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7 정상들, 中 겨냥 이례적 강경 메시지 ‘과잉 생산·러시아 지원’ 맹공
G7 정상 "中, 불공정 무역 관행·러 군수 지원 중단해야"
과잉 생산 및 보조금 지원 등 中 정부 경제 정책도 비판
중국 "근거 없는 비난" 반박, "서방이 세계 분열시켜"
미국·일본·캐나다·영국·프랑스·독일·이탈리아 등 주요 7개국(G7)과 유럽연합(EU) 정상들이 공동성명을 통해 중국을 한목소리로 규탄했다. 중국이 러시아 방위산업에 필요한 물자를 지원함으로써 우크라이나 전쟁을 수렁으로 밀어 넣고 있다고 비난했고, 중국의 과잉 생산 관행과 시장 왜곡을 초래하는 불공정 무역 행위에 대해서도 날을 세웠다. 앞서 미국이 중국산 전기 자동차와 배터리 관세를 4배 높인 데 이어 주요 동맹국들까지 대중 견제 전선에 뛰어들 가능성이 커지면서 미중 갈등이 글로벌 무역 전쟁으로 확대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주요 7개국, 대중국 압박 수위 높여
14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 등 외신에 따르면 이탈리아 풀리아주에서 열린 G7 정상회의 폐막을 하루 앞두고 이날 발표된 공동성명에는 중국에 대한 서방 정상들의 경고와 불만이 노골적으로 담긴 것으로 확인됐다. 우크라이나와 전쟁 중인 러시아를 중국이 지원하고 있다는 점을 지목하며 더욱 강경한 입장을 취한 것이다. 정상들은 공동성명에서 “러시아의 방위산업 기지에 대한 중국의 지속적인 지원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 불법적인 전쟁을 유지할 수 있게 하며, 이는 중대하고 광범위한 안보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중국이 러시아 국방 부문에 투입하는 무기 부품 및 장비를 포함한 이중 용도 물질의 이전을 중단할 것을 촉구한다”고 강조했다.
G7 정상들은 중국의 안보 이슈를 넘어 대규모 세제 혜택과 보조금으로 국제 무역 질서를 흐리는 경제 정책에 대해서도 대립각을 세웠다. 이들은 성명에서 “우리는 중국을 해치려는 것이 아니다”라면서도 “중국의 지속적인 산업 표적화와 포괄적인 비시장적 관행(non-market practices)에 우려를 표명한다”고 밝혔다. 경기 침체를 겪는 중국이 이 같은 보조금 혜택으로 제품을 과잉 생산해 초저가로 수출(디플레이션 수출)하며 시장을 왜곡하고 있는 점에 대해 경고장을 날린 것이다. 이와 관련해 G7 정상들은 “노동자와 기업을 보호하고, 공정한 경쟁의 장을 마련하기 위해 필요하고 적절한 조치를 계속 취할 것”이라고 밝혔다.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도발을 지속하고 있는 행위에 대한 압박도 담았다. 정상들은 “동중국해와 남중국해에서 현상 변경을 시도하는 중국의 모든 일방적 시도에 강력히 반대한다”며 대만과 관련해선 대만 해협의 평화와 안정의 중요성을 재확인하며 양측의 긴장 완화를 위한 ‘평화적 해결’을 요구했다. 이는 중국 공산당 등 지도부가 대만을 향한 군사적 압박을 강화하면서 대만을 필요시 무력으로 본토와 재통일해야 할 하나의 지방으로 간주하는 데 따른 공동행동으로 풀이된다. 아울러 남중국해에 대해서는 “분쟁 지역 근처에서 필리핀 선박을 대상으로 한 위험한 기동과 물대포 사용의 증가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한다”고 밝히며 이러한 행위가 선박 손상과 승무원 부상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히로시마 회의 ‘탈중국’ 의제에 이은 ‘대러시아 지원’ 문제 추가
이 같은 G7의 강경한 태도는 미국뿐 아니라 다른 서방국들도 불공정 무역 행위 및 길어지는 전쟁으로 인해 중국에 대한 불만이 커지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실제 대중국 의제는 지난해 5월 일본 히로시마에서 열렸던 G7 정상회의에 이어 2년 연속 중대 사안으로 다루는 것이다. 당시 히로시마 정상회의에서는 중국의 ‘경제적 강압(economic coercion)’에 맞선 미국 등 서방의 대응책에 초점이 맞춰졌다. 경제적 강압은 미국이 중국의 경제적 관행을 비판할 때 주로 쓰는 표현으로, 중국이 자국의 경제적 역량을 활용해 무역 상대국에 보복 행위를 가하는 것을 일컫는다. 외교가에서는 이를 ‘전랑외교’라 부르기도 한다.
실제로 중국은 2010년 일본과 센카쿠(尖閣·중국명 댜오위다오) 열도의 영유권을 놓고 정치·군사·외교적 갈등이 빚어지자 희토류 수출 중단으로 보복했다. 2016년에는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로 다툼이 생긴 우리나라에 중국인 관광을 차단하는 등 한한령(限韓令)을 통해 경제·외교·안보적 압박을 가했다. 아울러 2018년 미국의 대중국 견제 대열에 참여해 중국 화웨이를 5세대 이동통신(5G) 통신망 사업에서 배제했던 호주에도 와인·석탄 등의 수입을 금지하며 외교 관계를 장기간 경색시킨 바 있다. 당시 중국 정부는 호주를 ‘신발 밑에 붙은 씹던 껌’이라며 원색적인 비난을 퍼붓기도 했다.
지난해 히로시마 정상회의에서는 첨단 분야 신기술에 대한 대중국 수출통제와 투자제한 조치 필요성에도 공감하며 특히 공동성명에서 51∼52번 항목을 중국 문제에만 할애할 정도로 각 영역에 걸쳐 포괄적으로 중국을 견제하는 모습을 보였다. 공급망 등에서의 탈중국화를 통한 강력한 대중 견제 의지를 천명한 것이다.
다만 각국 정상은 중국과의 경제 관계를 디커플링(탈동조화)이 아닌 디리스킹(위험제거)으로 재규정했다. 주요 산업에서 중국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아짐에 따라 발생하는 위험에서 벗어나자는 의미로, G7은 공급망 회복력(resilience)을 위해 개별 및 집단적으로 경제 활성화 조치에 투자하는 것에 합의했다. 그간 G7은 ‘자유무역’을 공급망 회복력의 가장 중요한 정책수단으로 봤지만, 히로시마 정상회의를 통해 세계무역기구(WTO) 규정을 위반하지 않는 방식의 ‘자국 시장 보호’로 선회한 것이다. 이에 따라 미국은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반도체법(CHIPS법) 등을 잇달아 발효하면서 공급망 블록화를 가시화하고 있으며, EU는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나 핵심원자재법(CRMA), 탄소중립산업법(Net-Zero Industry Act) 등을 도입해 역내 청정에너지 관련 핵심 광물 원자재 공급망 등을 확보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이번 이탈리아 G7 정상회의에서는 러시아의 방위 산업에 대한 중국의 지속적인 지원이 주요 의제로 추가됐다. 정상들은 러시아가 국제 제재를 회피하거나 그 효과를 상쇄할 수 있는 것은 중국과 대규모 거래를 계속하기 때문이라는 데 의견을 함께했다. 앞서 지난 12일(현지시간) 미국 재무부가 러시아 국내외 300여 개의 기관과 개인을 제재한다고 밝히며 러시아 방위산업에 제품과 기술을 수출한 중국 회사 다수를 제재 명단에 포함시킨 것도 이번 G7 공동성명과 궤를 같이한다. G7은 나아가 중국이 변하지 않을 경우 금융기관을 포함해 러시아 전쟁 기계를 실질적으로 지원하는 중국 및 제3국의 행위자들에 대한 조치를 지속적으로 취할 방침이다.
글로벌 무역 전쟁 재점화 ‘긴장 고조’
이에 중국은 강하게 반발했다. 16일 중국 관영 영문매체 글로벌타임스(GT)에 따르면 중국은 “G7 정상회의 공동성명에서 중국을 20번 이상 언급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며 정교하게 조작된 위선적 선언은 미국이 주도하는 서방이 중국에 책임을 전가하려는 시도를 드러낸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G7 정상회의에 아르헨티나, 남아프리카공화국, 브라질, 인도 등 남반구 국가들이 초청됐지만 미국과 서방국가들이 남반구를 분열시키기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공동성명에서 G7 정상들이 러시아에 대한 중국의 지원에 대해 직격한 데 대해 “오히려 이 같은 서방의 접근 방식이 세계를 여러 진영으로 분열시키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중국사회과학원 러시아·동유럽·중앙아시아연구소의 장훙 부연구원은 “G7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분쟁 상황에서 중국을 비방하려는 시도는 미국이 세계적으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사용하는 뻔한 전술”이라고 날을 세우기도 했다.
한편 이번 공동성명은 미국과 EU가 중국산 전기차에 폭탄 관세를 결정하고, 중국이 보복을 예고하는 등 서방과 중국 간 무역 긴장이 고조된 가운데 나왔다는 점에서 특히 주목된다. 미국과 EU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관세 인상, 불공정 보조금 조사 등 강경 대응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미국은 중국 전기차에 대한 관세를 25%에서 100%로 대폭 올렸고, EU도 관세를 현행 10%에서 최대 48.1%까지 올리는 방안을 전격 발표했다. 이에 중국은 물량 밀어내기로 맞서고 있다. 오는 7월과 8월 관세 인상 조치가 시행되기 전에 다량의 수출 물량을 빠르게 풀어내려는 시도다. 미국과 중국의 양국 간 경제 패권 경쟁이 글로벌 관세 전쟁으로 옮겨 붙는 모양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