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사기방지법 개정안 국무회의 통과, 정착 관건은 ‘양형기준 조정’
2016년 제정 뒤 첫 개정, 8월 14일부터 시행
금융당국, 관계기관·포털에 조사자료 요청 가능
감경요소 삭제·가중처벌 등은 빠져
보험사기방지특별법이 8년 만에 개정됐다. 앞으로 금융당국은 보험 사기행위 조사를 위해 관계기관과 포털 등에 자료를 요청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처벌 강화, 업계 관계자 가중 처벌 등 보험업계의 주요 요청 사항은 빠져 아쉬움을 사고 있다.
보험사기방지특별법 개정안, 내달부터 시행
금융위원회는 30일 보험사기방지 특별법 시행령 개정안이 국무회의에서 의결됐다고 밝혔다. 지난 2월 공포된 개정안에서 위임한 사항을 정한 것으로 오는 8월 14일 시행된다. 먼저 금융당국은 보험사기 행위 조사를 위해 국민건강보험공단, 근로복지공단 등 관계기관에 필요한 자료를 요청할 수 있다. 보험사기를 알선·권유하는 웹페이지 정보는 통신사, 포탈, SNS 서비스 제공자를 통해 확보할 수 있다. 혐의 정보 게시자의 정보통신망 접속기록, 성명, 주소, 연락처 등이 포함된다.
당국은 보험금 허위 청구, 고의사고 등의 제보가 있을 경우 조사에 필요한 요양급여 내역이나 산재보험금 부당이익 징수에 관한 자료를 확보할 계획이다. 보험사기 알선, 권유, 유인 또는 광고 행위로 의심될 때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심의요청을 하거나 경찰청에 수사를 의뢰할 예정이다. 이를 위해 방심위 자동 심의요청 의뢰 전산시스템을 구축했고, 수사 의뢰가 가능한 보험사기 알선·유인 등의 사례에 대해서 경찰청과 협의를 마쳤다.
수사기관의 의뢰에 따라 입원 적정성을 심사하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경우 환자 개인의 병력·건강 상태와 입원 치료의 유효성 등을 고려한 ‘입원적정성 심사처리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아울러 보험사의 자동차보험 사기 관련 고지 의무가 법제화된다. 보험사기 행위로 보험료가 부당하게 할증된 경우 보험계약자 또는 피보험자에게 △할증된 사실 △보험료 환급 가능 여부 △환급 절차 등을 알려야 한다. 앞서 2009년부터 자발적으로 시행되고 있던 것으로 이번 법 개정을 통해 제도 안에 들어왔다.
적발해도 처벌 미약, “추가 개정 필요”
이번 특별법 개정은 2016년 제정 이후 처음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그간 특별법이 생긴 이후 보험사기는 오히려 증가했고, 처벌은 기존 형법과 크게 다르지 않아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많았다. 그러나 업계가 강력하게 요구했던 처벌 강화 조항은 제외돼 아쉬움을 남겼다. 앞서 보험업계는 보험사기에 대한 기존 벌금형을 상향하고, 보험사기에 가담한 보험업계 종사자를 가중 처벌한 뒤 해당 명단 또한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행 특별법은 보험사기에 대해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실제론 소액의 벌금형 또는 단기 징역형·집행유예가 대부분이다. 이 같은 주장은 국회에서는 받아들여졌지만 법무부 등의 반대에 부딪혀 무산됐다. 관련 업종 임직원에 대해 법정형을 상향하는 사례가 드문 데다 평등권 침해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아울러 가중 처벌 규정이 경합해 과잉 처벌이 될 가능성이 있다는 의견도 있었다.
게다가 당시 금융위는 법안 통과를 서두르며 처벌 강화 등은 뒤로 미뤘다. 김소영 금융위 부위원장은 지난 1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해 “시간이 많으면 좀 더 협의할 텐데 일단 보험사기 알선이나 광고 부분을 먼저 하고 나머지는 추후에 좀 더 하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보험사기로 수억원 편취해도 ‘불기소’ 수두룩
이런 이유로 현재 22대 국회에 관련 법안 발의는 한 건도 없다. 이에 업계는 법 개정 외에도 양형기준 설정 등을 통해 처벌을 강화하는 방안으로 방향을 돌렸다. 양형기준은 형을 정할 때 참고할 수 있는 기준으로 각 범죄의 특성을 반영한다. 현재 징역형 47개 범죄, 벌금형 3개 범죄에 대해 양형기준이 설정됐다. 사기의 경우 일반사기, 조직적 사기 2가지로만 나뉘며 개별 사기범죄에 대한 분류는 따로 없다.
예를 들어 보험사기로 5억원을 편취하면 일반사기 3유형으로 분류돼 기본 징역 3~6년이 선고된다. 압력 등에 의해 소극적으로 범행에 가담했거나, 처벌불원 및 피해를 복구한 경우 감경 요소가 적용돼 형량이 1년 6개월~4년으로 줄어든다. 반면 상습범, 동종누범 등의 경우는 가중요소가 반영돼 형량이 4~7년으로 증가한다. 2016년 제정된 보험사기방지특별법이 제 역할을 못 하는 점도 문제다. 현재 특별법상 벌금형의 경우 일반사기(2,000만원)보다 높은 기준(5,000만원)이 적용되고 있지만, 징역형의 법정형은 형법상 법정형과 동일하다.
이처럼 처벌이 미약하다 보니 업계는 거액의 보험금을 노린 보험사기도 빈번해지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보험사기 적발액은 1조1,164억원으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적발 인원도 11만 명에 육박했다. 보험사기 피해에 따른 보험사의 손해율 증가는 결국 보험료 인상을 초래해 일반 보험 가입자의 부담으로 이어지며 건강보험 재정 누수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명백히 사회를 위협하는 중대범죄다.
그럼에도 보험사기와 관련한 법원의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이다. 수억원의 보험금을 편취하더라도 기소조차 되지 않거나, 벌금형에 그치는 경우도 많다. 실제로 생명보험협회가 올해 1~7월까지 발표된 220건의 보험사기 판결문을 분석한 결과 이 중 절반에 가까운 47%(104건)가 불기소된 것으로 나타났다. 정식 판결문을 받은 67건 중에선 징역이 59%(40건)로 가장 많았고, 벌금(25%·17건)이 뒤를 이었다. 징역형은 편취 금액에 따라 △1억원 이하 징역 10개월 △1억원대 징역 1년 △1억원 이상 징역 1년 6개월 등의 경향을 보였다. 다만 집행유예와 함께 사회봉사를 명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이같은 처벌마저도 일관적이지 않았다. 편취 금액이 비슷한 경우에도 판사에 따라 벌금 규모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보험설계사가 보험사기를 저질러도 영업정지, 등록취소 등의 행정적인 제재를 받기 전까지 영업 활동에는 지장이 없다는 점도 문제다. 한 대형보험사에서 근무했던 A설계사는 2014년 10월부터 2015년 1월까지 보험사기를 저질렀지만 약 10년이 지난 이달 8일에야 금융당국의 등록취소 제재를 통보받았으며, 현재 다른보험사에서 근무하고 있는 데 대해서도 별다른 제재가 없다. A설계사뿐 아니라 제재안이 결정된 다른 사건들도 보험사기 발생 시기는 2015~2019년 등 수년 전이다. 이들 역시 보험사기로 형이 확정된 후에도 그대로 근무하거나 다른 회사로 이직해 보험설계사 일을 하는 경우가 상당수다.
현행 보험업법엔 금융상품판매업 등록을 하지 않고 금융상품을 판매하거나 거짓이나 부정한 방법으로 금융상품판매업을 등록하는 행위로 재판부가 처벌을 확정하면 보험설계사 등록을 제한한다. 하지만 보험사기방지법 위반으로 법정에서 형이 확정된 경우는 보험설계사 등록제한 대상이 아니다. 보험설계사가 보험사기로 실형선고가 확정됐지만 영업정지·등록취소와 같은 행정제재를 가하려면 금융당국의 검사와 제재·청문 등의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