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포럼] 출구 안 보이는 중국-필리핀 갈등, 법적 근거 강화 나선 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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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쟁 지역 내 보급 임무 관련 합의 맺었지만 갈등 완화 효과는 미지수
양국, 영유권 주장 강화 위해 법적·제도적 기반 마련에 몰두
군사력 강화 정책으로 당분간 긴장 고조 이어질 듯


[동아시아포럼] 섹션은 EAST ASIA FORUM에서 전하는 동아시아 정책 동향을 담았습니다. EAST ASIA FORUM은 오스트레일리아 국립대학교(Australia National University) 크로퍼드 공공정책대학(Crawford School of Public Policy) 산하의 공공정책과 관련된 정치, 경제, 비즈니스, 법률, 안보, 국제관계에 대한 연구·분석 플랫폼입니다. 저희 폴리시 이코노미(Policy Economy)와 영어 원문 공개 조건으로 콘텐츠 제휴가 진행 중입니다.


남중국해를 둘러싼 중국과 필리핀의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양국의 공중 및 해상 대치가 이어지면서 중장기적 분쟁 가능성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커지는 모습이다.

Protest during the 8th anniversary of the 2016 arbitration ruling over China's claims in the South China Sea
사진=동아시아포럼

중국-필리핀, 시에라 마드레 합의에도 대치 이어져

앞서 중국과 필리핀은 지난 7월 영토 분쟁 지역인 세컨드 토마스 암초(Second Thomas Shoal)에 좌초돼 있는 난파선 시에라 마드레(Sierra Madre)에 보급품을 보내는 문제와 관련해 필리핀이 보급 임무를 이어나갈 수 있도록 잠정 합의를 맺었다. 합의 직전엔 양국 간 대치가 극에 달한 상황이었다. 중국군이 필리핀 선박을 가로채 보급품을 압수하고 필리핀 선원을 다치게 한 사건이 갈등에 기름을 끼얹은 탓이었다. 이후 어렵사리 합의에 다다랐지만 평화는 오래가지 않았다. 중국이 지난달 필리핀 항공기를 향해 조명탄을 위험한 수준으로 여러 차례 근접 발사하면서 양국 관계는 다시 악화 수순으로 접어들었다.

세컨드 토마스 암초를 둘러싼 양국의 분쟁은 지난 2021년 이후 본격적으로 남중국해 분쟁의 도화선이 되고 있다. 필리핀은 지난 1999년 이곳에 미군이 쓰던 함정 시에라 마드레를 고의로 정박시켰다. 이 함정에 자국군을 배치시키고 전초기지로 쓰겠다는 취지였다. 이후 필리핀 해병대는 시에라 마드레에 보급품을 전달하는 임무를 꾸준히 수행해 왔는데, 중국은 이를 막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해 온 상황이다.

지난 7월 협상 타결 후 한동안 필리핀은 별문제 없이 보급 임무를 재개한 듯했다. 다만 해당 협상이 단기적으로 양국의 긴장을 완화시킨 건 사실이나, 남중국해 분쟁을 해결하는 데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전망은 찾아보기 어렵다. 양국의 뿌리 깊은 상호 불신을 감안하면 되레 상황이 악화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실제로 양국은 이미 이번 협상의 해석을 놓고 이견을 빚고 있다. 특히 세컨드 토마스 암초 주변에서 벌어지는 상황엔 남중국해 내 중국-필리핀 갈등이 고스란히 반영됐는데, 다른 지역에서 벌어지는 영유권 분쟁 역시 이 지역에 곧장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

이처럼 악화일로인 중국-필리핀 간 분쟁이 이어지는 데엔 두 가지 배경이 있다. 일차적으로는 양측 모두 분쟁 지역에서 자국의 영유권 강화를 위해 각종 법적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지난 6월 중국은 새 해양 규정을 도입했는데, 이 규정은 중국해역에 침입하는 외국 선박과 선원들을 최대 60일까지 구금할 수 있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는 중국해역에 들어오는 모든 선박을 향한 해안경비대의 발포를 허가한 2021년 법률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간 것이다. 게다가 중국은 자국의 남중국해 영유권 주장을 기각한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의 2016년 판결을 계속 무시하는 중이다.

법적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애쓰고 있는 건 필리핀도 마찬가지다. 지난 6월 필리핀은 국제연합(UN)에 팔라완섬 서쪽 해역의 대륙붕 경계를 연장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 요청이 받아들여지면 필리핀은 확장된 대륙붕 지역에서 천연자원 개발 사업 등을 벌일 수 있게 된다. 필리핀은 이를 포함해 영유권 분쟁 지역 등 각종 해역에 대한 자국의 권리를 강화하기 위해 해양 구역법(Maritime Zones Act) 도입을 추진 중이다. 이 법은 일찌감치 중국의 신경을 건드린 바 있다.

양국, 군사력 강화 매진하며 긴장 고조시켜

또 들여다볼 부분은 양국이 계속해서 군사력을 강화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중국은 인공섬 내 군사 기지 등을 활용해 필리핀 배타적 경제 수역에 자국군 주둔을 이어 나가는 중이다. 이 같은 방법은 중국이 남중국해 전체로 군사력을 확대하는 데 힘을 보태고 있다.

이에 필리핀은 군대를 현대화하는가 하면 대함 미사일 능력을 확보하고 안보 파트너인 미국 등과 연합훈련을 실시하며 맞서는 상황이다.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Ferdinand Marcos Jr.) 필리핀 대통령은 올해 들어 일본 및 독일과 새로운 방위협정을 추진하는 등 타국과의 전략적 파트너십을 강화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필리핀의 이 같은 전략은 남중국해 내 정치 지형에 상당한 영향을 준다. 특히 필리핀이 일본과 맺은 상호접근협정(RAA)은 필리핀에 배치된 일본군이 확장 군사훈련에 참여할 수 있게 하고, 일본군의 인도주의 활동 및 재난 구호 활동도 허가한다. 중국은 이 협정이 중국을 겨냥한 조치라고 반발했다. 

이렇게 지상에서 벌어지는 양국의 갈등은 바다에서 일어나는 갈등을 해결하려는 신뢰 구축 노력을 퇴색시킬 수 있다. 실제 필리핀은 지난달 남중국해에서 중국이 벌인 위협적인 행동을 여러 차례 비판했다. 당시 중국 공군 전투기가 필리핀 공군기의 순찰을 방해하면서 긴장이 고조됐다. 그간 중국이 필리핀 항공기를 직접적으로 겨냥한 사례가 없었던 만큼 국제사회도 한층 남중국해 상황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이후 양국은 각국 대통령실에 핫라인을 설치했지만, 중국이 이를 사용하지 않는다면 긴장 완화엔 별다른 역할을 하지 못할 듯하다.

양국의 이 같은 법적, 군사적 움직임은 중국과 필리핀 사이 뿌리 깊은 불신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단호한 외교적 및 정치적 전략을 통해 자국의 주장을 강화하려는 양국의 노력은 중장기적으로 갈등을 더 고조시킬 가능성이 높다. 세컨드 토마스 암초 관련 협정이 일시적으로 긴장을 누그러뜨릴 순 있겠지만, 악화일로인 전략적 환경에서 긴장의 근본적인 원인을 해결하는 데엔 실패한 듯하다. 

원문의 저자는 압둘 라만 야콥(Abdul Rahman Yaacob) 로이 연구소(Lowy Institute) 동남아시아 프로그램 연구원입니다. 영어 원문은 China–Philippines trust in troubled waters | East Asia Forum에 게재돼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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