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방국 관세 장벽 부딪힌 中 전기차·배터리, 韓 업체 반사이익 기대 커져
"신차에는 LFP 대신 NCM" 완성차 업체들의 변화
미국·EU의 대중국 관세 폭탄, 中 업체 경쟁력 잃을 위기
中 전기차·배터리 가격 상승 가능성 확대, 韓 '어부지리'
중국산 리튬인산철(LFP) 배터리가 전기차 시장 내 입지를 잃어가고 있다. 서방국의 중국산 배터리 견제가 본격화하며 가격 경쟁력 약화 위기가 본격화한 탓이다. 국내 자동차·배터리 업계에서는 미국과 EU 등의 대중국 관세 장벽이 국내 업체에 반사이익을 안겨줄 수 있다는 기대가 확산하고 있다.
LFP 배터리 외면한 완성차 업체들
17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완성차 업체들은 중국산 리튬인산철(LFP) 배터리 사용을 점차 줄여가는 추세다. 현대자동차가 이달 말 공개하는 경형 스포츠유틸리티차(SUV) 캐스퍼 일렉트릭에는 니켈·코발트·망간(NCM) 배터리가 탑재된다. NCM 배터리는 LFP 배터리 대비 원가가 비싸지만, 에너지 밀도가 높고 주행거리가 길다는 것이 특징이다.
다음 달부터 본격 판매에 들어가는 기아의 소형 전기 SUV EV3에도 LFP가 아닌 NCM 배터리를 탑재된다. 고용량의 81.4kWh(킬로와트시) NCM 배터리를 장착한 EV3 항속형 모델은 1회 충전 시 주행거리가 501㎞까지 늘어난다. 볼보자동차코리아 역시 이달 말부터 순차적으로 출고하는 소형 전기 SUV EX30에 66kWh NCM 리튬이온 배터리를 탑재한다. 1회 충전 시 주행거리는 404㎞에 달한다.
서방국의 대중국 관세 장벽
최근까지만 해도 LFP 배터리는 원가 절감을 위한 매력적인 선택지로 꼽혔다. 배터리는 전기차 제조 비용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한다. 가격이 저렴한 LFP 배터리를 탑재할 경우, 제품 자체의 가격 경쟁력이 강화되며 판매량 증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의미다. 실제 지난해 중국 상하이 공장에서 제작된 테슬라 ‘모델Y’는 LFP 배터리 탑재를 통해 기존 모델 대비 약 2,000만~3,000만원가량 저렴한 가격대를 형성, 종전에 비해 10배 이상 판매량이 증가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하지만 미국·유럽 등 서방국이 중국산 전기차·배터리에 대한 견제를 본격화하며 상황이 뒤집혔다. 지난달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무역대표부(USTR)에 중국산 주요 제품에 대한 관세를 대폭 인상하도록 지시했다. 무역법 301조에 의거해 중국의 불공정 무역 관행에 대응하겠다는 취지에서다. 이에 따라 중국산 전기차의 관세는 현재의 25%에서 100%로, 리튬이온 전기차 배터리와 배터리 부품의 관세는 기존 7.5%에서 25%로 상향된다.
최근 EU 역시 중국산 전기차에 임시 조처 성격으로 상계관세 부과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기존 10% 수준이었던 중국산 배터리의 관세를 최대 48%까지 확대하는 것이 골자다. 추후 EU는 △비야디(BYD) 17.4p △지리(Geely) 20%p △상하이자동차(SAIC) 38.1%p 등 기업별로 추가 관세율을 적용할 예정이다. 이 같은 중국산 전기차에 대한 고율 관세 부과는 결국 중국산 전기차 배터리의 점유율 하락으로 이어지게 된다.
국내 전기차·배터리 기업 영향은?
이에 업계에서는 서방국의 규제로 인해 국내 전기차 업계가 ‘반사이익’을 누리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 흘러나온다. 서방국의 높은 관세율로 인해 중국 전기차 업체들의 저가 공세에 제동이 걸릴 경우, 올 하반기 중저가 전기차 신차를 출시하는 현대차·기아 등이 점유율 확대 효과를 볼 수 있다는 분석이다.
한국 배터리 3사(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 역시 수혜를 입을 수 있다. CATL 등 중국 배터리 업체들의 서방국 내 점유율 성장세가 둔화할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상반기 기준 중국산 배터리의 유럽 전기차 배터리 시장 내 점유율은 2019년 11.8%에서 지난해 상반기 40.1%로 급성장했다. 반면 한국 배터리 업체들의 점유율은 2021년 70.6%에서 2023년 상반기 57%까지 급감했다.
중국 전기차 배터리 업체들의 성장 동력은 저렴한 LFP 배터리였다. 고율 관세로 인해 제품의 가격 경쟁력이 약화할 경우, 시장 내 영향력 자체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한 업계 관계자는 “LFP 배터리의 경쟁력은 국내 배터리 기업들의 주력 제품인 NCM 배터리보다 약 20% 저렴하다는 것”이라며 “관세로 인해 중국산 제품의 가격대가 상승하면 비교적 고성능 제품을 생산하는 우리나라 배터리 업체들이 EU 시장 등에서 반사이익을 볼 수 있다”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