득대체율을 낮추는 선에서만 이뤄졌다. 보험료를 더 내는 방안에 대해서는 반발을 우려해 손을 대지 못했는데 이런 상황에서 국회가 보험료율을 현행 9%에서 13%로 올리는 데까지 뜻을 모은 것이다.
반면 소득대체율 합의에는 실패했다. 재정 지속성을 강조하는 국민의힘은 43%, 노후 소득 보장을 중요시하는 민주당은 45%를 각각 주장해 왔다. 여야가 입장차를 좁히지 못하면서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연금특위)의 여당 간사인 유경준 의원이 최근 구조개혁 등을 조건으로 ‘소득대체율 44%’ 절충안도 제안하기도 했다. 하지만 최종적으로는 이견을 좁히지 못했고 결국 지난 7일 여당 소속의 주호영 연금특위 위원장이 ‘협상 결렬’을 선언했다.
여야가 주장하는 소득대체율 44%와 45%는 수치상으로 1%p 차이지만 적자 규모 등이 복잡하게 얽혀있다. 연금특위에 따르면 44%로 할 경우 누적 수지 적자를 3,738조원 줄일 수 있고, 45%로 하면 적자가 2,766조원 줄어든다. 다만 기금 소진 시점은 각각 2064년, 2063년으로 큰 차이가 없다. 결국 저출생·고령화로 인해 40년 안에 기금이 고갈되는 흐름을 바꿀 수는 없다는 뜻이다. 연금 전문가들이 “여야의 공방 자체가 포퓰리즘에 불과하다”고 지적하는 이유다.
22대 국회에선 모수개혁 아닌 구조개혁 관점에서 논의해야
여야 간 공방이 길어지자 국민의힘은 여야 합의가 불발된 연금개혁을 22대 국회에서 구조개혁을 중심으로 재추진해야 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연금특위 여당 간사인 국민의힘 유경준 의원은 지난 8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제대로 된 연금개혁을 위해선 22대 국회에서 모수개혁은 물론 구조개혁 논의도 돼야 한다”고 밝혔다. ‘모수개혁’은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 등 국민연금의 핵심 수치를 바꾸는 것이고 ‘구조개혁’은 국민연금과 기초연금, 각종 특수직역연금 간 통합 등 연금의 구조 자체를 바꾸는 것을 말한다.
유 의원은 “구조개혁 관련 논의가 이번 공론화 과정에서 세밀하게 이뤄졌어야 했는데 피상적으로 그쳐 다시 한번 아쉬움을 표한다”며 “22대 국회에서는 반드시 모수개혁뿐인 반쪽짜리 개혁이 아니라, 구조개혁 중심의 지속 가능한 연금개혁을 추진해 주길 간곡히 부탁한다”고 강조했다. 같은 당 안철수 의원도 이날 페이스북에 “여야의 협상안 모두 연금 고갈 시기를 조금 늦출 뿐, 지속가능성을 담보할 수 없는 안”이라며 “22대 국회에서 지속 가능한 연금개혁을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도 지난 22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연금개혁에 대한 정부의 의지에는 변함이 없다”며 “얼마 남지 않은 시간에 급하게 하기보다는 22대 국회에서 충분한 논의와 사회적 합의 거쳐서 논의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국민연금은 물론 기초연금·공무원연금·퇴직연금·개인연금 등 전반을 아우르는 구조개혁이 필요하다고 강조한 것이다. 그러면서 “여야가 모두 기초연금을 인상해야 한다고 했지만, 기초연금이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에 단순히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만 합의하는 것에 앞서 구조개혁이 필요한 사항”이라고 덧붙였다.
국민연금·기초연금 간 관계 재설정이 ‘구조개혁’의 주요 과제
기초연금과 국민연금 두 제도 간 관계 재설정이 국민연금 구조개혁의 주요 과제로 떠오른 것은 지난해부터다. 여당이 두 제도 간 연계를 언급하자 주무부처인 복지부 장관이 화답하면서 개혁 논의의 중심이 됐다. 지난해 10월 유의동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모수개혁은 국민연금 기금 소진을 일정 기간 늦추는 ‘반쪽짜리 개혁’에 불과하다”며 △국민연금 운용 방식을 ‘부과식’에서 ‘적립식’으로 단계적 전환 △국민연금과 기초연금의 점진적 통합 방안을 제시했다.
두 공적연금의 통합을 논의하기 위해서는 두 제도의 차이에 대해 이해할 필요가 있다. 국민연금과 기초연금은 모두 공적연금이지만 재원에 차이가 있다. 국민연금은 가입자의 보험료를 중심으로 운용되지만 기초연금은 국비와 지방비로 구성된다. 재원의 차이는 수령자의 차이로 이어진다. 국민연금 급여를 받기 위해서는 최소 10년의 가입 기간을 충족해야만 연금 형태로 받을 수 있다. 반면 기초연금은 소득과 자산조사를 통해 하위 70%의 노인에게 지급한다.
국민연금과 기초연금의 관계를 들여다보면 기여 기반의 국민연금보다 기초연금의 급여 수준을 높이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기초연금으로 지급하는 월 30만원은 10년 가까이 국민연금 보험료를 납부해야 받을 수 있는 금액이다. 장기간 국민연금에 기여한 사람보다 기여하지 않은 사람이 더 많은 연금을 받게 된다면 이는 국민연금의 제도적 존립을 위협하는 사안이 될 수 있다. 따라서 기초연금의 급여 수준은 국민연금 급여의 평균 이상으로 올라가도록 책정하기 어렵다.
재정 측면에서도 쟁점이 있다. 일각에서는 국민연금의 기금 소진 후 부담해야 할 보험료만을 내세워 국민연금 보장성 강화가 아닌 기초연금 강화를 주장한다. 얼핏 보면 미래 세대를 위한 제안처럼 들리지만 사실상 공적연금을 통한 소득 보장을 줄이는 방안이다. 국민연금은 미리 낸 보험료로 급여를 지급하고, 남은 기금으로 후세대의 보험료 인상분을 상당 부분 준비 자금으로 가지고 있게 된다. 이에 반해 기초연금은 해마다 필요한 예산을 국고에서 편성해 집행하는 방식이다. 결국 국민연금의 보장성이 강화되지 않은 채 기초연금에만 의존하는 구조는 노령인구의 규모가 커지면 결국 미래세대의 세 부담을 키울 수밖에 없다.
일각에서는 두 공적연금의 점진적 통합을 ‘보편적 기초연금제’를 염두에 둔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국민연금의 연금 수령액은 가입자 평균소득과 가입자 본인 보험료 평균소득을 더해 산출한다. 가입자의 평균 소득에 연동되기 때문에 가입자 중 ‘평균 이하 소득자’가 ‘평균 이상 소득자’보다 더 많은 이익을 보는 소득재분배 기능을 한다. 그런데 ‘보편적 기초연금제’는 국민연금에서 소득재분배 기능을 빼 완전 ‘소득비례 연금’으로 전환하고 노인 세대 누구에게나 주는 보편적 연금을 지급하자는 게 정책 아이디어의 골자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국민연금에서 소득재분배 기능을 빼면 소득대체율이 20%대로 하락하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수용하기 어려워 실현 가능성이 낮다”고 입을 모은다.
연금 수령 실효성 논란에 가입자 수 감소 추세
지난해 10월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제5차 국민연금종합운영계획’에는 현행 30만원 수준인 기초연금액을 40만원으로 인상하는 방안을 담았다. 다만 구체적인 방식과 시기는 제시하지 않았다. 이번 달에는 윤석열 대통령이 ‘임기 내 기초연금을 40만원으로 인상하겠다’는 뜻을 두 차례나 천명했다.
올해 33만원 수준인 기초연금액은 매년 물가상승률이 반영돼 수년 내에 40만원을 넘어설 전망이다. 하지만 정부가 이 기간이 인위적으로 단축하겠다는 의지를 밝히면서 국가 재정에 큰 부담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실제로 40만원 인상을 위해서는 4조8,000억원의 추가 예산이 필요하다. 노인 700만 명에게 기초연금을 지급하는 데 필요한 예산은 총 30조원에 육박할 것으로 추산된다.
수령하는 연금액도 살펴봐야 할 문제다. 기초연금 40만원이 현실화하면 부부를 기준으로 감액 20%를 적용받아 64만원을 수령할 수 있다. 이는 평생 보험료를 내고 손에 쥐는 국민연금 평균액 64만원과 같다. 더욱이 국민연금을 수령하는 사람의 절반 정도가 월 수급액이 40만원 정도에 불과하다. 국민연금을 평생 내야 받을 수 있는 연금액이 공짜로 받는 기초연금과 같거나 더 적다는 뜻이다.
‘기초연금-국민연금 연계 감액’이란 독소 조항도 존재한다. 국민연금 수령액에 따라 기초연금을 깎는 조항으로 국민연금 수령액이 기초연금의 150%(2023년 말 기준 약 49만원)를 초과하면 기초연금이 최대 50% 줄어든다. 연금이 삭감되는 수급자는 40만 명 안팎으로, 기초연금 수급 전체 노인의 약 6% 수준이며 평균 기초연금 감액 규모는 월 7만원 정도다. 이에 국민연금 수령자들은 “연계 감액 제도 탓에 기초연금을 50% 덜 받고, 또 연 2,000만원 넘게 받으면 건강보험 피부양자에서도 탈락한다”며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이러한 불만들이 계속 쌓이면서 국민연금에 자발적으로 가입하던 사람들의 수도 지속적으로 줄어들고 있다. 국민연금공단의 ‘국민연금 공표 통계’에 따르면 올해 1월 말 기준 국민연금 임의가입자 32만5,411명과 임의계속가입자 52만1,983명을 합한 자발적 가입자 수는 84만7,394명이다. 국민연금의 자발적 가입자는 2022년 1월 94만7,855명으로 정점을 찍은 후 감소세가 뚜렷하다.
자발적 가입자 감소에는 인구 감소와 직장 취업에 따른 사업장 가입자 전환 등 여러 요인이 있지만 연금 수령액이 연간 2,000만원을 넘으면 건강보험 피부양자 대상에서 탈락하는 데다, 만 65세 이상 소득 하위 70%에 속하면 기초연금을 받을 수 있는 점이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