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포럼] 논란 키우는 일본의 새 이민법
일본, 외국인 노동자 공식 인정하면서도 영주권 조건은 강화
3단계 선발 과정 통과해도 세금·연금 미납 시 영주권 철회 가능
노동력 부족과 외국인 노동자 증가 우려 간 '부자연스러운 절충'
[동아시아포럼] 섹션은 EAST ASIA FORUM에서 전하는 동아시아 정책 동향을 담았습니다. EAST ASIA FORUM은 오스트레일리아 국립대학교(Australia National University) 크로퍼드 공공정책대학(Crawford School of Public Policy) 산하의 공공정책과 관련된 정치, 경제, 비즈니스, 법률, 안보, 국제관계에 대한 연구·분석 플랫폼입니다. 저희 폴리시 이코노미(Policy Economy)와 영어 원문 공개 조건으로 콘텐츠 제휴가 진행 중입니다.
올해 개정된 일본 이민법이 혼란과 모순을 가중시키고 있다는 주장이 거세다. 새 이민법이 과거 이민법의 모호성을 보완하고 외국인 노동자를 공식 인정하자는 취지로 도입됐음에도 이민자들의 영주권 자격 부여에 더 엄격한 기준을 적용한 데다 정부가 부과한 조건을 만족시키지 못할 경우 영주권 취소가 가능하도록 돼 있기 때문이다. 노동인구 감소 문제와 외국인 노동자 증가로 인한 부담 사이에 놓인 일본 정부의 고민이 드러나는 사례다.
외국인 노동자 공식 인정하되 영주권 자격 및 관리는 대폭 강화
일본 정부가 올해 6월 승인한 ‘출입국 관리 및 난민 인정법’(Immigration Control and Refugee Recognition Act, 이하 이민법)’ 개정안은 논란이 돼 온 ‘기술 실습생 제도’(Technical Intern Training Program)를 새 프로그램으로 대체하기 위해 도입됐다. 집권 여당인 자민당과 공명당 연합은 물론 야당까지 초당적 의견 일치로 승인한 새로운 ‘직업 훈련 프로그램’(Training Work Program)은 외국인 노동자 제도를 보다 공식화하고 투명하게 관리하겠다는 목적이었다.
그러나 개정안은 세금 및 사회보험료를 납부하지 않거나 범죄로 기소됐다는 이유로 영주권을 철회할 수 있도록 하는 등 한층 강력한 통제 조항을 담고 있어 더 큰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인권 단체들은 직업 훈련 프로그램 자체를 강력히 반대하지는 않지만 영주권 박탈 조항을 문제 삼아 국회 앞 연좌시위에 나서기도 했다.
노동력 부족 해결 위한 이민법 개정, 극우파 반대 부딪쳐
1990년 이민법 제정 이후 일본 정부는 이민 문제에 관해 모호하고 이중적인 태도로 일관해 왔다. 공식적으로는 비숙련 외국인 노동자 입국을 허가하지 않으면서도 일본인 이민자 후손인 ‘니케이진’(Nikkeijin)과 ‘기술 실습생’의 육체노동은 허락한 것이다. 이들은 모두 일본 내 가족 방문 및 직업 훈련 목적의 비노동 이주 인력으로 구분됐다.
2010년대 들어 노동력 부족 사태가 심화하면서 자민당 정부는 2018년 새 이민법을 통해 비숙련 외국인 노동자를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규제 완화 방향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숙련 노동자를 제외한 외국인 이주 및 난민 인정 자체를 거부하는 목소리를 내 온 자민당 내 극우파는 ‘블루칼라’ 노동자들에게도 영주권 인정 가능성을 높이는 이민법을 반대하고 나섰다.
고 아베 신조(Abe Shinzo) 전 총리 역시 당시 일본 정부가 전면적이고 적극적인 이민 정책을 추진할 의사가 없으며 영주권 또한 입국 시 부여가 아닌 점진적이고 단계적인 스크리닝을 거치겠다고 했지만, 극우파 정치인들은 아예 비숙련 노동자에 대한 영주권 부여 자체를 거부했고 반대도 계속 이어졌다.
영주권 취소 조건, 한국·대만과 비교해도 지나치게 엄격
결국 일본 정부는 올해 들어 외국인 노동자 이민을 공식적으로 인정하면서도 입국한 해외 인력에 대한 영주권 자격 부여 조건은 한층 강화하는 모순적인 개정안을 도입했다.
강화된 규정은 3단계의 영주권자 선발 과정을 포함하는데 3년간의 ‘직업 훈련 프로그램’ 기간 내에 첫 번째 시험을 통과해야 하고, 5년간의 ‘1단계 지정 기술 인력 프로그램’(Specified Skilled Workers 1) 중 두 번째 시험을 거쳐, 다시 5년간의 ‘2단계 지정 기술 인력 프로그램’(Specified Skilled Workers 2)을 끝내야 영주권 취득 자격이 주어진다.
또한 영주권이 주어져도 세금이나 사회 보험료를 상습적으로 미납하거나 범죄로 징역형을 선고받는 경우 철회될 수 있다. 이러한 규정은 한국, 대만 등 다른 동아시아 국가들에 비해서도 지나치게 엄격하다고 볼 수 있는데 범죄의 경우 한국은 징역 2년 이상, 대만은 1년 이상으로 명확한 기준을 두고 있고, 양국 모두 세금 및 연금 미납으로 영주권을 취소하는 일도 없기 때문이다.
노동력 문제 해결과 외국인 노동자 증가 우려 사이 절충안
이 같은 모순적인 정책 수립의 책임은 전적으로 자민당 내부에 있다. 올해 개정안을 도입하며 영주권 자격 강화 조항을 급하게 덧붙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당내에서 오랜 시간 고민한 결과임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외국인 수용과 공존을 위한 종합 대책’(Comprehensive Measures for Acceptance and Coexistence of Foreign Nationals)이라는 2022년 내각 문서를 보면 ‘법적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는 영주권자에 대한 법적 대응 장치의 필요성’이 명시돼 있다. 일본 정부가 ‘1단계 지정 기술 인력 프로그램’ 참가자들이 영주권 취득을 위한 다음 단계로 이행할 수 있는 시간을 2년 앞두고 관련 조항 준비를 시작한 사실로도 자민당의 의도를 파악할 수 있다.
이번 개정 이민법이 드러내는 것은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자민당의 뿌리 깊고 한결같은 입장이라고 할 수 있다. 한 자민당 국회의원의 “늘어나는 영주권자가 모두 선량한 사람들은 아니므로 더욱 강력히 통제해야 하며 영주권 취득 기회가 넓어질수록 당국의 취소 권한도 뒤따라야 한다”는 발언이 모든 것을 말해 준다. 결국 이민을 늘려 노동력 부족을 해결해야 할 필요성과 늘어나는 외국인 노동자로 인한 사회 통합 및 치안 우려 사이에서 고민해 온 자민당 지도부가 부자연스러운 절충안을 택한 것으로 판단된다.
원문의 저자는 나오토 히구치(Naoto Higuchi) 와세다대(Waseda University) 교수, 나나코 이나바(Nanako Inaba) 소피아대(Sophia University) 교수, 사치 타카야(Sachi Takaya) 도쿄대(University of Tokyo) 부교수입니다. 영어 원문은 Japan’s paradoxical migration policy | EAST ASIA FORUM에 게재돼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