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 파업 리스크에 울상 짓는 조선업계, 슈퍼사이클에도 ‘먹구름’ 끼나
조선사 노조 파업 가결 수순, 8월 중순께 공동 파업 나선다
실적 호조세 접어든 조선사들, HD현대그룹은 영업익 928% 오르기도
노조 교섭안에 사측은 '난감', "실적 달성 못 해 조건 들어주기 어려워"
국내 조선업이 십수 년 만의 슈퍼사이클(초호황기)에도 울상을 짓고 있다. 호황기에 접어들자마자 노동조합이 파업을 시사하고 나선 탓이다. 특히 최근엔 조선사 노조 간 공동파업을 추진하려는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노사 갈등이 장기화하면 초호황기에도 먹구름이 낄 가능성이 높은 만큼, 당분간 조선사들은 리스크 해소에 전념해야 할 것으로 전망된다.
조선업계 노조 파업 본격화
29일 조선업계에 따르면 고용노동부 중앙노동위원회는 HD현대중공업 노조(전국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가 지난 18일 신청한 노동쟁의 조정에 대해 ‘조정중지’ 결정을 내렸다. 노사 간 이견이 크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조정중지 결정이 떨어지면 노조는 파업이나 태업 등 쟁의권을, 사측은 사업장 폐쇄 등 권한을 갖는다. HD현대중공업 노조는 중노위 결정 전인 지난 25일 조합원 투표를 통해 파업을 가결했다.
이에 따라 노조 측은 8월 중순 이후 조선업 공동 파업에 나설 계획이다. HD현대그룹 내 조선사인 HD현대삼호, HD현대미포와 한화오션, 삼성중공업, HJ중공업 등 국내 8개 조선사 노조가 손을 맞잡을 예정이며, 조합원 투표도 마무리 수순이다. 한화오션 노조는 지난 15일, 삼성중공업 노동자협의회는 지난 22일 조합원 투표를 통해 파업을 가결했다. HD현대미포와 HD현대삼호도 각각 지난 24일과 26일 조합원 투표로 파업을 가결한 것으로 알려졌다.
‘슈퍼사이클’ 돌입한 업계, 노조 리스크에 발목
노조 리스크가 가시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하면서, 조선 업계에선 “수익성 개선과 늘어나는 일감에도 노조에 발목을 붙잡히는 모양새가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국내 조선업은 올해 상반기 16년 만의 슈퍼사이클에 돌입했다. 영국 조선·해운 시황 분석업체 클락슨에 따르면 신조선가 지수는 이달 12일 기준 187.78로 조선업 최고 호황기로 꼽히던 2008년 9월 191.6에 근접했다.
조선 빅3의 상반기 실적도 모두 호조세다. HD현대그룹의 조선·해양 중간지주사 HD한국조선해양은 상반기 매출 12조1,311억원으로 전년 대비 17.8% 상승했고, 영업이익은 무려 928% 상승해 5,366억원을 기록했다. 한화오션은 상반기 매출 4조8,196억원으로 전년 대비 47.8% 늘었고, 동기간 영업이익도 433억원을 기록해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삼성중공업 역시 올해 상반기 매출 4조8,798억원, 영업이익 2,086억원으로 전년 대비 각각 37.4%, 165.7% 증가했다.
이런 가운데 노조 측의 공동 파업이 현실화할 경우 생산에 차질이 생겨 납기가 지연되고 선주 측에 수백억~수천억원에 달하는 지체보상금을 지급해야 할 수 있다. 여기에 더불어 회사 신뢰도가 하락해 향후 수주를 중국 조선소에 빼앗기는 등 미래 전망이 크게 악화할 우려까지 있다.
노조 측은 우선 요구안을 마련해 사측과 교섭에 나서는 모양새다. HD현대중공업과 미포조선, 삼호중공업 등은 최근 공동 요구안을 통해 공동 교섭을 진행할 것임을 시사했다. 요구안엔 ▲기본급 15만9,800원 인상(호봉 승급분 제외) ▲성과급 산출 기준 변경 ▲정년 연장 ▲임금피크제 폐기 등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이외 한화오션 노조는 기준임금의 300%에 해당하는 양도제한조건부주식(RSU) 300% 지급을 요구 중이다. 지난해 인수 과정에서 위로금 명목으로 현금과 주식을 각각 150% 받는 조건이 포함돼있다는 명목에서다. 삼성중공업의 경우 최근 창립 50년 만에 처음 현장직 노조를 출범했다. 그간 노사협의회를 통해서만 임금 협상을 벌여 온 과거를 청산하고 올해부터 각자 교섭에 나서겠단 취지다.
노사 갈등 장기화 우려 확산, “하루빨리 리스크 해소해야”
조선사 측은 노조 측이 제시한 조건에 난감하다는 입장이다. 대표적으로 HD현대중공업은 “조선사별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는 공동 교섭으로는 근로자가 원하는 요구를 받아들이기 어렵다”며 개별 교섭을 요청했다. 한화오션 측도 “2023년 실적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만큼 RSU 300% 지급 방식의 성과급은 줄 수 없다”고 못을 박았다.
이처럼 노사 간 이견이 거듭 노출되면서 업계에선 노사 갈등이 장기화하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이 터져 나온다. 과거 비슷한 사례도 있다. 앞서 지난 2022년 한화오션이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하기 전 대우조선 노조는 6월 2일 임금 인상을 요구하며 합법 파업을 시작했다. 이후 조선소 내 주요 거점을 점거하다가 사실상 효과가 없자 22일부터 제1도크(배를 건조하는 작업장)에서 점거농성을 했다.
이에 대우조선은 전국금속노동조합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이하 노조) 임원 5명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파업 투쟁을 벌인 기간 동안 목표량을 채우지 못한 작업 시간을 모두 ‘점거에 따른 손해’라고 주장한 것이다. 대우조선은 파업이 이뤄진 6월 2일~7월 22일 동안 전체 조선소의 목표 생산용 시수가 229만 시수였다고 밝혔다. 그러나 회사 전산시스템상 실제 일한 것으로 기록된 시수는 154만 시수에 그쳐 노조의 파업으로 인해 손해를 본 시수가 75만 시수라고 주장했다. 여기에 직간접 노무비·생산경비 등으로 책정되는 시간당 가공비 단가(비생산 노무비·기타경비 제외) 6만3,113원을 곱했더니 473억원가량의 피해액이 집계됐다고 대우조선은 강조했다.
반면 쟁의행위 손배소 문제 해결을 위해 출범한 시민단체 ‘손잡고’의 송영섭 법제도개선위원은 “현장에서 작업 시수를 맞추지 못하는 덴 장비 고장과 부품 조달 미흡, 사고 등 다양한 이유가 있다. 단지 목표 시수를 맞추지 못했다는 이유로 ‘모자란 시간은 모두 점거 행위로 인한 손실’이라고 주장하는 건 오직 점거 손실 외에 다른 변수가 없음을 입증할 때만 가능한 주장”이라고 반박했다. “점거 이전에도 인력난이 워낙 심각해 사실상 목표량을 맞추지 못하는 날들이 많았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들의 갈등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사건에 대한 첫 공판이 진행된 것도 올해 3월에 들어서였다. 파업이 장기화하거나 노사 간 분열이 심화하면 그 부담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질 수 있단 의미다. 결국 슈퍼사이클에 돌입해 조선소를 완전히 가동해도 납기일을 맞추기 버거운 상황에 몰린 조선사 입장에선 당분간 노조 리스크 해소에 집중할 필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