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인야후 사태로 주가 휘청이는데 ‘자사주’ 내다파는 네이버 임원들, 개인 투자자 ‘패닉’
올해 상반기 '2조원' 순매수 1위 네이버, 임원들 매도 행렬에 난감
라인야후 사태 손실 버티던 개미들 '울상', 보유자 전원 '마이너스'
금융위, 이달 '블록딜' 사전공시제도 도입으로 먹튀 리스크 방어
올해 상반기 개인 투자자들이 가장 많이 순매수한 종목인 네이버가 연일 신저가를 경신하고 있는 가운데 임원들이 줄줄이 보유지분을 매도하면서 개인 투자자들의 빈축을 사고 있다. 회사가 어려움을 겪는 시기에 대량으로 주식을 매도했고, 이로 인해 주가 하락세를 부추겼다는 지적이다. 다만 금융위원회가 내부자의 주식거래 투명성과 예측 가능성 제고를 위해 사전공시 제도를 도입하는 만큼 앞으로는 자사주 매도로 인한 피해는 줄어들 것으로 관측된다.
네이버 임원들, 3개월 새 자사주 19억어치 팔았다
10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네이버의 비등기임원인 이인희 교육지원 책임리더(상무)는 지난 4일(체결일 기준)에만 두 차례에 걸쳐 자사주 3,000주를 장내 매도한 것으로 파악됐다. 주식 처분 단가는 15만9,700~15만9,800원이며 총 매각 대금은 4억7,900만원이다. 2022년 말 이후 주식을 판 적이 없던 이 상무는 올해 4월부터 보유 주식을 매도하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상무는 4월 10일과 5월 27일에 각각 주식 500주와 1,000주를 처분했고, 6월 19일에도 400주를 장내 매도했다. 이 기간 이 상무가 확보한 금액은 3억3,800만원에 달한다.
여기에 이달 초 장내 매도분까지 합하면 이 상무는 총 8억원 상당의 주식을 내다 판 것이다. 현재 이 상무에게 남은 주식은 6주에 불과하다. 사실상 보유하고 있던 주식을 전량 처분한 셈이다. 네이버 미등기임원의 평균 연봉이 3억5,000만원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임원 평균 연봉의 2~3년치를 현금화한 것으로, 결코 적지 않은 금액이다.
자사주 매도에 나선 네이버 임원은 이 상무만이 아니다. 김주관 네이버 쇼핑 프로덕트 부문장은 1억7,200만원의 자사주를 매도했고, 하선영 비즈 CIC 광고상품기획 리더(2억2,748만원), 이인희 교육지원 리더(3억3,845만원), 이희만 컴플라이언스 리더(4억1,955만원) 등도 많은 물량을 장내 매도해 현금화했다. 이 밖에도 김정미 리더(8,363만원), 이정안 리더(8,026만원), 김성호 리더(7,351만원) 등도 1억원에 가까운 규모의 자사주를 매도한 것으로 나타났다.
‘라인야후 사태’로 인한 신저가 경신 중에 동시다발적 매도
문제는 네이버 임원들이 매도를 단행한 시점이다. 이들은 ‘라인야후 사태’가 본격적으로 불거진 뒤부터 동시다발적으로 자사주를 내다 팔았는데, 이는 가뜩이나 라인야후로 체력이 약해진 네이버 주가에 기름을 붓는 계기가 됐다. 지난 2021년 7월 네이버 주가는 2002년 상장 이후 역대 최고가인 46만5,000원(장중)을 기록한 바 있다. 하지만 이달 3일 종가는 15만9,800원으로, 당시와 비교해 무려 66% 하락했다. 이는 2022년 10월 26일(15만9,500원) 이후 최저가다.
외국인과 기관도 네이버 주식을 대량 처분하고 있다. 외국인의 경우 올해만 1조3,000억원 가까이 팔고 떠났고, 연기금을 비롯한 기관도 1조원 넘게 네이버 주식을 매도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런 가운데 개인 투자자 손실은 눈덩이처럼 불어난 상태다. NH투자증권에 따르면 1일 기준 네이버 주식을 보유하고 있는 개인 16만1,647명의 성적표는 놀랍게도 전부 다 마이너스(-)로 파악됐다. 올해 개인 투자자들이 한국증시에서 가장 많이 산 종목이 네이버인데, 주가는 반대로 가고 있는 셈이다.
코스피 시가총액 상위 50개 대형주 중에서도 투자자 전체가 손실 중인 종목은 네이버가 유일하다. 게다가 이들의 평균 매수 단가는 27만원이 넘기 때문에 현재 주가와의 괴리가 큰 것은 물론, 증권사 목표 주가보다도 높다. 이런 이유로 시장에서는 네이버 임원들의 매도 행렬에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임원들의 매도는 일반적으로 투자심리에 부정적인 신호로 비치기 때문이다. 회사 내부 사정을 가장 잘 아는 임원이 자사주를 매각할 경우 시장에서는 이를 고점으로 인식, 매도 시그널로 읽는다.
업계 일각에서는 네이버 경영진의 행위가 과거 카카오 경영진의 이른바 ‘주식 먹튀’ 사태와 유사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2021년 말 카카오 차기 대표로 내정됐던 류영준 카카오페이 전 대표와 신원근 카카오페이 대표 등 임원진 8명은 카카오페이 상장 한 달 만에 스톡옵션으로 취득한 주식 44만 주를 팔아 900억원으로 현금화했다. 당시 여파로 인해 카카오페이 주가는 29%가량 폭락했다. 같은 해 정규돈 카카오 최고기술책임자(CTO)도 카카오 재직기간 동안 카카오뱅크 상장 직후 주식을 장내에서 전량 매도하며 현금 76억원을 챙기자 도덕적 해이(모럴해저드) 문제가 불거지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유호범 내부감사책임자 △신희철 최고인사책임자 △이형주 최고비즈니스책임자 △김석 위험관리최고책임자 등도 연이어 주식을 매도했는데 이들이 주식을 팔아 현금화한 규모만 207억원이 넘는다. 더욱이 카카오 역시 현재 김범수 카카오 창업자의 SM엔터테인먼트 시세 조종 의혹 관련 검찰 소환으로 인해 연일 신저가를 경신하며 하락세를 보이고 있는 와중에 이효진 성과리더, 허명주 성과리더 등 일부 임원들이 수억원대 주식을 매도해 비판이 일고 있는 상황이다.
앞으로 내부자 주식거래 사전 공시해야, ‘주식 먹튀’ 차단 목적
다만 앞으로는 임원 등이 자사 주식을 대량으로 매각하는 주식 먹튀 사례가 잦아들 전망이다. 상장사 임원, 주요 주주가 회사 주식을 블록딜(시간 외 대량매매) 등 대규모로 처분할 때 미리 공시하도록 하는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시행령’ 일부 개정안이 9일 의결되면서다. 이달 24일부터 시행되는 개정안은 상장사 내부자가 과거 6개월간 합산 기준으로 발행주식 총수의 1% 이상이나 50억원어치 이상의 주식을 거래할 경우 매매 개시일 30일 전까지 이 계획을 의무 공시하도록 한다. 미공개 정보를 악용할 우려가 없거나 상속, 배당, 주식 양수도 방식 인수합병 등 외부 요인에 따른 거래와 연기금을 비롯한 재무적투자자들의 매매 행위만 사전 공시 의무 대상에서 제외된다.
사전 공시 의무자는 주식 예상 거래 금액, 가격·수량, 기간 등을 보고서에 기재해야 한다. 사전에 공시한 매매 계획과 달리 거래할 수 있는 금액의 범위는 법률이 위임한 최대 규모인 30%로 정했다. 거래 계획을 철회할 수 있는 경우는 보고자의 사망·파산, 시장 변동성 확대로 과도한 손실이 예상되는 경우, 거래 상대방의 귀책사유로 매매가 이행될 수 없는 경우 등 불가피한 사유로만 좁혔다. 거래 계획을 공시하지 않거나 허위로 알리는 경우, 계획한 대로 거래를 이행하지 않는 경우에는 최대 20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한다.
해당 제도는 최근 상장사 임원들이 내부 정보를 이용해 막대한 수익을 얻는 사례가 잇따르자 금융당국이 이를 막겠다는 취지에서 도입한 것으로, 현재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서 시행 중인 ‘내부자거래 사전거래 계획(Rule 10b5-1 Plan)을 벤치마킹했다. SEC에 따르면 뉴욕 증시에 상장된 회사의 주요 주주가 주식을 매도할 때는 원칙적으로 신고서를 제출할 의무가 있다. 규제 대상은 의결권이 있는 주식 10% 이상을 소유한 주주와 임원 등으로, 대상자는 주식을 매도하기 30일 전에 주식 매각 시기와 가격, 주식수 등을 SEC에 보고해야 한다. 아울러 매매계획 제출 시점부터 주식 매도까지 90일의 대기 기간을 가져야 한다. 적어도 주식 매각 120일 전에 계획서를 제출해야 하는 셈이다.
엔비디아의 창업자 겸 CEO 젠슨 황의 경우 지난달 엔비디아 주식 30만 주(약 2,300억원)를 매도했는데, 그가 주식을 처분한 시점은 엔비디아 시가총액이 처음으로 3조 달러(약 4,150조원)를 넘어섰을 때였다. 엔비디아 주가는 최근 고점을 찍고 하락세를 보이고 있으나, 경영진을 탓하는 목소리는 찾아보기 어렵다. 황 CEO를 비롯해 엔비디아 임원들이 올해 상반기에 매각한 자사주 규모만 1조원에 달하지만, 황 CEO가 지난 3월 SEC에 엔비디아 주식을 팔겠다고 사전에 신고한 뒤 집행한 것이라 충격파가 크지 않았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