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포럼] 요소수 대란이 한국에 남긴 것
요소수 대란 이후 공급망 다각화 필요성에 대한 인식 부쩍 커져
대중국 의존도 낮추는 게 핵심이지만 현실적으로는 장벽 높은 상황
한국 정부, 법적 및 제도적 보완 통해 장기적 대책 마련하는 중
[동아시아포럼] 섹션은 EAST ASIA FORUM에서 전하는 동아시아 정책 동향을 담았습니다. EAST ASIA FORUM은 오스트레일리아 국립대학교(Australia National University) 크로퍼드 공공정책대학(Crawford School of Public Policy) 산하의 공공정책과 관련된 정치, 경제, 비즈니스, 법률, 안보, 국제관계에 대한 연구·분석 플랫폼입니다. 저희 폴리시 이코노미(Policy Economy)와 영어 원문 공개 조건으로 콘텐츠 제휴가 진행 중입니다.
몇 해 전 한국을 뒤흔든 ‘요소수 대란’ 이후 공급망 안정화에 대한 각계의 움직임에 부쩍 속도가 붙고 있다. 국회에선 각종 관련법이 통과되는가 하면 기획재정부를 중심으로 공급망 문제의 콘트롤타워 역할을 할 위원회도 설치됐다. 이런 가운데 범국가적 협력체의 중요성도 부상하고 있다.
요소수 대란 이후 중국 의존도에 대한 위기의식 커져
지난 2021년 한국은 농업 비료 및 경유차 운행에 필수적인 요소수의 품귀 현상으로 홍역을 치룬 바 있다. 중국이 자국 내 공급 문제로 원자재 요소 수출을 중단하면서 벌어진 일이었다. 요소수를 사려는 트럭들이 긴 줄을 섰고, 주유소마다 재고 부족으로 몸살을 앓았다. 이에 한국 정부가 요소 수입선 다변화 정책을 펼치면서 2021년 83.4%였던 중국산 요소 의존 비중은 2022년 71.7% 까지 낮아졌다. 그러나 지난해 다시 90%로 올랐다. 작년 9월 중국이 통관을 통과한 수출품에 대해서도 선적을 막는 일이 벌어지면서다. 이는 언제든 중국의 수출 중단 및 금지 조치가 시행될 수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이 사건 이후로 한국에선 경제의 핵심 요소인 공급망을 안정시키기 위한 장기적 계획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정부와 기업, 국민 사이에 생겨났다. 국회에선 △경제안보를 위한 공급망 안정화 지원 기본법(공급망안정화법) △소재·부품·장비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특별조치법(소부장특별법) △국가자원안보에 관한 특별법(자원안보특별법) 등 핵심적인 산업 요소들의 공급을 안정화하기 위한 법안들이 줄줄이 통과됐다.
이 중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공급망안정화위원회’의 설립과 관련 활동에 대한 예산 지원이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이끄는 위원회는 관련 부처들의 아이디어와 수요를 취합하고 나누는 콘트롤타워 역할을 하는 곳으로 정부와 민간이 공동으로 참여한다. 기존엔 산업통상자원부가 각 사안에 개별적으로 대응한 탓에 늘 미봉책이라는 지적이 많았다.
한국 정부, 공급망 안정화 위해 최대 10조원 규모 펀드 조성
공급망안정화법은 지난 6월 발효됐다. 같은 달 말엔 1차 위원회 회의가 열렸는데, 이 자리에선 경제 안보 품목에 대한 구체적인 지정과 관련된 논의가 진행됐다. 공급망안정화법은 경제 안보 품목의 생산과 공급에 기여하는 기업들을 지원하고 육성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한국 정부는 이와 더불어 공급망 안정화 펀드도 만들었는데, 한국수출입은행이 관리하는 이 펀드엔 5조~10조원이 투입됐다. 이는 수입처를 다각화하고 대체 기술을 개발하는가 하면 리쇼어링(해외 진출 기업의 국내 복귀)도 지원하는 데 쓰일 예정이다.
물론 이들 정책은 모두 비용이 많이 든다. 일례로 한국 기업들은 요소수 대란 이후 대중국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베트남으로 새롭게 눈을 돌렸으나, 베트남산 제품들은 중국의 가격 경쟁력에 대응할 수 없었다. 요소를 국내에서 생산하는 것 또한 수입보다 더 많은 비용이 드는 일이었다. 공급망 다각화와 생산 공정의 국내화가 어지간한 규모의 공적 자금 없이는 어려운 이유다. 이번 공급망안정화법의 주 목표는 기업들이 비용 문제로 수입처 다각화를 하지 못하는 핵심 품목들의 조달 및 생산을 지원하는 것이다.
일본, EU 등은 일찌감치 관련법 마련
한국 정부의 이 같은 노력은 일본이나 유럽연합(EU) 등에 비하면 다소 늦은 편이다. 일본과 EU는 주요 광물과 자원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해 일찌감치 정부가 나서서 지원책을 내놓은 상황이다. 일본은 공급망 안정화 및 자국 내 생산 시설 확보과 관련된 법적 지원을 위해 지난 2022년 경제안정촉진법을 제정했으며 EU와 미국에서도 이 같은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단 공급망의 회복력을 끌어올리려면 여전히 국제적인 협력이 필수다.
이런 가운데 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IPEF)가 협력의 중심지로 부상하고 있다. 한국은 IPEF 회원국들과 손잡고 수입처 다각화 방안에 대한 공동 연구 개발 등을 추진해 협력체의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 최근 한국이 제정한 위 법안들은 IPEF의 목적과도 맥이 닿아 있다. 공급망에 문제가 발생했을 경우 IPEF의 위기 대응 네트워크를 통해 집단적인 조치를 취할 수도 있다.
현재 한국은 자원안보특별법을 통해 주요 광물 목록을 만들고 관련된 공급망을 다각화하려 하고 있다. 특정 광물 등에 의존하는 산업 분야에서 공급망을 여러 갈래로 뚫으려면 타국과의 공동 투자는 필수인 만큼 한국은 호주, 싱가포르 같은 IPEF 회원국들과 정보를 공유하며 협력체 내 공동 투자 기회를 찾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원문의 저자는 여유경 경희대(Kyung Hee University) 교수입니다. 영어 원문은 Urea crisis sparks South Korean supply chain revamp | East Asia Forum에 게재돼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