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이은 화재 사고에 불붙은 전기차 공포증, ‘중고 전기차’ 매물 늘고 가격은 하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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잇단 화재 사고에 에 중고 전기차 매물 급증
화재 우려로 지하주차장 제한, 전기차 판매 악재
"정부의 안일한 대책이 화 키웠다"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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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세데스-벤츠 더 뉴 EQE/사진=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

이달 초 인천 청라의 한 아파트에서 발생한 전기차 화재로 소비자들 사이에서 ‘전기차 포비아(공포증)’가 확산하면서 중고차 시장에서 소비자들의 전기차 외면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화재 차량인 메르세데스-벤츠 EQE 모델의 중고차 가격은 화재 사고 전보다 1,000만원 이상 떨어졌다. 하반기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둔화) 극복에 나섰던 완성차 업계 역시 어렵긴 마찬가지다. 다양한 프로모션을 제시하고 있지만, 소비자가 얼마나 반응할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매물만 쌓이는 중고 전기차

16일 업계에 따르면 중고차 플랫폼 케이카(K Car)가 인천 청라 전기차 화재 사고가 발생한 지난 1일 이후 7일간 중고 전기차 접수량을 집계한 결과 직전 주(7월 25∼31일) 대비 184%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이번에 화재가 난 벤츠 EQE 모델 재고가 빠르게 느는 모습이다. 중고차 매매 업체 엔카 홈페이지를 살펴보면 이달 14일) 기준 벤츠 EQE 매물은 112대로, 이 중 100대가량이 청라 화재 이후 등록된 매물로 알려졌다.

매물이 쌓이면서 가격도 하락하고 있다. 벤츠 EQE는 사고 이전 6,000만원 중반에서 7,000만원대에 시세가 형성됐지만, 최근에는 5,000만 원대 매물도 등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한 중고차 딜러는 “중고차 구매 문의는 거의 없고 팔겠다는 문의만 들어온다”며 “중고 전기차는 배터리 기능 저하 등에 대한 우려가 있는데, 여기에 배터리 안전 문제가 대두되면서 사실상 거래가 끊긴 상태”라고 전했다.

전기차 포비아 현상으로 인해 신차 판매도 어려운 상황이다. 이에 완성차 업계는 다양한 프로모션을 내놓으며 전기차 기피 현상 극복에 나서고 있다. 현대자동차는 최근 전기차 아이오닉5와 코나 일렉트릭에 각각 최대 200만원 할인+10%, 500만원 할인 혜택을 제공하는 안내 문자를 발송했다. 제네시스 GV70도 EV 포함해 전 모델에 최대 5% 할인 혜택을 적용한다. 수입차 업계도 일찌감치 전기차 할인 공세 나섰다. 이달 들어 BMW는 전기차 i7 xDrive 60에 12.7%, iX xDrive 50 스포츠플러스에 12.9%의 할인을 각각 적용하고 있다. 아우디의 전기차 e-트론 55 콰트로·S 콰트로 할인율은 29.5%에 달한다. 9월 할인 규모는 더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전기차 할인이 얼마나 효과를 발휘할지 미지수다. 국내 완성차 업계 한 딜러는 “기존 전기차 계약 고객에게 차량 생산 일정 안내차 전화하면 대부분 계약을 취소한다”며 “분위기가 좋지 않다”고 말했다. 안전 문제에 더해 최근 전기차 충전율을 기준으로 지하주차장 이용을 제한하는 등 다양한 규제 방안이 논의되면서 이용 편의성이 줄어드는 것도 전기차 구매 의욕을 줄이고 있다.

선제적 안전 대응 방안 미흡

이런 가운데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정부가 그동안 근본적인 대책 마련에는 소홀했던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그간 배터리 관련 화재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서둘러 대책을 내놨지만, 구체적인 성과는 내지 못하고 있어서다. 실제로 수년 전부터 전기차 화재의 위험성과 심각성에 대한 전조 증상은 있었다. 이번 화재에 앞서 크고 작은 전기차 화재 사고가 있었고 그때마다 전기차 배터리에서 발생한 불을 끄지 못해 전소하거나 진화에 장시간이 걸리는 문제가 확인되기도 했다.

이에 정부는 지난 2021년 전기차 배터리 안전성 평가 기준과 배터리관리시스템(BMS) 진단 기능을 강화했으나, 최근 잇따른 화재 사고를 통해 미봉책이었음이 드러났다. 지난해 6월에도 전기차 안전 대책이 나온 바 있지만, 화재 예방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여전히 발화 원인조차 규명하지 못하고 있는 데다 화재 진압 장비나 예방 대책도 미흡한 상태다. 올해부터 지하 3층까지만 전기차 충전 설비를 설치하도록 한 대책 역시 전형적 탁상행정이라는 비난을 샀다.

일각에선 정부가 안전 대책 마련보다는 전기차 보급 확대에만 치중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그동안 정부는 친환경 자동차 활성화 정책을 명목으로 아파트 지하주차장 등에 전기차 충전시설 설치를 대폭 늘렸는데, 안전 대책이 없는 상황에서 폐쇄적인 지하주차장에 충전시설을 설치할 때 화재 발생 시 피해가 더 클 수밖에 없음에도 인프라 확대에만 정책의 방점이 찍혀있다 보니 안전은 등한시 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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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성 알고도 안일한 대처

정부가 전기차 화재에 대한 위험성을 인지하고도 대책 마련에 소홀했다는 목소리도 높다. 국토교통부가 지난해 작성한 ‘주차장 구조·안전 기준 및 제도개선 연구보고서’에 “전기차 전용 주차구역은 화재 안전 측면에서 지상층 옥외공간에 설치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명시돼 있음에도 정부가 의견 수렴 과정에서 해당 안건을 제외한 것으로 알려지면서다.

또 정부는 2년 전 전기차 배터리 식별 번호를 통한 이력 관리 방안도 검토했지만 적용 시점을 늦춘 것으로 확인됐다. 배터리 이력 관리의 중요성이 커지는 가운데 배터리 안전성을 확보하고 배터리 재사용을 촉진하겠다는 취지였지만, 결과적으로 제도 도입이 늦어졌다. ‘현행 자동차 제작사 및 배터리 제조사 등에서 사용하고 있는 시리얼 번호를 우선 사용’하는 쪽으로 의견이 모였기 때문이다. 국가 차원의 표준을 도입하면 연구 기간이 소요되며 산업계 부담 등 행정적·재정적 소요가 예상된다는 것이 이유였다. 이력관리제 도입의 필요성은 인정했지만 시행 시점은 뒤로 미룬 것이다.

지난 12일 정부가 개최한 긴급회의에 대해서도 힐난이 쏟아진다. 이날 회의는 전기차 화재를 계기로 확산하는 전기차 포비아를 잠재우고, 날로 증가하는 전기차 화재에 대응하기 위한 취지에서 열렸으나, 2시간에 걸친 논의 끝에 배포된 회의 결과는 ‘대책은 앞으로 수립하겠다’였다. 대신 대책이 세워지기 전 국민들의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전기차 배터리 제조사를 자발적으로 공개하도록 권고’하고 ‘스프링클러 등 소방 시설 긴급 점검’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전기차 배터리 제조사는 권고하지 않아도 이미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공개하는 분위기인 데다 스프링클러 등 소방시설 역시 감식 과정에서 문제시된 얘기였다. 업계에서도 정부의 전기차 화재 예방 대책에 아쉽다는 의견이 대다수다. 제조사가 배터리 공급처를 공개한다고 해서 전기차 화재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게다가 중국산 배터리를 탑재한 차에서 이번엔 화재가 났지만, 국산 배터리를 탑재한 전기차라고 해서 화재가 안 난다는 보장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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