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캐즘·VF8 혹평 등 악재 겹친 빈패스트, 결국 미국 공장 개설 연기
글로벌 전기차 시장 침체, 빈패스트 주가도 고점 대비 95%가량 하락
경제 역풍에 불확실성 증대, 보조금 지급 전 투자 감행할 여력 부족했나
"돈 떨어질 때까지 투자할 것"이라던 브엉 회장, 차후 사업 전략에 제동 걸리나
베트남 전기차 제조업체 빈패스트가 미국 전기차·배터리 공장 개설 시기를 3년 연기하기로 했다. 글로벌 전기차 시장이 침체하면서 판매 부진이 심화해 적잖은 손실을 본 만큼 부담을 줄이겠단 취지로 보인다.
빈패스트, 미국 공장 개설 2028년까지 연기
15일(현지 시각) 전기차 매체 인사이드EV에 따르면 빈패스트는 성명을 통해 당초 2025년 가동될 예정이던 미국 공장 개설을 3년 늦추겠다고 밝혔다. 주요국 거시경제 환경이 악화했다는 점, 전 세계 전기차 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졌다는 점 등을 공장 가동 연기의 이유로 들었다. 올해 연간 판매량 목표치도 종전 10만 대에서 8만 대로 낮춰 잡았다. 이를 통해 우선 단기간 지출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단기간 성장 목표에 집중하겠단 취지다.
앞서 지난 2022년 빈패스트는 노스캐롤라이나주 채텀 카운티에 전기차 공장 건설 계획을 발표한 뒤 총 40억 달러(약 5조5,000억원)를 투입해 공장 착공에 돌입했다. 이 계획으로 회사는 향후 수십 년 동안 약 12억 달러(약 1조6,560억원)의 주 및 카운티 보조금을 받을 수 있게 됐다. 그러나 미국 내 빈패스트의 상황은 좋지 않다. 미국에서 판매 중인 빈패스트의 유일한 모델인 VF8이 전례 없는 혹평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에 빈패스트는 올 1분기에만 약 6억1,800만 달러(약 8,530억8,720만원)의 손실을 기록했다.
주가도 폭락했다. 빈패스트의 주가는 지난해 8월 미국 증시 상장 직후 700% 이상 폭등한 바 있으나, 이내 급락했다. 지난 12일 기준 빈패스트의 주가는 고점에서 약 95% 하락한 주당 4.85달러 수준이다.
사후지원 방식 보조금에 부담 높아진 듯
미국의 보조금 지원이 사후지원 방식으로 이뤄진다는 점도 빈패스트의 부담을 높인 것으로 보인다. 결국 당장 공장 건설비를 빈패스트 측에서 전부 부담해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미국 국제개발금융공사(DFC)가 지급 의사를 밝힌 5억 달러(약 6,570억원)가량의 지원금도 마찬가지다. 빈패스트가 DFC의 지원금을 수령하기 위해선 △기업의 탄탄한 재정 능력 △개발, 환경 및 사회적 영향에 관한 DFC 및 현지 요구사항 준수 △법률 및 규제사항 준수 등 다양한 기준에 대한 종합적인 평가를 받아야만 한다. 결국 이 또한 사후지원 방식이라는 의미다.
이에 빈패스트는 올 초부터 공장 건설 연기를 타진해 왔다. 로이터 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빈패스트는 올해 들어 공장 건물의 규모를 두 차례나 수정했고, 지난 4월엔 본격적으로 공장 개장 지연을 검토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전기차 환경의 경제 역풍과 불확실성이 심화하면서 당장 막대한 투자를 감행할 여력이 없었던 탓이다. 이에 대해 로이터는 “최근 대출 금리 상승 등에 따라 소비자들이 좀 더 저렴한 하이브리드 차량으로 눈을 돌리면서 전기차 수요가 주춤하고 있다”며 “이에 많은 자동차 제조업체들이 새 전기차 모델 출시와 공장 건설 등에 대한 계획을 재검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공격적 투자 이어 온 빈그룹, 현실의 벽은 못 넘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모회사 빈그룹의 전기차 사업 전략에도 제동이 걸릴 전망이다. 앞서 지난 6월 팜 녓 브엉(Pham Nhat Vuong) 빈그룹 회장은 블룸버그와의 화상 인터뷰에서 ‘빈패스트에 언제까지 투자할 것이냐’는 질문을 받고 “돈이 떨어질 때까지”라고 언급했다. 브엉 회장은 그러면서 “빈패스트는 곧 손익분기점에 도달하고 자율적이게 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빈패스트의 미래 경쟁력을 확신하며 자신감을 드러낸 것이다.
브엉 회장은 또 “빈패스트는 비즈니스 프로젝트일 뿐 아니라 헌신적인 프로젝트이기도 하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빈패스트가 베트남의 제조업을 국제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한 프로젝트의 일환임을 강조한 것으로 풀이된다. 미국에서의 계획과 관련해선 “올해 미국 매출은 30~40배 증가할 것이고, 이 모멘텀은 향후 5년간 유지될 것”이라며 “판매를 늘리기 위해 딜러 네트워크를 개발하고 고객들이 직접 차를 경험할 수 있도록 직접 마케팅을 전개해 나갈 것”이라고 전했다. 미국 내 경쟁력 제고에 대한 의지가 강력했음에도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정체) 등 현실의 벽을 넘지 못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