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포럼] 한국 의료체계도 ‘건강검진’이 필요하다
한국, 인구당 의사 수 OECD 국가 중 가장 적어
수도권에 쏠린 의료 인프라로 지방의료 지속 악화
공론의 장 만들고 인력 분배 개선해야
[동아시아포럼] 섹션은 EAST ASIA FORUM에서 전하는 동아시아 정책 동향을 담았습니다. EAST ASIA FORUM은 오스트레일리아 국립대학교(Australia National University) 크로퍼드 공공정책대학(Crawford School of Public Policy) 산하의 공공정책과 관련된 정치, 경제, 비즈니스, 법률, 안보, 국제관계에 대한 연구·분석 플랫폼입니다. 저희 폴리시 이코노미(Policy Economy)와 영어 원문 공개 조건으로 콘텐츠 제휴가 진행 중입니다.
한국 의료시스템이 위기에 직면했다. 파업을 선언한 의사들은 업무가 과중하다고 호소하며 정부와 의료계 사이의 신뢰 부족 문제를 지적한다. 이 같은 상황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낮은 인구당 의사 수로 인해 격화된 측면도 있다. 여기엔 제한된 의대 정원 탓이 크다. 그러나 한국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정책은 의사들의 거센 반발에 부딪힌 상태로, 의료 개혁까지 가는 길은 상당히 험난할 듯하다.
인구당 의사 수 적고 노동 격차 커
현재 한국의 의대 정원은 3,058명이다. 한국 인구당 의사 수는 인구 1,000명당 2.6명으로, OECD 국가들 가운데 가장 낮은 수준이다. 오는 2035년이 되면 내과의사가 1,500명가량 부족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인구 고령화는 물론 심장질환, 암과 같은 비전염성 질환이 늘어나는 것도 문제를 더 복잡하게 만든다. 내과뿐 아니라 소아과나 응급의학과 같은 필수의료 부문 역시 인력 부족이 심각한 상황이다. 이는 많은 의사들이 피부과나 성형외과 같은 소위 ‘돈 되는’ 과들로 몰린 영향이 크다. 더욱이 이런 과는 의료 분쟁 가능성도 작다. 조사에 따르면 지난 2018~2022년 사이 제대로 된 응급의료 조치를 받지 못한 환자 3만7,218명 중 30% 정도가 이 같은 고질적인 의사 수 부족 문제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산된다.
서울과 지방 간 의료 격차도 큰 문제다. 한국의 의료 인프라는 주로 서울에 몰려 있는데, 지방엔 서울의 절반도 안 되는 수의 의사만 상주하며 응급의료 지연 가능성을 한층 더 키우고 있다. 5분이 채 안 되는 평균 진료 시간은 필수의료 가격을 통제하는 ‘수가제(fee-for-service)’에서 비롯됐다. 의사들이 이윤을 최대화하기 위해 진료 시간을 계속 줄이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한국은 평균 진료 시간이 OECD 국가들 가운데 가장 낮은 수준임에도 1인당 의사 대면 진료 횟수는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한국 의료계의 보상 체계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방증한다. 게다가 젊은 전문의들과 필수의료 분야에서 전문성을 쌓은 의사들은 국민건강보험공단(이하 건보공단)이 지원하는 수술들을 대거 집도하는데, 건보공단이 환급하는 건 표준 진료비의 65%에 불과하다. 의사들이 과로와 저임금에 시달린다고 호소하는 이유다.
의사 파업으로 개혁은 무기한 답보 상태
지난 2월 윤석열 대통령이 내놓은 정책은 의료계 전반에 대한 개혁 방안을 담았다. 500억원을 투자해 지역의료 인프라를 개선하고 보험 가입 등을 통해 의료사고 안전망을 구축하는가 하면 보상 구조의 공정성을 강화하는 내용 등도 포함됐다. 그런데 이 중 의대생 정원 상한을 없애려는 계획이 의사협회의 거센 반발에 부닥쳤다. 이에 한국 정부는 의대 입학 정원을 1,509명으로 확대하기로 확정했다. 이는 27년 만의 증원으로 정부가 당초 제시했던 2,000명에선 대폭 줄어든 숫자다. 다만 이밖에 의사들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한 논의들엔 진전이 없는 듯하다. 윤 대통령은 전공의 파업이 마무리될 경우 협상에 나설 의사가 있다는 이야기만 반복하고 있다.
한국 정부 관계자들은 의사협회가 지나치게 폐쇄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반면 의사협회는 역대 정부들이 정치적으로 편리한 해결책에만 집중하느라 실제 현장에 있는 의료진들의 목소리엔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고 토로한다. 양쪽 모두 물러날 기미는 보이지 않으며 팽팽하게 대치하는 모습이다.
현재 의사들은 면허 취소 등의 위험에도 불구하고 전문의 5%만 병원에서의 근무를 유지하는 등 강경한 입장을 내비치고 있다. 물론 이 같은 반발이 새로운 건 아니다. 지난 2020년 문재인 정부 당시에도 의대 정원을 10년에 걸쳐 4,000명으로 늘리고, 필수의료 및 지방근무를 담당할 정원을 추가 선발하는 방안에 제기됐다. 하지만 이 계획은 코로나19 사태가 터진 가운데 의사들이 파업에 돌입하면서 빠르게 묻혔다.
의사들이 이렇듯 강경하게 저항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교육의 질이 떨어질 것이라는 비판이 나오는가 하면 의사라는 직업군의 명성이 내려가는 것도 의사 집단이 우려하는 대표적인 부분이다. 근무 환경과 임금이 더 악화될 것이라고 내다보는 목소리도 높으며, 일각에서는 교수 부족, 연구 시설 증축 문제, 제한적인 레지던트 일자리, 예산의 제약 등을 문제 삼기도 한다. 그러나 이 같은 이유들이 정원을 막는 정당한 이유가 되긴 어려워 보인다. 더욱이 한국에선 의사 집단이 오랫동안 고수익을 올려왔다는 인식이 국민들에게 강하게 박혀 있는 터다.
물론 정부 차원에서도 정원을 늘린 상황에서 그에 따른 교육의 질 하락 등의 문제를 현재의 의대 교수 인력만으로 해결할 수 있음을 보여줘야 한다. 의사들이 목소리를 높일 수 있는 공론의 장을 만들어 굳어진 불신을 해소하는 것도 필요하다. 이런 공론의 장은 의료계와 정부가 함께 필요와 수용 능력 사이 균형을 잡아가는 공간으로 기능할 수 있다. 자원과 인력 배분 문제를 개선하기 위한 개혁안 통과도 필수적인 상황이다. 이는 새롭게 의료계에 진입하는 의사들을 보다 체계적인 전략으로 배치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성형외과와 피부과 같은 분야에 대한 정부 관리감독을 강화하면 의사들이 제멋대로 가격을 매길 여지를 차단할 수 있고, 해당 분야의 수입이 줄어들면 다른 주요 분야에 필요한 인력들이 보충될 수 있다는 논리다.
다만 지역 의료 여건이 변수로 남아 있다. 지방까지 아우르는 종합적인 개선책이 없다면 계속해서 수도권의 대형 병원에 지방 환자들이 몰릴 수밖에 없어서다. 이에 한국 정부는 순환근무나 장학금, 가족 지원금 등을 통해 의사들이 지방에서도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이동진료소나 원격의료 같은 시스템을 보충하는 것도 환자들에게 제때 적합한 치료를 제공하고 병원 방문을 줄이는 방법이다. 한국의 의료 체계를 개편하려면 오랫동안 이어진 구조적 문제를 바로잡고 혁신적인 전략을 수행하는 데 고루 집중할 필요가 있다는 의미다. 정부가 이 균형을 맞추는 데 실패한다면 시급한 개혁들마저 계속해서 좌초될 공산이 크다. 하지만 의료법 통과는 여전히 답보 상태다. 파업 초반엔 중요한 수술들이 대거 밀리면서 파업 반대 여론이 강했으나, 윤 대통령이 굽히지 않는 태도를 고수하면서 정부에 대한 비난도 커진 상황이기 때문이다.
영어 원문 기사는 South Korea’s healthcare system gets a checkup | East Asia Forum에 게재돼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