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자금이 SK 성장의 밑거름’, 재산 분할 판결 두고 경영권 분쟁 가능성까지
노소영, 하루 만에 우호 지분 남겠다던 기존 입장 정정
현금 지급 판결에 "주식이나 지분을 논의할 상황 아냐"
재판부, 盧 대통령 비자금 SK 유입 인정에 불법 논란도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에게 이혼에 따른 재산 분할로 1조3,808억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이 나온 가운데 재판부가 노 관장의 아버지인 노태우 전 대통령이 비자금 300억원을 지원하고 SK그룹의 경영 활동에 무형적 도움을 줬다고 판단해 논란이 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노 관장이 SK그룹의 우호 지분으로 남겠다던 기존 입장을 번복하면서 향후 경영권 분쟁으로 번질 가능성까지 제기되는 모습이다.
1조원 자금 마련해야 하는 최태원, ‘경영권 분쟁’ 불씨 재점화
2일 노소영 관장 측은 SK그룹의 경영권, 지배구조, 우호 지분 등과 관련해 ‘정해진 바 없다’는 공식 입장을 밝혔다. 이날 노 관장 측 변호인은 이틀 전 있었던 SK 우호 지분 관련한 발언에 대해 “노소영 관장 대리인 가운데 한 변호사가 개인 의견을 얘기한 것으로 보인다”며 “노소영 관장의 의견이 무엇인지 묻는다면 현재로서는 드릴 말씀이 없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2심에서 노 관장 측이 현금 지급으로 재산 분할을 청구했고, 판결도 현금 지급으로 나왔기 때문에 주식이나 지분을 논의할 상황은 아니다”라고 부연했다.
앞서 지난달 30일 최 회장이 노 관장에게 재산 분할로 1조3,808억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이 나왔다. 당시 노 관장 측의 한 법률 대리인은 “노 관장은 SK그룹 지배구조가 흔들리는 것은 원하지 않는다”며 “SK의 우호 지분으로 남기를 원한다”는 입장을 전한 바 있다. 노 과장은 지난해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도 “상급심에서 저의 기여만큼 정당하게 SK 주식을 분할받으면 SK가 더 발전하고 성장하도록 적극 협조할 생각”이라며 “자녀 셋이 다 SK에 적을 두고 있는 만큼 당연히 SK가 더 좋은 회사가 되기를 누구보다도 바라는 사람”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노 관장이 이틀 만에 입장을 정정하자 향후 SK그룹을 둘러싼 경영권 다툼을 염두에 둔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재판부 “盧 대통령 비자금 300억원, SK에 유입” 판단
이런 가운데 역대 최대 규모의 재산 분할 판결 이후 재계와 법조계에서는 최 회장이 어떻게 1조원대 자금을 마련할 것인지를 두고 여러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현재 최 회장이 보유한 자산 대부분이 SK그룹의 경영권 확보에 핵심인 SK㈜ 지분이며 주식 외 현금성 자산은 2,000∼3,000억원 수준이다. 최 회장은 SK㈜ 지분 17.73%를 보유한 최대 주주로, SK㈜를 통해 다른 계열사를 지배하고 있다. SK㈜는 그룹의 주력 계열사인 SK텔레콤 30.57%, SK이노베이션 36.22%, SK스퀘어 30.55%, SKC 40.6% 등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재산 분할의 규모가 SK그룹의 경영권을 위협하는 수준에 이른 것은 재판부가 노 관장의 아버지인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이 SK그룹 자산 형성에 기여했다고 봤기 때문이다. 재판부는 “1991년경 노 전 대통령으로부터 최 회장의 부친인 고(故) 최종현 선대 회장에게 상당한 자금이 유입됐다”며 “SK그룹의 주식 형성과 가치 증가에 노 관장 측의 기여가 있다”고 판단했다.
항소심에서 노 관장 측은 어머니인 김옥숙 여사가 1998~1999년 사이 작성한 비자금 메모를 재판부에 제출했다. 해당 메모에는 SK그룹의 전신인 ‘선경 300억원’이라는 내용이 적혀있었다. 노 관장 측은 김 여사의 메모와 함께 1991년 선경건설 명의의 50억원짜리 약속어음 6장의 사진 등도 함께 제출했다.
이에 대해 최 회장 측은 설령 노 전 대통령 비자금이 최 선대 회장에게 유입됐더라도 불법 자금에 해당해 재산 분할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자금이 오간 1991년은 ‘범죄수익은닉규제법’이 시행되기 이전으로, 최 선대 회장이 노 전 대통령으로부터 금전적 지원을 받은 것 자체는 당시 형사상 범죄 구성요건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법조계에서는 형사재판과는 달리 가사소송에서는 분할 대상 재산의 불법성에 대해 판단하지 않는 특성이 반영된 것으로 분석했다.
盧 대통령 비자금으로 SKT 등 핵심 계열사 인수
특히 재판부는 노 전 대통령의 300억원대 비자금과 무형적 지원이 SK그룹의 성장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판단했다. 노 관장 측 주장에 따르면 논란이 되고 있는 300억원의 비자금은 1992년 증권사 인수, 1994년 한국이동통신(현 SK텔레콤) 인수 등 SK그룹의 사업 목적으로 활용됐다. 특히 SK텔레콤은 SK그룹이 현대자동차를 제치고 재계 서열 2위로 성장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최 선대 회장은 1980년 유공을 인수한 이후 이듬해인 1991년 정보통신사업에 진출하기 위해 선경텔레콤을 설립했다. 이후 노태우 대통령 집권 시절인 1992년 사명을 대한텔레콤으로 변경하고 체신부(현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이동통신 민간사업자 경쟁에 참여했다. 당시 포항제철, 코오롱, 쌍용 등 6개 컨소시엄이 경쟁했는데 선경은 심사 결과 1만점 만점에 8,388점을 받아 2위 포항제철 7,496점, 3위 코오롱 7,099점과 큰 격차를 보이며 사업자로 선정됐다.
1994년에는 한국이동통신을 인수하며 이동통신 사업에 본격적으로 참여했다. 이후 이듬해인 1995년 사명을 SK로 바꾸고 통신 기술 고도화에 집중했고 1996년 1월 세계 최초로 CDMA(코드분할다중접속) 디지털 이동전화를 상용화하면서 세계 이동통신 시장에 이름을 알렸다. 지난해 말 기준 SK텔레콤의 이동통신(MNO) 가입자 수는 3,127만6,000명이며, 이 중 5G(5세대) 가입자는 1,567만 명으로 명실상부 이동통신업계 1위를 수성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