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 ‘사상 첫 1만원 시대’, 노동생산성-임금 간극 더 커졌다
내년 최저임금 시급 10,030원, 첫 ‘1만원’ 돌파
노동생산성은 OECD 회원국 중 최하위권 굴욕
사업구조 전환 실패 및 노동시장 경직성 영향
생산성 저하 지속 시 마이너스 성장 전환 우려
내년도 최저임금이 올해보다 시간당 170원(1.7%) 오른 1만30원으로 결정됐다. 최저임금이 1만원을 넘은 것은 최저임금제도 도입 이래 37만에 처음이다. 최근 물가 급등이 지속되고 있는 만큼 내년도 최저임금 인상은 어느 정도 예견된 바지만, 여기에 노동생산성 향상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한국 경제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2025년 최저임금, 1.7% 오른 1만30원 확정
최저임금위원회는 12일 오전 2시 30분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제11차 전원회의에서 표결을 통해 내년도 최저임금을 1만30원으로 결정했다. 내년도 최저임금을 월급으로 환산하면 209만6,270원(주 40시간, 월 209시간 근무 기준)이다. 올해 최저임금위에서 최저임금이 의결되기까지는 첫 전원회의가 시작된 5월 21일부터 53일이 소요됐다. 지난해 최저임금위의 역대 최장 심의 기록인 ‘110일’을 의식한 듯 논의의 속도를 올린 결과로 풀이된다.
앞서 지난 9일 최초 요구안에서 27.8% 인상안을 제시했던 노동계와 동결을 제시했던 경영계는 11일 4차 수정안을 제시하면서 간극 줄이기에 나섰고 노동계 1만840원, 경영계 9,940원으로 900원까지 차이를 좁혔다. 이후 12일 자정을 넘겨 차수 변경(11차)까지 하며 회의를 이어갔지만, 그럼에도 이견이 좁혀지지 않자 공익위원들이 나서 ‘심의촉진구간’을 하한 1만원(1.4% 인상)에서 상한 1만290원(4.4% 인상)으로 제시했다. 노사 양측이 4차 수정안을 제시했지만 합의에 진척이 없자 공익위원들이 심의촉진구간을 설정하며 양측에 추가 수정안을 내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노사 대립 구도에서 중재 역할을 하는 공익위원들은 논의의 진전을 위해 심의촉진구간을 제시할 수 있다.
이에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추천 근로자위원 4명이 심의촉진구간을 수용하지 못한다며 퇴장하긴 했으나, 근로자위원들은 1만120원을, 사용자위원들은 1만30원을 제시하며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이후 최저임금위는 표결에 돌입했고 결국 사용자위원안 14표, 근로자위원안 9표로 최저임금이 결정됐다. 최저임금위는 이를 고용노동부에 제출하고 고용부는 이의제기기간 등을 거친 뒤 내달 5일까지 내년도 최저임금을 최종 확정하게 된다. 고용부가 최저임금을 고시하면 내년 1월 1일부터 효력이 발생한다. 고시에 앞서 노사가 최저임금안에 대해 이의제기를 할 수 있지만, 지금껏 재심의 요청이 받아들여진 적은 한 번도 없다.
이에 따라 내년도 최저임금은 지난 1988년 첫 시행 이후 37년 만에 처음으로 1만원대를 돌파하게 됐다. 그간 노동계는 1만원 이상의 최저임금 실현을 요구해 왔고, 문재인 전 대통령은 대선공약으로 임기 내 최저임금 1만원 실현을 내걸고 집권 초기인 2017년 내년도 최저임금을 전년보다 16.4%(1,060원)나 인상하기도 했다. 이처럼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 결과 2017년 6,470원이었던 최저임금은 2022년 9,160원으로 5년간 41.5%가 올랐다. 그러나 문 정부도 공약인 1만원을 달성하지는 못했다. 가파른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소상공인들의 경영난 등 부작용이 뒤따랐기 때문이다.
높은 임금 대비 떨어지는 ‘노동생산성’, 韓 경제 성장 발목
경영난에 대한 우려는 지금 이순간에도 곳곳에서 터져나오고 있다. 내년도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해 한계 사업장들의 부실이 가속화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한국경제인협회는 12일 “2025년 경제성장률이 올해보다 악화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어 만원이 넘는 최저임금은 소규모 영세기업들과 자영업자들에게 추가적인 부담이 될 것이며 최저임금의 영향을 많이 받는 청년층, 저소득층 등 취약계층의 일자리에도 부정적인 영향이 초래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같은 날 한국경영자총협회도 입장문을 통해 “한계 상황에 직면한 중소, 영세기업과 소상공인의 절박함을 고려하면 최저임금은 동결돼야 했지만 사용자위원으로서 이를 반영하지 못해 아쉽다”면서 “올해 심의에서 최저임금 수용성이 현저히 낮다고 밝혀진 일부 업종만이라도 구분 적용하자는 사용자위원들의 호소에도 불구하고 내년에도 단일 최저임금을 적용하기로 한 것에 대해 깊은 유감”이라고 밝혔다.
최저임금과 물가 상승폭에 비해 낮은 생산성이 우리나라 경제 성장의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사용자위원들이 이번 최저임금 인상 반대에 근거로 제시한 요인 중 하나도 한국의 노동생산성 저하였다. 실제로 지난 5년간 최저임금은 27.8% 인상되고 물가는 10.6% 상승했으나 같은 기간 시간당 노동생산성 증가는 4.5%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회예산정책처가 발간한 ‘2024 경제전망 시리즈-성장부문’ 보고서에 따르면 2022년 기준 한국의 전산업 노동생산성은 38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중 29위에 그쳤다. 이 기간 한국의 전산업 시간당 노동생산성은 43.1달러(약 5만9,500원)로, OECD 평균인 53.9달러(약 7만5,000원)의 80% 수준이다. 같은 기간 미국의 75.5달러(약 10만5,000원)와 비교하면 절반을 조금 넘는 수준이며, 일본(48.1달러·6만6,000원)에 비해서도 90%에 그친다. 이는 OECD 회원국 중 최하위권으로,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이라는 타이틀이 무색한 결과다.
OECD가 집계하는 회원국별 시간당 노동생산성 지표도 크게 다르지 않다. 2023년 한국의 노동생산성은 49.4달러(약 6만8,000원)로 37개 회원국 중 33위를 기록했다. 이 역시 최하위 수준이다. OECD 평균(64.7달러·약 8만9,000원)과 비교하면 76% 수준에 불과하다. 노동생산성 1위국인 아일랜드(155.5달러·약 21만4,000원)에 비하면 3분의 1 수준이고, 독일(88.8달러), 미국(87.6달러), 핀란드(80.3달러)에 비해서도 생산성이 현저히 떨어진다. 심지어 우리나라 생산성은 일본(53.2달러)과 비교해도 낮다. 2022년 기준 한국 근로자의 평균 임금이 399만8,000원으로 일본(379만1,000원)보다 높은 수준임에도 생산성은 떨어지는 것이다.
생산성 못 높이면 2040년대 ‘역성장’ 진입
당초 우리나라 최저임금제도의 목적은 최저임금법에 의거해 근로자의 최저임금을 보장하고 생활 안정과 ‘노동력의 질적 향상’을 꾀함으로써 국민경제의 건전한 발전에 이바지하도록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또 저임금 해소로 임금 격차를 완화해 소득분배 개선에 기여하고 근로자에게 일정한 수준 이상의 생계를 보장해 줌으로써 생활을 안정시키고 ‘노동생산성’이 향상되도록 하는 데 있다. 하지만 한국의 노동생산성은 최저임금이 올라갈수록 되려 하락하는 모습이다.
전문가들은 한국의 노동생산성이 낮은 이유로 산업구조 전환의 실패를 꼽는다. 산업구조와 관련성을 고려할 때 현재 우리나라 노동제도와 노동법 체계가 경제 호황기였던 1980년대에 멈춰있다는 지적이다. 더군다나 노사관계에 있어 국가가 자율보다는 통제 중심으로 방향을 잡은 탓에 국가 중심적이고 국가 주도적인 노동 조건을 결정하다 보니 1990년대 이후 산업 구조의 현대화 흐름에 발 맞추지 못한 경향도 있다. 실제로 고도 성장기였던 1980~1990년대에는 노동 투입 둔화가, IMF 외환위기 이후인 2000년대 후반에는 자본투자 부진이 성장률 하락을 주도했다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인 2010년대부터는 노동생산성 정체가 성장률 하락의 주된 요인으로 지목된다.
경직된 노동시장이 생산성을 끌어내린다는 분석도 나온다. 시장의 경직성이 열심히 일하고자 하는 동기부여를 상실하도록 만들어 궁극적으로 노동생산성을 저하시킨다는 것이다. 실제로 직무나 성과 위주의 유연한 임금 체계가 아닌 최저임금과 같은 보편화된 임금 체계는 노동시장의 경직성을 더욱 가중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는 생산성을 끌어올리지 못할 경우 우리 경제가 역성장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한국은행은 최근 발표한 ‘한국경제 80년(1970~2050) 및 미래 성장전략’ 보고서에서 우리 경제가 낮은 생산성을 극복하지 못하면 마이너스(-) 성장 국면에 진입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한은에 따르면 통계청 중위추계 인구전망을 기준으로 생산성이 높게 유지될 경우 경제성장률은 2020년대 2.4%, 2030년대 0.9%, 2040년대 0.2%로 전망되지만, 생산성이 낮게 유지될 경우 경제성장률은 같은 기간 2.1%, 0.6%, -0.1%로 더욱 하락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도 한국의 생산성이 개선되지 않으면 성장률이 0%로 하락해 한국 경제가 ‘제로 성장’의 늪에 빠질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결국 노동생산성을 끌어올리지 못할 경우 한국 경제에 미래는 없다는 암울한 진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