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질 사망에 이스라엘 70만 민중 대규모 시위, ‘강경 노선’ 네타냐후 총리 백기 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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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질 사망 사건에 성난 민심, 70만 시민·노동조합 등 합세한 대규모 시위 발생
하마스에 "협상 불가" 통보한 네타냐후 총리, 총리 비판 여론 확산
리쿠드당 내부서도 이견 노출, 갈란트 국방장관 "부상자 남겨 두는 건 도덕적 수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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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 무장 단체 하마스에 끌려간 이스라엘 인질 6명이 주검으로 돌아오면서 이스라엘 정부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시민 수십만 명이 거리로 뛰쳐나와 휴전 협상을 촉구하는 대규모 시위에 나서는가 하면 이스라엘 최대 노동조합은 총파업에 돌입하기도 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여전히 강경한 군사적 압박이 필요하단 입장을 견지하는 모양새지만, 일각에선 향후 네타냐후 총리가 노선을 선회할 가능성이 있단 의견이 나온다. 인질 사망 사건 이후 네타냐후 총리 책임론이 부상하면서 정치적 부담이 커지고 있어서다.

주검으로 돌아온 인질, 결국 들고 일어선 시민들

2일(현지 시각)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최근 예루살렘, 텔아비브 등 이스라엘 주요 도시에서 하마스와의 전쟁 발발 이후 최대 규모의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시위에 참여한 인원은 전국적으로 70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시위대는 정부에 인질 석방을 위한 휴전 협상에 적극적으로 임할 것을 촉구했다. 지난해 10월 하마스에 납치된 인질 6명이 가자지구에서 시신으로 발견된 게 도화선이 된 것으로 풀이된다.

전쟁에 방해가 되지 않기 위해 개전 이후 활동을 잠정 중단했던 이스라엘 노동자총연맹도 반정부 시위에 동참했다. 아르논 바르다비드 히스타드루트 위원장은 이스라엘 경제의 주요 부문인 금융, 보건·의료, 항공업계가 2일 하루 동안 총파업을 실시한다고 밝혔다. 히스타드루트는 참여 노조원이 80만 명인 이스라엘 최대 노조다.

국제 사회에서도 이스라엘의 휴전 협상 참여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확대되고 있다. 특히 미국의 압박이 거세다. 사망한 인질 중 한 명이 미국인으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이날 워싱턴포스트(WP)는 미국이 곧 가자 휴전과 관련해 하마스와 이스라엘 양측에 ‘받아들이거나 거절하거나 양자택일(take it or leave it)’의 최종 합의안을 제시할 계획이라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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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 노선 견지한 네타냐후 총리

그러나 네타냐후 총리는 여전히 강경한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군사 압박을 통해 사태를 해결할 것임을 거듭 피력한 것이다. 하마스에 대한 분노를 더욱 강조하면서 전쟁을 지속할 것임을 시사하기도 했다. 네타냐후 총리가 휴전 협상에 부정적인 인식을 드러낸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네타냐후 총리는 앞서 하마스와 이스라엘 대표단이 휴전 협상을 진행 중인 가운데에서도 국경지역 점령 필요성을 역설하며 휴전 협상을 사실상 거부했다.

지난 7월 네타냐후 총리는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남단 라파검문소를 방문한 뒤 주둔 군인들을 향해 “우리가 필라델피 회랑과 라파 검문소를 계속해서 점령하는 것이 필수적임을 이해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곳에서 하마스의 목을 겨냥해 가하고 있는 군사적 압박은 이미 그 첫 단계에 와있는 ‘최대 숫자의 인질 석방’을 포함한 우리의 정당한 요구에 대한 확고한 주장과 함께 인질 협상 진전에 도움을 주고 있다”고 강조했다. 성공적인 인질 협상에 필요불가결한 요소는 적극적인 군사 압박뿐이라는 인식을 드러낸 셈이다.

네타냐후 총리를 제외한 이스라엘 정부 인사들도 이와 같은 인식을 공유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타마르 벤그비르 국가안보부 장관은 7월 동예루살렘 알아크사 사원을 방문해 “신중하지 못한 거래나 항복 없이 인질들이 귀환할 수 있도록 기도하려고 이스라엘 국가와 국민에게 가장 중요한 이곳에 왔다”면서도 “(네타냐후) 총리가 굴복하지 않고 승리를 향해 나아갈 수 있도록 군사적 압력을 가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벤그비르 장관은 대표적인 극우 정치인 중 하나로, 이전에도 “네타냐후 총리가 휴전에 응할 경우 연립정부에서 탈퇴하겠다”며 극단적인 발언을 쏟아낸 전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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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사진=이스라엘 총리실

네타냐후 책임론 확산, 정치적 리스크 커졌다

다만 최근 전문가들 사이에선 향후 네타냐후 총리가 미국 등이 제시한 최종 협상안을 받아들이는 등 노선을 선회할 수 있다는 관측이 흘러나온다. 네타냐후 총리의 강경한 태도가 상황을 악화시켰단 인식이 시민들을 중심으로 확산했기 때문이다.

앞서 로이터통신은 하마스가 이스라엘과의 휴전 협상에서 그동안 고집해 온 ‘영구 휴전’ 요구를 포기하고 인질들을 석방하는 내용의 휴전안을 받아들였다고 보도했다. 휴전안엔 인질 석방 기간 동안 중재국들이 일시 휴전, 인도적 구호품 전달,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간접적인 협상 도중 이스라엘군 철수 등을 보장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하마스 측에서 먼저 손을 내민 셈이지만, 네타냐후 총리가 “협상 불가”를 통보하면서 협상은 최종 결렬됐다.

이에 시민들 사이에선 “네타냐후 총리가 국민을 저버렸다”는 인식이 확산했다. 특히 이번에 사망한 것으로 알려진 인질 중 3명이 이 시기 휴전 협상 단계에 따라 석방될 예정이었던 이들로 알려지면서 시민들의 분노는 더욱 커졌다. 네타냐후 총리 입장에선 정치적 부담이 커진 셈이다.

네타냐후 총리가 속한 리쿠드당 내부에서 휴전 협상을 둘러싼 이견이 거듭 노출되고 있단 점도 압박감을 더한다. 요아브 갈란트 이스라엘 국방장관은 앞선 전시 내각 회의에서 “부상자(인질)를 계속 남겨두는 건 도덕적 수치”라며 “인질이 살아있길 바란다면 이제 시간이 촉박하다”고 휴전 협상의 필요성을 역설한 바 있다. “우리는 인질 석방을 보장하기 위한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며 “네타냐후 총리가 국민을 위한 선택이 아닌 ‘정치’를 하고 있다”고 네타냐후 총리를 직접 비판하는 성명을 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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