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8년 역사 버버리, 런던증시 FTSE 100지수에서 퇴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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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버리, 실적 부진에 주가 1년간 70% 급락
中 MZ세대 소비방식 변화, 가성비 대체품 인기
미중 갈등이 부른 자국 브랜드 선호 현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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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버버리

영국 패션 명품업체 버버리 그룹이 런던증시의 주요 종목에서 퇴출됐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핵심 시장인 중국에서 수요가 줄어든 데다, 전 세계 인플레이션 고착화에 따른 명품 소비 감소 추세에 주가가 급락한 결과다.

FTSE 100에서 FTSE 250로 강등

4일(현지시간) AFP 통신에 따르면 영국 FTSE 러셀은 분기별 검토 결과 이달 23일부터 FTSE 100 지수에서 버버리를 제외하고 보험사 히스콕스를 새로 포함하기로 했다. 분기별로 구성 종목이 조정되는 FTSE 100 지수에는 런던증시 상장사 중 시가총액 기준 100대 대형주가 포함된다.

버버리는 15년간 지수에 편입돼 활동했지만, 최근 몇 달간 이어진 주가 하락이 발목을 잡았다. FTSE 러셀에 따르면 버버리 주가는 지난 1년간 70% 이상 떨어져 FTSE100 기업 중 가장 부진한 성적을 보였다. 현재 시가총액은 23억4,000만 파운드(약 4조1,000억원)로 FTSE 100 지수는 물론이고 중형주 지수인 FTSE 250 상위 상장사보다도 작다. 퇴출 이후 버버리는 테크업체 라스베리파이와 함께 FTSE 250에 합류하게 된다.

이에 버버리는 상황 타개에 나섰다. 앞서 지난 7월 주주에 대한 배당금 지급을 중단했고, 마이클 코어스와 코치를 이끌었던 조슈아 슐먼(Joshua Schulman)을 최고경영자(CEO)로 새로 임명하는 등 리더십에도 변화를 주며 돌파구를 모색하고 있다.

미중 갈등에서 비롯된 中 ‘애국소비’, 글로벌 브랜드 직격타

특유의 체크무늬와 트렌치코트로 잘 알려진 168년 역사의 버버리는 한 세기 이상 트렌치코트의 대명사로 일컬어져 왔다. 한국에서 트렌치코트를 통상 ‘버버리’라고 부르는 것도 이 같은 브랜드의 명성 때문이다. 하지만 수십 년 넘는 기간 동안의 흥행에 취해 판매량을 조절하지 못하고 지나치게 공급을 풀었다는 점이 부진을 견인했다.

여기에 최근 중국인들이 명품 소비를 축소한 점도 실적 하락을 부추겼다. 몇 년 전만 해도 중국인들은 프랑스 파리를 비롯한 세계 주요 대도시의 백화점과 부티크를 돌며 명품을 싹쓸이하다시피 할 정도로 ‘ 큰 손’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다소 위축됐던 중국 경제가 지난해 초 ‘위드 코로나’로 전환된 이후에도 부동산 장기 침체 등과 맞물려 경기 부진이 지속되자, 중국인들은 꼭 필요한 지출 외에는 지갑을 닫기 시작했다.

미중 갈등 격화로 인해 중국 내 ‘애국소비(궈차오, 國潮) 열풍이 일어난 점도 글로벌 브랜드에 있어 직격탄이 됐다. 미중 갈등이 중국의 젊은 소비자들이 자국의 문화유산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애국 소비에 동참하게 함으로써 중국의 신생 브랜드들에 힘을 싣게 만든 요인으로 작용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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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게티이미지뱅크

“브랜드, 의미 없다” 가성비 찾는 중국 MZ들

무엇보다 중국 소비 시장에서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새로운 소비주체가 등장했다는 점이다. 최근 중국의 브랜드 소비는 쥬링허우(90년대생)나 링링허우(00년생)와 같은 젊은 세대들이 이끌고 있는데, 이들을 중심으로 새로운 시장이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최근 주목받는 소비 트렌드는 ‘핑티(平替)’로, 이는 ‘가성비 대체품’을 의미하는 신조어다.

핑티는 유명 브랜드를 모방해 만들어졌더라도 로고까지 베껴서 명품으로 착각하게 만들려는 ‘짝퉁’과는 다르다. 예컨대 일본 SK-II의 페이셜 트리트먼트 에센스 330㎜ 제품은 1,700위안(약 32만원)에 달하지만, 비슷한 성분을 함유한 현지 브랜드 찬도가 내놓은 핑티 에센스 가격은 569위안(약 10만원)이다. 3분의 1 가격이지만 싸구려 제품은 아니라는 점에서 우리나라의 ‘저렴이’와도 차이가 있다.

게다가 중국 소비자들에게 핑티 구입은 숨길 일이 아니다. 온라인에선 핑티 아이템을 찾아내고 명품과 가장 비슷한 핑티를 공유하는 게시물이 쏟아진다. 또 핑티 아이템의 품질과 가격대를 홍보하는 라이브 쇼핑 영상이 잇따르고 있으며 같은 물건을 주문하려는 소비자들이 끊이지 않는다. 이런 추세는 현지 업체들이 수십 년 동안 명품의 저렴한 대체품을 판매하면서도 중산층 쇼핑객에게 모조품을 판다고 조롱받던 것과 확연히 달라진 모습이다. 중국 시장 의존도가 높은 글로벌 유명 브랜드들의 타격이 클 수밖에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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