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솟는 공사비에 ‘서울시 정비사업’ 경쟁입찰 달랑 3건, 과열 수주경쟁은 옛말
서울 정비사업 시공사 선정 경쟁입찰, 3건 불과
민간 정비사업도 '찬밥', 낮은 수익에 몸사리는 건설사
원가 상승에 건설사와 자재업계 가격 놓고 신경전도
올해 상반기 서울지역 도시정비사업 시공사 선정 입찰 20여 건 중 경쟁입찰은 3건에 불과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수의계약으로만 진행되거나, 선별수주 기조에 따라 응찰하지 않는 모습도 포착됐다. 건설사들이 매몰 비용을 줄이기 위해 경쟁을 피하면서 나타난 현상들이다.
서울시 정비사업, 경쟁입찰 성사 3곳뿐
3일 서울시 정비사업 정보몽땅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중 조합 입찰공고가 개시돼 마감된 정비사업장의 시공사 선정공고는 총 23건(사업장 중복 제외)으로, 이 가운데 경쟁입찰이 성사된 사업장은 3곳(남영동 업무지구2구역 재개발·도곡개포한신아파트 재건축·장위11-1구역 가로주택정비사업)에 그쳤다.
도곡개포한신아파트 사업장에는 최근 마감된 시공사 선정 재입찰에서 DL이앤씨와 두산건설이 참여했다. 재건축조합은 이르면 8월 중 총회를 열어 시공사를 최종 선정할 것으로 알려졌다. 남영동업무지구2구역 재개발 사업에는 삼성물산 건설부문과 HDC현대산업개발이 응찰한 상태다.
성북구 장위11-1구역 시공사 선정 입찰에는 중앙건설과 신성건설이 도전장을 냈다. 장위11-1구역은 올해 초 공사비 증액 문제로 현대건설과 갈라섰다. 이후 새 시공사를 찾기 위해 나섰지만, 대형 건설사의 관심은 받지 못한 채 중견 건설사만이 입찰에 참여했다. 인접한 장위11-2구역도 현대건설 대신 새로운 시공사 선정을 위해 지난달 17일 현장설명회를 진행했지만, 진흥기업, 중앙건설 등 중견사만 참석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민간 정비사업도 ‘선별수주’ 뚜렷
민간 정비사업 시공사 선정 과정도 과열 수주경쟁이 난무하던 몇 년 전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건설업계에 따르면 최근 주요 정비사업에서 수의계약으로 시공사를 선정하는 사례가 잇따라 발생하고 있다. 정비사업에서 시공사 선정은 경쟁입찰이 원칙이지만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에 따라 두 번 이상 유찰되면 수의계약으로 돌릴 수 있다.
일례로 서울시 잠원동 신반포12차아파트 재건축사업은 두 차례에 걸쳐 시공사 선정 입찰공고를 냈지만 롯데건설만이 단독입찰해 수의계약으로 전환했다. 인근 신반포27차아파트도 지난 1월 실시한 입찰에 1곳도 참여치 않아 공사비를 재조정한 끝에 SK에코플랜트가 단독 입찰해 수의계약으로 전환한 바 있다.
가락동 삼익맨숀은 두 차례 입찰이 무산된 이후 지난4월 14일 마감한 수의계약에 현대건설이 단독 참여하면서 시공사 선정이 마무리되는 모양새다. 현대건설 관계자는 “선별수주전략에 따라 핵심사업지 중심으로 수주에 나서고 있다”며 “가락동 삼익맨숀 재건축의 사업성이 양호하다고 판단해 입찰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밖에 인천 부개5구역과 서울 노량진1구역 재개발사업도 각각 현대건설·SK에코플랜트 컨소시엄과 포스코이앤씨의 단독입찰로 수의계약을 맺은 상태다.
원자재비 상승에 시름 앓는 건설사, 조합·건설자재 업체와 마찰도
이 같은 경쟁입찰 회피 현상에는 건설사 경영지표 악화의 영향이 큰 것으로 분석된다. 그동안 정비사업은 일반주택사업과 달리 미분양 부담이 거의 없어 리스크가 적었으나 최근 들어 상황이 달라졌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이 최근 발간한 ‘건설동향브리핑’에서 2024년 1·4분기 실적을 분석한 결과를 보면 건설사들의 매출 증가율은 지속적으로 줄어들고 있다. 올 1·4분기 매출 증가율은 3.97%로 지난해 4·4분기 6.35%에 비해 하락했다. 지난해 전체 건설업 매출 증가율은 4.76%로 2022년의 15.04%에서 크게 떨어진 이후 하락세가 지속되고 있다.
수익성 지표도 예외는 아니다. 올 1·4분기 세전 순이익률은 3.20%로 지난해 1·4분기의 5.02%에서 1.82%p 감소했다. 영업이익률 역시 지난해 1·4분기 4.24%에서 올해 2.97%로 하락했다. 같은 기간 제조업과 전산업의 수익성 지표가 상승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이자보상비율 또한 급락했다. 2024년 1·4분기 이자보상비율은 159.60%로, 2023년 1·4분기의 266.89%에서 107.29%p 낮아졌다. 차입금 의존도는 소폭 증가한 반면 영업이익이 감소했기 때문이다. 부채비율도 올해 1·4분기 159.89%로, 지난해 4·4분기의 152.05%에서 상승했다. 차입금 의존도 역시 2024년 1·4분기에 32.90%로 전 분기의 32.03%에서 0.87%p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에 공사 원가 급증과 물가 변동도 경쟁입찰 회피를 부추겼다. 가장 큰 위험은 높아진 원가율이다. 과거와 달리 원가율이 높아지고 자금마련 비용이 증가해 영업이익 창출이 쉽지 않아진 것으로 풀이된다. 건설사 입장에서는 시공 마진이 크게 줄어든 상황에서 영업비용이 증가할 경우 부담이 가중되기 때문이다. 업계에 따르면 지난 1분기 주요 건설사들의 원가율은 90%대까지 치솟았다. 현대건설 93.8%, 대우건설 91.4%, DL이앤씨 90.4%, GS건설 91.0% 등을 나타냈는데 정비사업 원가율도 여기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렇다 보니 공사비 상승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건설업계가 주요 건자재인 시멘트업계와 가격 인하를 두고 줄다리기를 벌이는 일도 발생했다.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2020년 대비 2023년 건설자재 가격은 35% 상승한 것으로 파악됐다. 특히 건설자재 가운데서도 비중이 가장 높은 레미콘, 시멘트, 철근은 각각 34.7%, 54.6%, 64.6% 오른 것으로 조사됐다.
공사비를 두고 조합과의 신경전도 끊이지 않고 있다. 서울 홍제3구역 재개발사업의 경우 공사비 인상을 놓고 시공사인 현대건설과 조합이 1년여간 마찰을 빚다 지난달 3.3㎡당 512만원에서 784만원으로 올리는 선에서 겨우 합의를 봤다. 또 이문3구역은 약 4.6%, 행당7구역은 14%가량 공사비를 인상키로 하면서 갈등을 끝냈다. 하지만 미아3구역은 시공사와 조합 간 소송으로 발전해 법정다툼이 불가피한 상태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건설경기와 분양시장이 좋지 않고 고금리, 고물가까지 겹쳐 업체들의 리스크가 더 커졌다”며 “건설사들이 예전과 같이 수주경쟁을 벌이기보다 보수적이고 신중하게 접근하는 선별수주 기조를 보이면서 경쟁입찰을 벌이는 경우는 줄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건설업계 관계자도 “부동산경기가 어려워 건설사들이 몸을 사리는 분위기가 역력하다”며 “건설경기 회복 기미가 보이지 않아 시공사 단독입찰은 당분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