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기업 ‘위장술’에 미 블랙리스트도 유명무실, 대중국 규제 실효성 의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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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국 수출 통제 강화한 미국, 중국 기업 리브랜딩엔 '속수무책'
사실상 동력 잃은 중국 규제, '통제 강화' 목소리↑
일각선 '기술 규제' 필요하단 지적도, "대응 방안 사전 차단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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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정부가 안보 우려에 중국 기업들을 블랙리스트에 올리면서 중국 기업이 미국 기업으로 위장하는 사례가 다수 발생했다. 미국 기업인 척 포장을 바꾸고 리브랜딩하면서 사업을 영위하고 있는 것이다.

미 블랙리스트에 ‘리브랜딩’ 나선 중국 기업들

29일(현지 시각)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일부 중국 기업들이 미국에서 안보 문제로 인한 규제를 피하기 위해 자회사를 세워 브랜드를 교체하거나 미국 파트너 회사들을 앞세워서 활동한다고 보도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아메리칸 라이다’라는 기업이다. 해당 기업은 지난해 12월 갑작스럽게 나타났는데, 그 배후엔 미국이 국가 안보상 위협이 된다고 지목한 중국의 자율주행차용 라이다(LiDAR) 센서 기술 스타트업 허사이그룹이 있었다.

허사이그룹은 아메리칸 라이다를 설립한 지 한 달 만에 미국에서 활동하는 중국 군사기관으로 지정됐다. 미국은 국방수권법(NDAA) 1260H조에 따라 중국군 관련 기업 명단을 계속 업데이트해 공개하는데, 여기에 허사이, 화웨이와 SMIC를 비롯한 중국 주요 기업들이 포함된 것이다. 라이다가 민감한 데이터를 수집하는 데 쓰일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이에 결국 허사이그룹의 주가는 다음 날 30% 가까이 하락했다.

이는 허사이만의 문제가 아니다. 대중국 제재가 강화하면서 미국에서 사업을 영위하고 있는 중국 기업들은 언제든 블랙리스트에 오를 수 있다는 위험을 안고 있다. 당장 영상 공유 플랫폼인 틱톡만 해도 중국 모회사인 바이트댄스의 이미지를 지우기 위해 미국 법인을 세우는 등의 노력을 벌여왔음에도 결국 제재를 피하지 못했고, 수년 전엔 중국 화웨이가 미국 제재를 앞두고 미국 자회사인 퓨처웨이를 설립하기도 했다.

가치 폭락한 중국 기업들, 일부는 미국서 인수하기도

이런 가운데 최근 시장에선 “블랙리스트가 미국 기업의 중국 기업 인수를 촉진하는 결과를 불러왔다”는 평가가 나오기도 한다. 블랙리스트에 오른 탓에 가치가 폭락한 중국 기업들이 미국 기업에 인수되는 사례가 속속 발견되면서다.

실제 지난 4월 공개된 미국 하원 특별위원회의 여야 합동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금융업체들은 인덱스 펀드 투자를 통해 블랙리스트에 오른 중국 기업 63곳에 총 65억 달러(약 8조8,000억원)의 자금을 투입했다. 주요 지수 제공업체인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는 많은 투자자가 포트폴리오의 기초로 사용하는 지수에 중국 기업을 포함하는 방식을 활용했고,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은 지수를 추종하는 펀드들을 활용해 중국 기업에 투자를 이어온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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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멍 뚫린 규제, ‘기술 핀포인트 제재’ 시행하나

상황이 이렇다 보니 시장에선 미 정부 블랙리스트 정책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일각에선 SMIC의 사례를 제시하며 “대중국 수출 통제 자체가 동력을 잃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SMIC는 중국 최대 반도체 파운드리(위탁생산) 업체로, 지난 2020년 12월 18일 중국 군부에 납품한다는 이유로 무역 블랙리스트에 올랐다. 이후 미국 내 사업에 차질이 빚어질 것이란 전망이 나왔지만, 막상 2022년 SMIC의 해외 판매 수익 중 5분의 1 수준인 15억 달러(약 2조원)가 미국 기업으로부터 나온 것으로 밝혀졌다. 수출 통제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셈이다.

이에 미 의회를 중심으로 대중국 수출 통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화웨이와 SMIC 및 이들 기업의 모든 자회사를 거래 제한 명단에 올린 뒤 해외직접생산품규칙(FDPR)을까지 적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FDPR은 미국이 아닌 해외에서 만들어진 제품이라도 미국산 소프트웨어나 장비, 기술 등을 사용했을 경우 수출 시 미국 정부의 허가를 받도록 하는 제도다.

기업 리브랜딩 등 블랙리스트 대응 수단을 사전 차단하기 위해 ‘기술’에 핀포인트 제재를 가하는 방안이 모색되기도 했다. 실제 최근 미 의회는 세계 최대 드론 제조업체 SZ DJI 테크놀로지의 제품 사용을 광범위하게 금지하는 법안을 내놨다. 한 차례 제재를 가했음에도 DJJ가 스타트업과 라이선스 계약을 맺는 방식으로 미국 내 판매망을 뚫어내자 강경책을 내놓은 것이다.

이와 관련해 DGI드론 금지 법안을 입안한 엘리스 스테파닉 공화당 의원은 “DJJ가 제재를 회피하기 위해 각종 거래를 이용하는 등 절박하게 움직이고 있다”며 “DJI 및 그 회사와 관련된 모든 페이퍼 컴퍼니는 책임을 지게 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원의 한 보좌관은 “미 정부가 문제 있는 중국 기업들을 파악하고 규제를 가하는 수단으로 블랙리스트를 만들수록 이런 식으로 본모습을 감추려는 움직임은 더 심해질 것”이라며 제재안을 더욱 강화해 나갈 필요가 있음을 피력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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