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조원 실탄 장전, 반도체 굴기에 속도 내는 중국
"미국 규제 맞서라" 중국, 반도체 투자 또 늘렸다
반도체 사업 관련 지출 추산액만 200조원 육박
미국, EU, 한국 등 줄줄이 반도체 경쟁력 강화 나서
중국이 자체 반도체 공급망 확립을 위한 대규모 반도체 투자 기금을 조성했다. 미국의 대중국 반도체 규제 강도가 점차 높아져 가는 가운데, 반도체 굴기에 속도를 내며 본격적으로 시장 입지를 다지는 양상이다. 세계 각국은 중국의 움직임을 견제하며 자체 반도체 경쟁력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중국, 반도체 육성 3차 펀드 조성
27일(현지시간) 중국 기업정보 사이트 톈옌차에 따르면, 지난 24일 중국의 반도체산업 육성 펀드인 국가집적회로산업투자기금은 3,440억 위안(약 64조6,700억원) 규모의 3차 펀드를 조성했다. 미국의 중국산 반도체 규제가 지속되는 가운데, 소위 ‘반도체 굴기’에 속도를 내기 위해 대규모 자금 투자를 결정한 것으로 풀이된다.
펀드 조성에는 중앙 정부와 중국 공상은행을 포함한 국영은행, 기업 등이 참여했다. 선전과 베이징 등 지방 정부가 소유하고 있는 투자 회사들도 출연을 단행했다. 선전시는 지난 수년간 미국의 반도체 수출 제재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화웨이 테크놀로지스를 구제하기 위해 남부 광둥성의 여러 반도체 제조공장에 자금을 지원해 온 바 있다.
3차 펀드의 최대 주주는 600억원을 납입해 17% 지분을 갖고 있는 중국 재무부다. 이에 업계에서는 해당 펀드가 사실상 정부가 직접 운영하는 기금이 될 것이란 관측이 제기된다. 로이터는 3차 펀드 자금이 중국 최대 반도체 장비 제조사인 나우라 등에 초점을 맞춰 사용될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했다.
꾸준히 불어나는 투자액
주목할 만한 부분은 중국 정부의 반도체 투자액이 점차 불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중국 정부는 지난 2015년 하이테크 산업 육성책 ‘중국제조 2025’를 발표하며 반도체 산업 육성 펀드를 조성했다.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 집권 이래 10∼30%에 불과했던 반도체 자급률을 2025년 70%까지 높인다는 목표를 수립, 공격적인 기반 투자에 나선 것이다.
1차 펀드 규모는 1,400억 위안(약 26조3,000억원), 2019년 조성된 2차 펀드 규모는 2,000억 위안(약 37조6,000억 원) 수준이었다. 1∼3차 펀드에만 총 6,867억 위안(약 129조1,000억원)에 달하는 거금이 투입된 셈이다. 중국 정부가 반도체 산업 육성 펀드 외에도 다양한 반도체 지원을 실시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실질적인 투자액은 이를 훌쩍 뛰어넘을 가능성이 크다.
실제 미국반도체산업협회(SIA)의 최근 추산에 따르면, 중국은 반도체 산업에 1,420억 달러(약 193조7,000억원) 이상의 지출을 단행한 것으로 보인다. 정부의 공격적인 지원 속에 등기자본금 규모가 610억 달러(약 83조2,000억원) 이상인 중국 반도체 기업 숫자는 어느덧 200개를 돌파했다.
세계 각국의 대응은?
중국이 반도체 시장 내 영향력을 꾸준히 확대해 가는 가운데, 세계 각국은 경쟁력 강화를 위한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미국은 자국 중심으로 반도체 생태계를 재편하기 위해 반도체법을 제정하고, 보조금을 앞세워 세계적인 기업들의 투자를 유치하고 있다. 첨단 반도체 및 반도체 장비의 대중국 수출을 막기 위한 미국의 통제 조치 역시 꾸준히 강화되는 추세다.
EU(유럽연합) 역시 지난해 역내 반도체 생산 역량 증대를 위한 반도체법 시행에 들어갔다. EU의 반도체법은 현재 약 10%인 EU의 글로벌 반도체 시장 점유율을 2030년까지 20%로 2배 확대하는 것을 목표로 하며, 예산과 민간 투자금까지 포함해 총 430억 유로(약 63조6,000억원)가 투입될 전망이다. 일본은 2021년 6월 경제안보 관점에서 반도체 산업을 육성하기 위한 계획을 수립했으며, 이후 253억 달러(약 34조5,000억원) 규모의 자금을 확보한 상태다.
한국 정부는 지난 23일 산업은행에 17조원 규모의 반도체 금융지원 프로그램을 신설하는 방안을 포함해 총 26조원 규모의 지원안을 내놨다. 올해 일몰 예정이던 세액공제를 연장하는 한편, 토종 ‘팹리스'(반도체 설계 전문기업) 업체 등을 지원하기 위한 1조원 규모 반도체 생태계 펀드도 조성할 예정이다. 경기 남부에 조성 중인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와 관련해서는 전기·용수·도로 등 인프라 시설 조성 속도를 높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