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도살 스캠’ 등으로 진화하는 투자 스캠, 가상자산 활용한 사기 행위도 급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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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화한 투자 스캠 세력, 가상자산 투자사기와 결합 양상
사례집 발간 등 피해 방지 노력 이어가는 당국, 수사 당국도 수사 역량 강화
사기 범죄 검거율 50.2%로 저조한 수준, 피해 금액 회수율도 3.52%에 그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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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 스캠(Scam)이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칙적으로 진화하면서 피해 사례가 급격히 늘고 있다. 이에 정부가 사례집 발간, 법 개정 등 스캠 방지를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여전히 검거율은 저조한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는 모양새다. 피해자 구제 방안이 제대로 마련되지 않은 탓에 사기 피해자가 돈을 돌려받지 못한다는 점도 문제로 꼽힌다. 사기 행위 방지에 대한 실효성 있는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쏟아진다.

투자 스캠 대형화, 조직적으로 가짜 HTS 제작하기도

15일 금융 당국에 따르면 최근 투자 스캠 수법이 갈수록 변종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말엔 연예인·경제학자·기업 총수 등 온갖 유명인을 앞세워 페이스북에 버젓이 광고하고 호객 행위를 하는 사칭 스캠이 극성을 부렸다면, 올해 들어선 음지화하는 분위기다. SNS인 텔레그램, 카카오톡, 네이버 밴드 등에 채널을 만들어 ‘디지털 암상인’으로 활동하는 이들이 늘어난 것이다. 오는 8월 발효되는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자본시장법)’ 개정안을 의식한 결과로 풀이된다. 자본시장법 개정안은 유사투자자문업자에 채팅 입력이 불가능한 단방향 채널만을 허용하는 법안이다.

스캠 조직은 음지에서 세력을 키워 더욱 조직화·대형화하고 있다. 최근엔 직접 가짜 HTS(홈 트레이딩 시스템)을 제작하는 사례도 생겼다. 숫자만 보여주는 사설 HTS를 다운로드 받도록 유도해 가짜 실적을 보여주고 돈을 가로채는 방식이다. 사기 행위의 ‘스케일(scale)’이 점차 커지고 있는 셈이다.

해킹 계정 활용하는 스캐머들, “불법행위 사전 차단 거의 불가능”

문제는 정부 차원에서 스캠을 사전에 차단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스캐머는 낯선 이에게 접근할 때 SNS를 적극 활용하는데, 대부분 해킹한 계정을 이용하기 때문이다. 해커들이 1차로 특정 서버를 해킹해 탈취한 개인정보를 다크웹에서 판매하면 이를 다른 해커가 매수한 뒤 탈취한 정보에서 ID와 패스워드를 찾아내고 크리덴셜 스터핑(Credential Stuffing, 유출된 로그인 정보로 다른 사이트에서 로그인을 시도하는 공격)으로 여러 웹사이트에 자동으로 무차별 접속을 시도하는 식이다. 이 과정에서 해커가 해당 ID로 접속하는 데 성공하면 그 순간 SNS 계정은 통째로 빼앗기고, 스캐머는 해당 SNS 계정의 지인들에게 “돈을 빌려달라”고 요구하거나 프로필·사진을 변경해 무차별적인 투자 스캠을 시도할 수 있다.

해외 친구, 연인 등을 가장해 친분을 쌓은 뒤 투자를 명목으로 금전을 갈취하는 로맨스 스캠(Romance Scam)의 사기 구조도 이와 비슷하다. 해킹으로 SNS 계정을 탈취하고 이를 활용해 무차별 스캠을 시도한다. 로맨스 스캠과 가상자산 투자사기가 더해진 수법인 일명 ‘돼지도살 스캠(Pig Butchering)’ 역시 마찬가지지만, 수법이 좀 더 교묘하다. 돼지도살 스캐머는 피해자와의 관계를 진전시킨 뒤 거짓 투자를 유도한다. 가짜 가상자산 거래소를 정상 거래소인 것처럼 속이고, 피해자가 정상 거래소를 이용할 경우 ‘해당 거래소에선 국가적 제한 등으로 큰 수익을 얻을 수 없다’는 등 이유를 대며 가짜 거래소로 피해자를 유인한다. 이처럼 돼지를 살찌운 뒤 도살해 많은 고기를 얻는 것처럼 투자 규모를 불린 다음 돈을 가져가는 탓에 ‘돼지도살’이라고 불린다.

이렇듯 유사한 스캠 사례가 빈번하게 발생하자 금융 당국은 소비자 경보를 발령했다. 가상자산 투자자들의 경각심을 높이겠단 취지다. 관련 피해 사례를 모은 사례집도 발간했다. 금융감독원은 지난 4월 산하 가상자산연계 투자사기 신고센터를 통해 접수된 누적 2,209건의 피해 신고를 전수 분석해 대표적인 피해 사례 7건을 선정했다. 금감원은 사례집을 기준으로 피해 경위와 대응 요령 등을 정리함으로써 피해율을 낮추고 관련 범죄 수사를 뒷받침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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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 역량 강화했지만, 검거율 여전히 저조

경찰 차원에서는 수사 역량 강화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 최근엔 실제 범죄 조직을 검거하는 성과도 나오고 있다. 지난 9일 허위 투자회사와 가상자산 선물 거래소를 개설해 총 90억원을 편취한 투자사기 조직 총책 9명을 검거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경기남부경찰서에 따르면 피의자들은 오픈 채팅방으로 투자자들을 모집해 “지시대로 투자하면 원금과 고수익이 보장된다”며 투자금을 받았다. 이들은 유사 허위 가상자산 거래소를 만든 뒤 투자자로부터 수익이 발생했다는 명목으로 수익금의 50~60%를 대가로 지속해서 받았고, 거래를 조작하는 수법으로 투자자의 보유 자산을 모두 잃게 한 후 재투자받는 수법으로 돈을 탈취했다.

지난 12일엔 부산에서 구청장을 지냈던 아버지의 이름을 내세워 150억원대 투자 사기를 벌인 40대 여성에게 징역 10년이 선고되기도 했다. 피의자는 자신을 “아버지가 구청장이던 지역에서 공병 재활용 관련 사업을 하고 있는 사람”이라고 소개하며 “투자하면 안정적으로 수익금을 지급하겠다”고 투자자들을 모집했다. 그 결과 26명으로부터 총 157억원을 투자받았지만, 사실상 피의자는 관련 사업을 영위한 바가 없었다. 피의자는 다른 투자자의 돈으로 피해자에게 수익금을 지급하는 소위 돌려막기 수법을 쓰며 수년간 범행을 이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수사가 본격화하며 리딩방 운영자 등 가해자의 실상이 밝혀지고 있지만, 검거율은 여전히 저조한 수준이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 1분기 기준 사기 범죄의 검거율은 50.2%에 그쳤다. 전체 범죄 검거율 73.5% 대비 확연히 낮은 수치이자, 2017년 사기 범죄 검거율(79.5%)와 비교해도 낮다. 지난 3월 유형별 검거 건수를 봐도 보이스피싱 혐의 피의자는 1,444명, 투자리딩방 사기 피의자는 138명이 검거된 데 반해 로맨스 스캠 피의자는 단 1명이 검거되는 데 그쳤다. 이렇다 보니 피해액도 높아지고 있다. 국가정보원에 따르면 지난해 집계된 로맨스 스캠 피해액은 55억1,200만원이었다. 2019년 8억3,000만원 대비 7배가량 급증한 수준이다.

수사 당국이 특히 로맨스 스캠 피의자 검거에 제힘을 못 쓰고 있는 건 불법행위가 국제적으로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대한범죄학회가 발간한 ‘판결문을 통해 살펴본 로맨스 스캠 범죄의 양태’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5년간 로맨스 스캠으로 유죄가 선고된 1심 판결문 총 73건의 피고인은 모두 외국인이었다. 결국 근거지를 해외에 둬 일망타진이 어려운 보이스피싱과 유사한 상황이라는 게 당국의 설명이다.

설령 피의자가 검거된다 하더라도 피해자가 돈을 돌려받는 경우는 극소수에 불과하다는 점도 문제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사기 범죄 피해 금액 29조3,412억원(32만1,020건) 가운데 피해자들에게 돌아간 회수 금액은 1조322억원으로, 회수율은 겨우 3.52% 수준이다. 가상자산이 범죄 자금 출금 수단으로 활용되면서 추적이 어려워진 탓이다. 정부·국회 차원에서 실효성 있는 피해자 구제 방안을 마련하지 못한 영향도 크다. 결국 현시점에선 각 개인이 스스로 주의를 요하는 것만이 최선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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