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부담 줄이겠다” 연금 개혁안으로 ‘세대별 차등 인상’ 띄운 정부, 세대 갈등 불식할 수 있을까
정부 "보험료율-소득대체율 모두 높일 것, 세대별로 차등 인상하겠다"
연금 크레디트 확대·자동조정장치 도입 등 청년 세대 부담 감소책 내놓기도
차등 인상 방안에 우려 목소리, "연금 개혁 이후 세대 갈등 심화할 수 있어"
정부가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을 모두 높이는 연금 개혁안을 제시했다. 보험료율 세대별 차등 인상안 및 인구 구조에 따라 연금액을 깎는 자동조정장치 도입도 타진한다. ‘청년세대 부담 감소 및 형평성 제고’를 연금 개혁의 방향성으로 정한 셈이다. 정부의 연금 개혁 청사진에 시장의 반응은 긍정적이다. 그간 개혁안 제시에 소극적이던 모습을 탈피한 만큼 향후 관련 논의에 속도가 붙을 수 있단 시선에서다. 다만 정부 개혁안을 그대로 따를 경우 세대 갈등이 심화할 수 있단 점은 한계로 꼽힌다.
정부 연금 개혁안 제시, 보험료율 13%-소득대체율 42%
5일 보건복지부는 2024년 제3차 국민연금심의위원회를 열고 ‘연금 개혁 추진계획’을 심의·확정했다.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을 현행 9%, 40%에서 13%, 42%로 인상하겠다는 게 골자다. 구체적으로는 내년 50대인 가입자는 매년 1%p, 40대는 0.5%p, 30대는 0.3%p, 20대는 0.25%p씩 보험료율이 차등 인상된다. 연금 개혁이 논의되기 시작한 이래 줄곧 ‘개혁의 부담을 청년 세대에 전가하려 한다’는 비판이 나오자 절충안을 내놓은 것으로 풀이된다.
청년 세대의 부담을 완화하기 위한 방안은 이뿐이 아니다. 정부는 현재 둘째 아이부터 제공되는 출산 크레디트를 첫째부터 적용하고 6개월만 인정됐던 군 복무 크레디트는 복무 기간 전체로 확대하기로 했다. 연금 크레디트는 출산 시기나 군 복무 등 소득이 없는 시기의 보험료를 정부가 대납하는 것을 의미한다. 가입 초기 보험료 납부 횟수가 많으면 향후 연금 수급액이 누진적으로 증가하는 만큼 크레디트 제도 확대가 청년 세대의 이익을 증진할 수 있을 것으로 정부는 보고 있다.
연금액을 인구 변화, 경제 상황에 따라 조절하는 자동조정장치 도입도 본격 논의한다. 현재 수급자가 수령하는 연금은 물가 상승률을 반영해 매년 오르고 있는데, 이 물가 상승분에 ▲직전 3년간 가입자 수 증감률 ▲기대여명 증감률 등을 적용하겠단 것이다. 정부의 계획대로 2036년 자동조정장치를 도입하면 연금 고갈 시점이 기존 2056년에서 2088년까지 총 32년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는 이 외에도 ▲공무원연금·군인연금 등 직역연금에 적용되는 국가의 지급 보장 명문화 ▲기금 운용 수익률 1%p 이상 제고 ▲연금 내실화 추진 ▲퇴직연금 의무화 등 정책을 함께 시행할 방침이다. 이번 연금 개혁 정부안에 대해 조규홍 복지부 장관은 “개혁안의 핵심은 모든 세대가 제도의 혜택을 공평하게 누릴 수 있도록 지속가능성을 높인 것”이라며 “세대 간 형평성을 제고해 국민들의 노후 생활을 더 튼튼히 보장하기 위한 방안을 세밀히 검토했다”고 전했다.
미온적인 정부 태도에 지지부진한 연금 개혁
이전까지만 해도 정부는 연금 개혁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여왔다. 개혁안 제출을 사실상 거부해 온 것이다. 국회는 지난 2022년 7월 여야 합의 아래 연금개혁특별위원회를 꾸렸다. 당초 연금특위 산하에 전문가들로 구성된 민간자문위원회에서 연금 개혁 초안을 마련하면 정부가 2023년 10월까지 종합안을 확정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민간자문위에서 재정 안정성 강화와 노후소득 보장을 두고 의견이 갈리면서 개혁안 논의가 길어졌고, 결국 정부는 ‘제5차 국민연금 종합운영계획안’에 연금 개혁의 핵심인 보험료율 및 소득대체율에 관한 구체적인 수치나 방향성을 일절 제시하지 않았다. 정부의 책무를 국회에 떠넘긴 셈이다.
정부가 중심을 잡지 못하다 보니 국회 차원의 연금 개혁 논의도 지지부진했다. 그나마 보험료율을 13%로 올리는 데까진 여야 간 합의가 이뤄졌지만, 소득대체율에서 여(43%)와 야(45%) 간 입장 차이가 컸다. 이후 논의 과정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소득대체율 44%를 전격 제안하며 합의를 요구하기도 했으나, 이마저 여권이 거부하면서 개혁안 처리는 답보 상태를 면치 못했다.
정부의 미온적 태도는 국회연금특위 공론화위원회가 소득보장안(보험료율 13%-소득대체율 44%)과 재정안정안(보험료율 12%-소득대체율 40%)을 두고 논의하던 지난 3월 초에도 이어졌다. 당시 대통령실은 어떤 안에 거부권을 행사하겠단 의견을 개진하지 않고 국회의 논의만 묵묵히 지켜봤다. 사실상 국회의 결정을 존중하겠단 의사를 암묵적으로 내비친 것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었지만, 막상 소득보장안이 최종안으로 떠오르자 대통령실은 돌연 합의를 거부했다. 윤석열 정부가 연금 개혁에 걸림돌이 되고 있단 비판이 쏟아진 이유다.
정부안 제시에 속도 붙은 개혁 논의, 하지만
한편 정부가 연금 개혁 청사진을 직접 들고나온 데 대한 시장의 반응은 대체로 긍정적이다. 그동안의 소극적인 태도를 벗고 논의에 본격적으로 나선 만큼 연금 개혁에 속도가 붙을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다만 일각에선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정부의 개혁안대로 보험료율이 세대별로 차등 적용되면 세대 갈등이 심화할 수 있단 이유에서다. 정부안에 따르면 월 300만원을 받는 50대 가입자는 내년부터 보험료를 매달 3만원씩 더 부담해야 한다. 현재 보험료가 월 27만원(보험료율 9%)이면 내년엔 월 30만원(10%)까지 오른단 소리다. 직장인의 경우 사업주와 절반씩 부담해 1만5,000원을 더 내야 한다.
반면 20대는 내년 보험료율 9.25%를 적용받아 지역가입자는 7,500원, 직장가입자는 3,750원을 더 내는 데 그친다. 1년을 기준으로 보면 지역가입자 기준 50대는 연 36만원을, 20대는 9만원을 더 내게 되는 셈이다. 연령대가 높은 수급자 입장에선 보험료율 책정이 불합리하다고 느낄 여지가 많다.
출생 연도를 기준으로 잡는 만큼 형평성에 어긋나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 예컨대 1975년 12월에 태어난 가입자는 50대에 포함돼 내년부터 보험료율 10%를 적용, 월 30만원을 내야 하지만 1976년 1월 태어난 가입자는 40대에 포함돼 보험료율 9.5%를 적용, 월 28만5,000원만 내면 된다. 불과 1개월 차이로 보험료 부담이 달라질 수 있단 것이다. 이런 가운데 1976년생과 1985년생은 같은 40대에 포함돼 똑같이 28만5,000원만 내면 된다. 불과 1개월 차이에 따른 보험료 부담이 9년 차이에는 오히려 사라지는 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