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 승소율 90.7%인데 주요 소송은 잇달아 패소, 지난해 지급한 환급가산금만 10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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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위 과징금 소송 줄패소, 과징금 처분 소송 패소 비율 10.4%
주요 사건서 체면 구긴 공정위, 쿠팡·SPC·SK 등과의 소송전 모두 패소
규제 범위 두고 엇갈리는 시선, "제재한 구체화 등 실효성 제고 방안 마련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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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거래위원회가 기업에 과징금을 부과했다가 패소하면서 지급한 환급가산금이 1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공정위의 승소율이 높아지고 있지만 중대한 사건에 대해선 제대로 된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탓이다. 환급가산금은 온전히 세금으로 충당되는 만큼 공정위가 과도한 제재로 혈세를 낭비하고 있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공정위 차원에서 과징금 산정 기준을 명확히 하는 등 부수적인 노력이 필요하단 목소리가 쏟아진다.

패색 짙은 공정위, ‘무리한 제재’로 혈세 낭비

30일 국회 정무위원회 예비심사검토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공정위가 기업에 지급한 환급가산금은 총 9억7,572만원에 달한다. 지난해 과징금 대상 18건 중 12건(66%)의 과징금을 규정보다 늦게 지급한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18건의 과징금 환급 조치 완료까지는 평균 13.8일이 소요됐다. 정부가 과징금을 환급할 땐 기업이 돈을 납부한 시점부터 반환 시점까지의 이자를 연 3.5%의 환급가산금으로 지불해야 하며, 판결문 접수일로부터 8 근무일 내에 과징금 환급 조치를 완료해야 한다.

이에 일각에선 공정위가 ‘무리한 제재’를 가하면서 국고만 소모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공정위에 따르면 과징금 처분에 대한 소송에서 공정위가 패소한 비율은 지난해 10.4%(소송 확정 연도 기준)로 집계됐다. 전년 대비 1.5%p 오른 수준이다. 공정위의 처분을 일부 취소하라는 판결 비율(일부 패소율)도 지난해 19.5%에 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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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소율 오르지만 ‘중대 사건’은 잇달아 패소

다만 당장의 패소율만 두고 공정위를 힐난하는 건 옳지 않단 지적도 있다. 공정위 측의 승소율 자체는 과거보다 높아지고 있어서다. 실제 지난 2000년부터 2003년까지 공정위의 승소율은 70%가량이었으나, 올해 상반기엔 확정판결 기준 소송 43건 중 36건에서 승소해 83.7%의 승소율을 기록했다. 여기에 일부 승소까지 포함하면 승소율이 90.7%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과징금 기준 승소 금액 역시 99.2%에 달했다. 공정위 처분이 확정된 1,325억2,200만원 중 승소 금액은 1,314억100만원이다. 과징금 소송에서 패소한 4건은 시정명령만 부과했던 사건으로, 법원 판결로 인한 과징금 환급이 없었다. 패소한 과징금액은 11억2,100만원 정도다. 공정위로선 성과를 내고 있었던 셈이다.

문제는 정작 중요한 사건들에 대해선 패색이 짙단 점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SPC와의 소송전이다. 앞서 지난 2020년 공정위는 SPC그룹이 총수 일가의 주도 아래 2011년부터 2019년까지 삼립에 414억원 상당의 이익을 몰아주는 등 계열사를 부당 지원했다며 647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과징금 산정 방식이 잘못됐다며 취소해야 한다는 서울고법의 판단을 확정, 이에 따라 공정위는 과징금 647억원을 전체 환급한 후 재산정해 재부과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쿠팡이 공정위를 상대로 제기한 시정명령 등 취소 청구 소송도 공정위 패소로 마무리됐다. 공정위는 쿠팡이 2017년부터 2020년 9월까지 LG생활건강 등 101개 납품업자에 경쟁 온라인몰의 판매 가격을 올리라고 요구하는 등 ‘갑질’을 일삼았다고 지적했다. 이에 시정명령과 함께 32억9,7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했지만, 재판부는 쿠팡의 손을 들어줬다. 당시 신생 기업이던 쿠팡이 대기업인 납품업자들에 비해 우월적 지위를 갖고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SK그룹 최태원 회장 등이 공정위의 ‘SK실트론(옛 LG실트론) 사익편취 의혹’ 제재에 불복해 낸 소송 역시 비슷한 양상이었다. SK는 2017년 1월 반도체 웨이퍼 생산 회사인 LG실트론 지분 51%를 인수한 뒤 그해 4월 잔여 지분 49% 가운데 19.6%만 추가 매입한 뒤 나머지 29.4%를 최 회장 명의로 사들인 바 있다. 이때 공정위는 최 회장의 SK실트론 지분 인수가 지주회사인 SK의 사업 기회를 가로챈 것이라고 보고 2021년 1월 최 화장과 SK에 8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이에 최 회장 측은 “SK가 잔여 지분을 추가로 인수하지 않은 것을 ‘사업 기회 제공’으로 단정하기는 어렵다”며 불복 소송을 제기, 법원은 최 회장에 승소 판결을 내렸다.

이외 지멘스, 현대엘앤씨 등과의 소송에서도 공정위의 패소가 이어졌다. 지멘스의 경우 전기에 소프트웨어 비용을 별도로 청구한 건 거래상 우월적 지위를 이용한 것이라며 과징금 4억8,000만원을 부과했으나 법원은 “단순히 계약서에 관련 규정이 있는지 여부에 따라 거래상 지위 남용 성립 여부를 판단할 수는 없다”며 지멘스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현대엘앤씨는 카탈로그를 통해 자사가 제조·판매하는 1등급 및 단열 창호 제품 홍보가 과장됐다며 1,140억원의 과징금을 부과받았지만 법원이 공정위의 과징금 산정 방식에 오류가 있다며 과징금 납부명령 전제를 취소, 결국 공정위는 과징금을 축소했다가 이마저도 모두 환급해야만 했다. 시장 관계자들 사이에서 공정위의 제재 기준을 신뢰하기 어렵게 됐단 의견이 나오는 이유다.

과징금 산정 기준 등 구체화해야

물론 공정위가 큰 사건에서 줄줄이 패소하기만 한 건 아니다. 구글과의 소송에선 공정위가 승기를 잡았다. 앞서 지난 2021년 공정위는 구글이 스마트 기기 제조사들을 상대로 안드로이드 운영체제(OS) 탑재를 강제해 공정거래법상 시장지배적 지위를 남용했다고 판단했다. 사건의 핵심은 구글이 기기 제조사와 맺은 ‘파편화금지계약’이었다. 구글은 기기 제조사가 안드로이드 소스 코드를 변형한 OS인 ‘안드로이드 포크’를 탑재하지 못하게 했다. 이에 공정위는 2022년 2,249억원의 과징금을 구글에 부과했다.

법원은 공정위의 손을 들어줬다. 서울고법 행정6-3부(재판장 홍성욱)는 “공정위의 처분은 적법하다”며 “스마트 기기 제조사에 대해 거래상 우월적 지위에 있는 구글의 행위로 인해 기기 제조사의 스마트 기기 출시가 제한되고 구글 경쟁사와의 거래가 제한되는 등의 불이익이 강제됐다”고 적시했다. 공정위가 무리한 제재만을 강행하는 건 아니라는 방증이다.

결국 현시점 공정위에 필요한 건 과징금 산정 기준을 보다 명확히 규정하는 것이다. 최근 들어 부당 지원과 사익 편취의 방식이 다변화하면서 공정위가 거래 규모나 관련 매출을 파악하기가 어려운 사건이 늘고 있다. 특히 ‘사업 기회 제공’이나 ‘향후 발생 이득’ 같은 수치화하기 힘든 요소가 포함되는 경우 정확한 지원 규모를 산정하는 게 불가능에 가깝다. 이에 공정거래법은 거래 규모를 파악하기 어려운 경우 최대 40억원을 정액 과징금으로 부과하도록 명시하고 있지만, 제재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이 꾸준히 나왔다. 거대 규모의 사건을 대할 때도 규정상 ‘솜방망이 처벌’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펼쳐질 수 있단 것이다.

시장과 법조계의 시선이 엇갈리고 있단 점도 해결해야 할 과제다. 앞선 SK실트론 사건에서 공정위가 8억원의 과징금을 산정한 데 시장 관계자들은 비판을 쏟아낸 바 있다. 처벌 수위가 지나치게 약하단 이유에서였다. 그런데 재판부는 오히려 8억원의 과징금조차 부당하다며 모두 취소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과징금 산정에 대한 법적 근거가 그만큼 미비한 상황이란 의미다. 보다 실효성 있는 제재가 이뤄질 수 있도록 구체적인 제재안을 규정하고 법적 근거 마련에 주력해 나갈 필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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