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포럼] 난자 동결로 출산율 제고 시도한 일본, 효과는 미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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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도, 출산율 제고 정책 일환으로 난자 동결 보조금 확대
여성의 출산 자율권 보장보단 전통적 가족 부활시키려는 의도 커
현실적 제약 등으로 냉동 난자 활용률도 감소

[동아시아포럼] 섹션은 EAST ASIA FORUM에서 전하는 동아시아 정책 동향을 담았습니다. EAST ASIA FORUM은 오스트레일리아 국립대학교(Australia National University) 크로퍼드 공공정책대학(Crawford School of Public Policy) 산하의 공공정책과 관련된 정치, 경제, 비즈니스, 법률, 안보, 국제관계에 대한 연구·분석 플랫폼입니다. 저희 폴리시 이코노미(Policy Economy)와 영어 원문 공개 조건으로 콘텐츠 제휴가 진행 중입니다.


일본의 출산율이 사정없이 추락하고 있다. 지난해엔 1.2명을 기록하며 역대 최저치를 경신했다. 이에 도쿄도는 선택적 난자 동결(Elective egg freezing, EEF)에 보조금을 지급하기 시작했다. 다만 이는 출산과 양육에 대한 여성의 자율권을 보장하려는 취지와는 다소 거리가 있다. 대신 양육이 점점 더 어려워지는 상황에서 전통적인 형태의 가족을 계속해서 만들어내려는 시도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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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동아시아포럼

난자 동결 보조금 프로그램에 신청자 대거 몰려

지난 2020년 도쿄도가 EEF 정책을 처음 개시하자 시민들의 관심은 폭증했다. 이에 지난 3월 도쿄도 의회에선 보조금을 확대하는 방안이 통과돼 4월부터 시행되고 있다. 일본에서 난자를 냉동하려면 평균 30만~60만 엔(약 270만~550만원)이 들며, 보통은 자비로 이를 지불한다. 이렇다 보니 이번에 확대된 보조금 정책엔 당초 예상했던 신청자 수 300명을 훨씬 넘어선 7,000명이 몰렸다.

다만 시술의 효과에 대해선 의문이 적지 않다. 난자 동결 시술을 받더라도 추후 실제로 냉동된 난자를 사용하는 여성은 많지 않아서다. 일례로 일본 치바현 우라야스시에선 난자 냉동 시술을 받는 여성에게 보조금을 직접 지급하지 않고 시가 자금을 댄 주네텐도 우라야스 병원에서 여성들이 시술을 받게 했다. 그런데 우라야스시가 해당병원에서 실시된 8년간의 난자 냉동 시술 결과를 조사한 바에 따르면 여성들의 높은 참여율에도 불구하고 냉동 난자 활용률은 15%에 그쳤고, 수정 및 이식을 위해 해동된 난자별 출산율도 21% 수준이었다. 일본의 출산율이 날로 감소하는 가운데 이 같은 보조 생식 기술이 출산율을 극적으로 끌어올리진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여기엔 일본에서 냉동 난자 활용에 대한 조건이 까다로운 탓도 있다. 여성이 냉동해 둔 난자를 쓰려면 법적 배우자의 서면 동의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이 때문에 미혼 여성과 성 소수자들은 난자를 냉동해 놔도 사실상 쓸 수 없다. 보조금이 난자 냉동과 관련된 모든 절차를 커버하지 못한다는 점도 문제다. 난자를 동결하기 전 여성들은 체내 남아있는 난자의 개수를 추정하는 이른바 ‘난소 나이 검사’ 항뮬러호르몬(AMH) 테스트를 받는데, 도쿄도의 경우 올해 보조금을 확대하기 전엔 이 검사에 대한 횟수 제한이 있었다.

사실 일본 산부인과학회에선 여성들에게 EEF를 그다지 권장하진 않는다. 그러나 정부가 보조금 정책을 시행하면서 난자 냉동에 대한 수요가 훌쩍 늘었다. 평균 출산 연령이 계속 뛰고 있는 데다 고등교육을 받고 커리어를 이어 나가려는 여성들 역시 많아지고 있고, 혼인율 또한 줄어든 게 이 같은 상황에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일본에선 나이가 많은 여성이 아이를 낳는 데 대한 문화적·경제적 장애물이 여전히 산재해 있다. 게다가 나이가 많을수록 임신 가능성이 줄어드는 만큼 고령 여성이 출산에 성공하려면 여러 차례의 시술과 다양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또 일부 나라에선 여성의 난자 채취가 어려운 경우 공여 난자나 배아 기증을 활용해 임신을 시도하기도 했지만, 일본에선 아직 이를 허용하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일본 여성들 사이에선 나이가 더 들기 전 생식 능력을 보존해 놔야 한다는 압박이 크다.

난자 동결 지원책, 전통적 성 역할 강화 목적이 더 커

비슷한 관점에서 일본에선 이 같은 보조 생식 기술 사용이 단순히 여성들의 자의적 선택이 아니라 사회적 억압에 따른 결정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일본 내 전통적인 성 역할과 가족 규범에 대한 인식이 아직 뚜렷한 탓이다. 난자 동결에 대한 대중들의 시각도 이런 인식의 영향을 받아 남녀 간 생물학적 역할에 대한 구분을 강조하고 있다. 난자 동결이 여성들로 하여금 ‘때가 되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야 한다’는 압박에서 해방되게끔 하는 수단이 아니라, 여성이 전통적 어머니 역할을 다시 맡게 하는 방법으로 여겨지고 있는 것이다. EEF를 권장하는 목소리들 사이에 페미니즘 담론이 등장하지 않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일본 사회 내 팽배한 전통적 가족 관계에 대한 인식은 일본 산부인과학회에서 규정하는 ‘가족’의 개념과도 일치한다. 이는 일본 의료진들의 보조 생식 기술에 대한 이해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 지난해 3월 기시다 후미오(Kishida Fumio) 일본 총리는 기자회견을 열고 저출산 정책에 대한 접근 방식을 완전히 바꿔 ‘어린이 우선 사회’를 만들겠다고 선포했다. EEF 정책 확대는 이 같은 정부 지침의 일환이었다. 그러나 EEF 보조금 지급이 효율적이지 않다는 사실이 점점 더 많은 통계를 통해 드러나고 있다. 물론 보조금은 난임을 겪고 있는 여성들에게 출산에 대한 선택권을 부여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정책이 실제로 출산율을 반등시키고 여성을 해방시켜 성평등을 촉진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주장은 현실과 거리가 있어 보인다.

원문의 저자는 아니카 피터슨(Annika Peterson) 대만 타이베이 국립청치대(National Chengchi University) 아시아태평양학 국제 석사 과정 졸업생입니다. 영어 원문은 Japan puts all its eggs in one basket to combat fertility crisis | East Asia Forum에 게재돼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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