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 공적연금, ‘고령화 쇼크’에 3년 후 지출액 100조원 돌파
내년 국민연금 등 4대 공적연금 지출액 10% 확대
2024~2028년 공적연금 지출 연평균 '8.3%' 증가
공무원·군인연금 '적자 전환'에 혈세 10조원 투입
오는 2027년 국민연금·공무원연금·사학연금·군인연금 등 4대 공적연금의 지출액이 사상 처음으로 100조원을 돌파할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 이미 적자 전환한 공무원연금과 군인연금에 이어 내년에는 사학연금의 적자가 예상되는 등 적자가 심화하면서 올해 4대 공적연금에 투입하는 국가 재정이 11조에 이른다. 저출생 고령화로 인한 인구구조의 변화로 가입자는 줄고 수급자는 늘면서 공적연금의 재정건전성을 빠르게 악화시키고 있다는 분석이다.
4대 공적연금 중 국민연금 지출 증가 속도 가장 빨라
2일 기획재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2024~2028년 국가재정운용계획’에 따르면 국민연금·공무원연금·사학연금·군인연금 등 4대 공적연금의 의무 지출액이 오는 2027년 100조원을 돌파할 것으로 관측된다. 4대 공적연금의 지출액은 올해 77조6,384억원에서 내년 85조4,414억원, 2026년 93조9,166억원으로 꾸준히 증가해 2027년 101조852억원, 2028년 106조6,922억원을 기록하며 100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기재부는 추산했다. 연평균 증가율은 8.3%로 이 기간 정부의 연평균 재정지출 증가율 3.6%보다 두 배 이상 높다.
4대 공적연금 중 지출 증가 속도가 가장 가파른 것은 국민연금이다. 국민연금 지출액은 올해 43조3,729억원을 기록한 뒤 2027년 60조원을 돌파하고 2028년에는 64조1,464억원으로 증가할 전망이다. 이 기간 연평균 증가율은 10.3%이다. 공무원연금 지출액도 올해 24조8,878억원에서 2028년 30조7,763억원(연평균 5.5%)으로 증가하고, 같은 기간 사학연금은 5조3,369억원에서 6조9,940억원(연평균 6.8%)으로, 군인연금 지출액은 4조408억원에서 4조8,254억원(연평균 4.5%)으로 늘어날 것으로 추산됐다.
저출산 고령화로 연금 가입자보다 수급자가 빠른 속도로 늘며 공적연금의 재정건전성도 악화했다. 3대 직역연금 중 공무원연금은 1993년, 군인연금은 1973년에 이미 적자 전환했다. 이런 가운데 내년 공무원연금과 군인연금의 적자 규모는 각각 5조1,164억원, 3조5,279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특히 공무원연금은 2015년 보험료율을 높이는 등의 개혁을 했지만 개혁 이전의 가입자 은퇴가 이어지며 열악한 재정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그나마 사정이 나은 사학연금마저도 2029년에 적자가 예상되는 상황이다.
이에 정부는 세금을 투입해 이들 연금의 재정적자를 메우고 있다. 30년 넘게 적자의 늪에 빠진 공무원연금과 군인연금에 투입하는 국가 재정은 올해 10조8,908억원, 내년 10조240억원에 이어 2028년에는 12조9,155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사학연금은 올해 교원 등 가입자에 대한 국가부담분 등에 1조원, 국민연금은 국민연금공단 운영비 지원, 저소득층 보험료 지원 등에 111억원의 재정을 투입한다. 이렇게 4대 공적연금에 들어가는 국가 재정은 올해 11조462억원에서 2028년 14조441억원으로 증가할 전망이다.
국민·사학연금, 향후 20년 기점으로 적자 전환 전망
장기적으로는 국민연금과 사학연금의 재정이 나머지 두 연금에 비해 훨씬 더 악화할 것으로 점쳐진다. 2일 국민연금공단이 발표한 ‘국민연금과 특수직연금 비교 연구’에 따르면 국민연금과 사학연금은 단기간에는 증가하지만 향후 20년을 기점으로 급감해 적자에 빠질 것이란 분석이다. 지난해 1월 발표한 ‘제5차 국민연금 재정 계산’에서도 국민연금은 20년간 지출보다 수입이 많은 구조를 유지하다가 2040년 1,755조원으로 고점을 찍은 후 적자 전환해 2055년에는 적립 기금을 모두 소진한 채 47조원의 적자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아울러 제도 부양비 또한 같은 추세를 나타낼 것으로 전망된다. ‘제도 부양비’란 가입자 100명이 부양해야 할 수급자 수를 의미하는데 지난 2020년 국민연금과 사학연금의 제도 부양비는 각각 19.4명과 21.8명으로 공무원연금과 군인연금의 절반 수준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후 급격히 증가하면서 오는 2050년에는 공무원연금과 군인연금을 앞지르기 시작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저출산 고령화로 교원 등 가입자는 급감하고 수급자가 급증하면서 2070년 이후 사학연금의 제도 부양비는 4대 공적연금 중에서 압도적으로 높을 것으로 관측된다.
인구구조의 변화로 제도 부양비가 확대되면서 주요 재정지표 중 하나인 ‘부과방식 비용률’도 2050년 들어서는 △국민연금 22.5% △사학연금 26.5% △공무원연금 34.5% △군인연금 45.8%의 순으로 급증할 것으로 추정된다. ‘부과방식 비용률’은 기금 소진 이후 각 공적연금의 재정 상태를 파악할 수 있는 핵심 지표로, 현행 제도가 그대로 유지된다는 가정 아래 기금 고갈 뒤 미래 연금 급여 지출을 당해연도 보험료 수입으로만 충당할 때 필요한 보험료율을 의미한다.
이는 2050년 각 공적연금 가입자가 수급자에게 연금을 지급하기 위해선 소득의 최소 22.5%에서 최대 45.8%를 보험료로 내야 한다는 의미다. 전반적으로 공적연금의 미래 가입자가 부담해야 할 보험료율이 현재보다 2배 이상으로 높아지는 셈이다. 하지만 25%를 초과하는 부과방식 비용률은 사회적으로나 정책적으로 수용 가능성이 매우 낮다. 즉 현실적으로 국민에게 보험료 부담을 전가하는 데도 한계가 있기 때문에 보험료 인상 등의 개혁 조치 없이 공적연금이 고갈되면 결국 연금 체계 자체가 붕괴할 수밖에 없다.
정부, 모수 조정 등 담은 국민연금 개혁안 발표 예정
공적연금의 재정건전성에 대한 우려가 깊어지는 가운데 보건복지부는 오는 4일 국민연금 개혁안을 발표한다. ‘기금 소진 시점 30년 연장’을 목표로 재정 안정에 방점을 둔 개혁안이다. 앞서 지난달 29일 윤석열 대통령은 직접 연금 개혁 방향을 브리핑했다. 당시 윤 대통령은 세대 간 공정성과 지속가능성, 노후 소득 보장을 3대 원칙으로 모수 조정 외에도 자동 안정화 장치 도입, 보험료 인상 속도 차등화 등이 담길 예정이다. 또 국민연금뿐만 아니라 기초연금, 개인·퇴직연금 등 연금 체계 전반을 아우르는 개혁 조치가 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안에서 국민연금의 보험료율은 현행 9%에서 13~15%로 인상하는 방안이 유력하게 검토되고 있으며, 기금 투자 수익률도 4.5%에서 5.5%로 상향할 것으로 예상된다. 보건복지부 산하 재정계산위원회의 시나리오를 보면 보험료율이 15%, 기금 수익률이 5.5%로 높아지면 기금 소진 시점은 2055년에서 2084년으로 30년가량 늦춰진다. 여기에 가입자 감소, 평균수명 증가, 거시경제 요건에 따라 수령액이 달라지는 일본의 ‘거시경제 슬라이드’ 방식의 자동안정화 장치가 도입될 경우 소진 시점은 20년가량 추가로 늘어날 것으로 추산된다.
다만 연금의 소득 보장성을 강조하는 쪽에서는 정부의 연금개혁 방향에 반발하고 있다. 참여연대는 윤 대통령의 국정브리핑 이후 성명에서 “대통령이 밝힌 연금개혁안은 차등적으로 더 내고 모두가 덜 받는 개악”이라며 “노후 불안과 사회적 갈등·분열을 조장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앞서 참여연대는 지난 21대 국회 공론화위원회에서도 ‘더 내고 더 받는’ 연금 개혁을 추진해야 한다고 결정한 시민들의 요구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라며 재정이 우려되면 적극적으로 국고를 투입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일각에서는 국민연금 개혁과 함께 공무원연금, 군인연금 등 다른 직역연금도 손봐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매년 적자분을 메우기 위해 수조원의 국가 재정이 3대 직역연금에 들어가는 상황에서 보험료율 인상 등으로 국민연금 가입자에게만 부담을 키우는 조치는 명분이 서지 않는다는 것이다. 애초에 직역연금이 국민연금보다 유리한 구조로 설계된 만큼 국민연금과 직역연금을 통합해 형평성을 개선하자는 제안도 있지만 이미 직역연금 적자가 상당해 기금이 통합되면 오히려 국가 재정 부담이 더 늘어날 우려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