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포럼] 떠나는 기시다 총리, 일본 정치의 향방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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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시다 후미오 총리, 지난달 갑작스런 사임 발표
여러 후보 출마했지만 뚜렷한 대체 후보 보이지 않는 상황
새 내각, 미일 관계 등 각종 국제적 과제 직면 불가피


[동아시아포럼] 섹션은 EAST ASIA FORUM에서 전하는 동아시아 정책 동향을 담았습니다. EAST ASIA FORUM은 오스트레일리아 국립대학교(Australia National University) 크로퍼드 공공정책대학(Crawford School of Public Policy) 산하의 공공정책과 관련된 정치, 경제, 비즈니스, 법률, 안보, 국제관계에 대한 연구·분석 플랫폼입니다. 저희 폴리시 이코노미(Policy Economy)와 영어 원문 공개 조건으로 콘텐츠 제휴가 진행 중입니다.


기시다 후미오(Kishida Fumio) 일본 총리가 퇴임을 발표한 가운데, 그의 후임자를 두고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사실상 그를 대체할 만한 인물이 현재로선 없다는 목소리가 높다. 여기에 일본 정부의 국내외 현안에 대한 정책 방향도 불투명해진 상태다.

Japanese Prime Minister Fumio Kishida meets with Quad foreign ministers
사진=동아시아포럼

정치적 스캔들 휘말렸지만 상당한 업적 이뤄

지난 2021년 10월 총리직에 오른 기시다 총리는 지난달 14일 자민당 총재 후보 선거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일본 정치 구조상 여당의 총재직을 포기한다는 것은 총리직에서 내려오는 것과 같은 의미다. 갑작스러운 발표에 일본 정계엔 혼란이 일었다. 물론 기시다 총리는 임기 내내 그다지 인기 있는 총리는 아니었다. 지난해 말에는 비자금 스캔들까지 터지면서 기시다 총리와 자민당의 지지율은 뚝 떨어졌다. 이뿐만 아니라 자민당 일부 의원들이 정치자금 모금 파티 등을 악용해 불법적인 방식으로 비자금을 모아온 사실이 드러나면서 기시다 총리는 일본 국회 정치 윤리심사회에 출석한 최초의 현직 총리라는 오명도 썼다. 

그러나 기시다 총리의 업적은 무시하기 어렵다. 안보 정책과 관련해 그는 국방 예산을 국내총생산(GDP)의 2%까지 올리기 위해 힘썼고, 타국 공격에 대응하는 체계도 도입했다. 타국에 군사 관련 물자와 기반시설을 지원하는 정부 안전보장 능력 강화 지원(Official Security Assistance, OSA) 시스템도 구축하는가 하면 지난해엔 자신의 정치적 고향인 히로시마에서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도 개최했다. 그는 또 ‘핵무기 없는 세계를 위한 국제 저명인사 모임(International Group of Eminent Persons for a World without Nuclear Weapons)’을 만들어 일본의 핵 군축 및 비확산 외교 기조를 이어 나갔다. 미국과 손잡고 한미일 3국 조약, 미국-일본-인도-호주의 4자 안보 대화, 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 등에도 참여했다. 

다만 중일 관계 기여도에 대한 평은 갈린다. 기시다 정부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중국과의 관계 균열을 메우는 데 그다지 많은 정치적 노력을 투입하지 않았다. 기시다 총리의 기조는 관망에 가까웠다. 이는 일본 내에 중국에 대한 안보 문제 우려가 여전히 팽배하고, 중국 경제에 대한 불안이 강한 탓으로 풀이된다. 중일 관계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점쳐지는 이유다.

일본 국내 정치 측면에서도 기시다 총리에 대한 의견은 분분하다. 그가 원자력 발전소를 재가동과 보육 지원 등 중요한 문제들에 대해 결단을 내린 점은 눈여겨볼 필요가 있으나, 기시다 총리가 우선적으로 집중한 과제는 권력을 획득하고 유지하는 것이었다. 실제 그에겐 자민당 내 주류 세력과 주요 정부부처들의 지지를 얻는 것이 중요했다. 기시다 총리는 늘 자신의 강점으로 타인을 경청하는 능력을 내세웠지만, 정작 스스로의 정책 전략과 이념은 약했다. 또한 고 아베 신조(Abe Shinzo) 전 총리와 달리 기시다 총리는 거친 논쟁을 즐기지 않았다. 결단을 내리는 데 주저함이 없었고, 진보적인 이미지도 갖고 있었지만 기시다 총리의 이런 부분은 대중에게 큰 인상을 남기지 못했다. 

이런 가운데 국제사회는 기시다 총리의 사임 이후 일본의 정치, 외교, 안보 정책에 어떤 변화가 생길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물론 당장 해결해야 할 일본 국내 문제들이 있지만, 일본은 미중 패권 경쟁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혼란스러운 중동 상황, 한반도를 둘러싼 불안 등 여러 국제적 문제에도 책임이 있다. 

새 내각, 기존 외교안보 정책 틀 벗어나지 않을 가능성 높아

기시다 총리의 뒤를 이을 인물에도 많은 관심이 쏠린다. 현재 자민당 총재 선거는 자민당 권력 구조의 상징 같던 계파들이 대부분 해체된 시점에 진행되고 있다. 중진 의원들의 힘이 상대적으로 약해진 가운데 여러 후보가 총재 후보를 노리는 양상이다. 가장 먼저 출마를 선언한 사람은 고바야시 다카유키(Kobayashi Takayuki) 전 경제안보상으로 그는 기시다 내각 출신이기도 하다. 정치적으로 보수적인 인물로, 중국에 대해 강경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 현 다카이치 사나에(Takaichi Sanae) 경제안보상과 비슷하다. 이시바 시게루(Ishiba Shigeru) 전 자민당 간사장도 출사표를 던졌다. 이시바 전 간사장은 국내 및 외교 문제와 관련해 이전 자민당 정부와는 다른 입장을 내놓는 데 주력하고 있다. 전반적으로 주류 정치권에 비판적인 성향을 띄고 있는 후보로, 미일 관계 재편에도 관심이 많은 것으로 전해진다.

무엇보다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후보는 고이즈미 신지로(Koizumi Shinjiro) 전 환경상이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의 아들로, 올해 마흔세 살에 불과하지만 대중적 인기가 상당하다. 비주류 정치인들 가운데서도 유독 잠재력이 높은 것으로 여겨진다. 다만 고이즈미 전 환경상은 아직까지 뚜렷한 정책 기조를 정립하지 못한 모습이다. 이에 일각에선 이 같은 그의 상황이 분권형 집권 구조로 이어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미국 유학 및 장관직 이행 경험을 강점으로 삼을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아직까지는 이들 중 뚜렷하게 우세하는 후보가 없는 상황이다. 102대 일본 총리를 예측하기 쉽지 않다는 이야기다. 다만 많은 전문가들은 기존의 외교 안보 정책이 유지되는 가운데 총리 선거에서 낙선한 상당수 중진 의원들이 새 정부 내각에 합류해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예상한다.

한편 새 내각이 마주할 여러 과제 중에선 미일 관계 재정립이 우선순위 최상단에 놓일 전망이다. 미 동맹국들을 비롯해 남반구 신흥국 및 개도국들과의 관계 역시 새 정부가 풀어나가야 할 과제다. 한일 관계의 경우 때마침 양국이 내년 국교 정상화 60주년을 맞는 만큼 많은 진전이 예상된다. 이런 상황에서 대선을 앞둔 미국 정치가 한층 더 혼란에 빠지고, 아시아 지역에 대한 미국 기조가 불분명해질 경우 일본과 다른 민주주의 국가들의 협력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원문의 저자는 사하시 료(Sahashi Ryo) 일본 도쿄대(University of Tokyo) 아시아고등연구소(Institute for Advanced Studies on Asia ) 부교수입니다. 영어 원문은 Kishida’s foreign policy legacy | East Asia Forum에 게재돼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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