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웨스팅하우스 “한수원 원전 수주 안 돼” 체코 반독점당국에 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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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스팅하우스 "한전, 우리 기술 활용, 수주 권리 없어"
미국 ‘경합주’ 일자리까지 언급하며 한수원 압박
"한국 약진 견제 및 신시장 단속 위한 압박"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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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수원의 체코 원전 수출을 문제 삼은 웨스팅하우스의 보도자료/출처=웨스팅하우스 홈페이지

사상 최대 원전 수주로 주목받는 24조원 규모의 체코 원전 수출이 미국에 의해 발목 잡힐 위기에 처했다. 미국 원전기업 웨스팅하우스(Westinghouse)가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의 체코 원전 건설 사업 수주에 문제가 있다며 체코 반독점당국의 개입을 요구하고 나서면서다. 한수원은 원전 기술 등에 적법한 권리를 보유하고 있지 않은 만큼, 한수원이 주축이 된 팀코리아의 원전 수주도 인정할 수 없다는 논리다.

미국 원전기업, 체코에 한수원 원전 수주 항의

웨스팅하우스는 26일(현지 시각) 체코전력공사(CEZ)가 한국수력원자력을 두코바니(Dukovany) 신규 원전 2기 건설 사업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한 결정에 항의하기 위해 체코 반독점사무소에 진정(appeal)을 냈다고 밝혔다. 웨스팅하우스는 원전 입찰에 참여하는 사업자는 CEZ와 현지 공급업체에 제공하려는 원전 기술을 체코 측에 이전하고 2차 라이선스(특허 허가권)를 제공할 권리를 보유하고 있다는 걸 증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한수원의 APR1000과 APR1400 원자로 설계는 웨스팅하우스가 특허권을 보유한 2세대 시스템80 기술을 활용하고 있다고 부연했다.

이어 한수원이 APR1000과 APR1400 원자로의 원천 기술을 소유하고 있지 않으며, 웨스팅하우스의 허락 없이 해당 기술을 제3자가 사용하게 할 권리를 보유하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웨스팅하우스만 자사 기술을 수출하는 데 필요한 미국 정부의 승인을 구할 법적 권리가 있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웨스팅하우스는 CEZ가 한국 원전을 도입하는 것은 체코와 미국의 일자리를 한국에 넘겨주는 꼴이라고 역설하기도 했다. 웨스팅하우스는 “AP1000 원자로 대신 APR1000 원자로를 채택하는 것은 미국 기술을 불법적으로 사용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웨스팅하우스 고향인 펜실베이니아주 일자리 1만5,000개를 포함해 체코와 미국 청정에너지 일자리 수만 개를 한국에 수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펜실베이니아는 오는 11월로 예정된 미국 대통령 선거의 승패를 좌우할 경합주로, 민주당과 공화당 모두 러스트벨트의 일자리 문제에 예민한 상황인 만큼 정치권을 자극하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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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코 테멜린 원전/사진=한국수력원자력

한수원 “국내 독자적 개발” 정면 반박

이에 한수원 측은 우리나라 원전 기술이 걸음마를 뗐던 1980년대 미국 기술에 의존했던 때와 달리 독자적인 기술개발에 성공한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고 반박한다. 웨스팅하우스는 지금은 폐쇄된 한국의 첫 원전인 고리 1호기 시공에 참여한 회사로, 한국 원전 기술의 뿌리인 것은 맞지만 그 이후 한국 원전은 수십년에 걸쳐 국산화를 이뤘고, 이를 바탕으로 한국형 원전 APR-1000을 체코에 수출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원전 기술 자립에 나선 한전은 지난 1987년 한빛(옛 영광) 3·4호기 건설을 추진하면서 미국 원전 회사인 CE와 기술 도입 계약을 맺었다. 10년 계약이 끝난 1997년에는 유럽의 다국적 회사인 ABB에 CE가 인수되면서 이름을 바꾼 ABB-CE와 기술사용협정을 맺고 한국형 원전(APR-1400) 개발을 위한 기반을 마련했다. 협정이 만료된 2007년부터는 국내 원전 업체들과 3대 핵심 기술을 비롯한 원전 기술 개발에 나섰고, MMIS는 2010년, RCP는 2012년, 원전설계핵심코드는 2017년 국산화에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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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스팅하우스의 AP300 소형 모듈식 원자로/사진=웨스팅하우스

웨스팅하우스의 몽니, 그 이유는?

전문가들은 웨스팅하우스의 행보에 대해 한수원과의 법정 분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해 압박을 강화하는 것이라 보고 있다. 앞서 웨스팅하우스는 한국형 원전이 자사의 원천기술을 침해하고 있다며 2022년부터 한수원을 상대로 소송전을 벌이고 있다. 미국 원자력에너지법에 따른 수출통제 대상인 자사 기술이 한국형 원전에 적용됐다는 주장이다. 해당 소송은 1심에서 각하 판결을 받았고, 웨스팅하우스는 항소한 상태다. 이와 별개로 양사는 대한상사중재원에서 국제 중재 절차도 밟고 있다.

그런데 한수원이 내년 3월까지 체코 원전 수주 최종 계약을 맺으려면 이전에 미국 정부에 체코 원전 수출을 신고하는 절차가 남아 있다. 웨스팅하우스와의 지적재산권 분쟁은 이미 공론화된 상황으로, 체코 정부도 이를 인지하고 있었던 만큼 이번 계약 건에 있어 돌발 악재가 될 가능성은 작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지만, 원천 기술을 가진 웨스팅하우스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점에서 원만한 협의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사업에 일부 차질을 빚을 수도 있다.

업계 일각에서는 국내 원전 업계가 연달아 원전 수주전에서 웨스팅하우스를 압도하자 압박 강도를 높이고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웨스팅하우스는 여전히 원천 기술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지만 1979년 이후 30여 년간 자국 내 원전 건설이 중단돼 신규 원전 공급 능력은 크게 약화한 상태다. 이에 전성기였던 1970년대 후반 5만5,000명에 이르던 직원은 현재 당시의 6분의 1에도 못 미치는 9,000명 수준으로 쪼그라들었고, 주요 사업 영역도 대폭 축소됐다. 이번 체코 원전 수주전에 웨스팅하우스 역시 자사의 AP1000 원자로를 갖고 한수원 및 프랑스전력공사(EDF)와 경쟁했지만 올해 1월 일찌감치 중도 탈락했다.

일부 전문가는 글로벌 원전 신시장 개화를 앞두고 우리나라를 견제하려는 의도란 지적도 나온다. 전 세계 원전 설비 규모가 2050년 2배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이미 아랍에미리트(UAE)에서 원전을 성공적으로 건설한 한국이 체코를 시작으로 중동과 유럽까지 석권하는 결과를 우려한다는 것이다. 한 원전 업계 관계자는 “이번 일을 쉽게 넘어가면 앞으로 중동 등 신시장 개척 때도 제대로 몫을 챙기기 어렵다는 웨스팅하우스의 셈법이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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