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담보대출 묶어라” 정부·은행권 규제에 가라앉은 서울 부동산 시장
위축된 서울 부동산 시장, 아파트 매물 급증
정부·은행권 '주담대 조이기' 통했나
금융권 곳곳에서 '풍선 효과' 발생, 당국 모니터링 착수
서울 아파트 매물이 급증 양상을 보이고 있다. 시장에 나와 있던 ‘급매물’들이 대부분 소화되며 호가 상승세가 이어지는 가운데, 대출 규제가 강화되면서 수요자들의 자금 조달 여건이 악화한 결과다. 정부와 은행권은 가계대출 증가세 억제를 위해 주택담보대출을 중심으로 한 강력한 규제책을 쏟아내며 고삐를 더욱 조이고 있다
서울 아파트 매물 쌓인다
12일 부동산 빅데이터 업체 아실에 따르면 전날 기준 서울 아파트 매물은 8만2,836건에 육박했다. 이는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2단계 시행 당일인 지난 1일(8만462건)과 비교하면 2.9%, 1개월 전인 8월 11일(7만9,059건)에 비하면 4.7% 증가한 수치다. 자치구별로 보면 이달 초 대비 매물이 가장 많이 늘어난 곳은 중구(5.6%)로 확인됐다. △강북구(5.5%) △마포구(5%) △중랑구(4.9%) △용산구(4.9%) △구로구(4.5%) 등의 지역에서도 눈에 띄는 매물 증가세가 관측됐다.
서울 아파트 매물 증가의 원인으로는 매매가 상승이 지목된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지수는 3월 넷째 주부터 9월 첫째 주까지 24주 연속 상승했다. 해당 기간 서울 전역의 평균 아파트 가격 상승세는 3.52%에 달한다. 자치구별로는 성동구가 8.1%로 가장 큰 상승폭을 기록했으며, 서초구(6.45%), 송파구(6.15%), 마포구(5.36%), 용산구(4.98%), 강남구(4.58%) 등도 4~6% 이상의 가파른 상승세를 보였다. 광진구(4.38%), 영등포구(3.92%), 동작구(3.68%), 서대문구(3.63%)의 상승폭 역시 평균치를 웃돌았다.
한 부동산 업계 관계자는 현재 부동산 시장 상황과 관련해 “시장에 나와 있던 ‘급매물’이 대부분 소화되며 호가 상승세가 이어지고 있다. (거래 완료까지) 시간이 조금 걸려도 보다 높은 가격을 받으려는 매도자의 비중이 늘어난 것”이라며 “반면 매수자들의 경우 정부와 은행권의 대출 규제가 강화되며 자금 조달 장벽이 높아진 상황이다. 매물 소진 속도가 느려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집값 상승세가 좀처럼 꺾이지 않는 가운데, 대출 규제 강화로 인해 수요자들의 자금 조달 여건이 악화하며 거래 전반이 위축됐다는 분석이다.
정부·은행권의 대출 규제 움직임
실제 최근 들어 정부와 은행권은 가계대출 증가세를 억제하기 위해 강도 높은 규제 방안을 내놓고 있다. 우선 정부는 이달부터 스트레스 DSR 2단계 조치를 시행, 차주들의 대출 한도 조이기에 나섰다. 스트레스 DSR은 미래 금리 변동 위험을 반영해 대출 금리에 ‘스트레스(가산) 금리’를 더하는 제도다. 2단계 스트레스 금리는 0.75%p 수준이며, 은행권의 수도권 주담대에 한해 1.2%p의 스트레스 금리가 적용된다.
시중은행권은 유주택자 주담대 취급을 줄줄이 제한하며 투기 수요 억제에 공을 들이고 있다. KB국민은행은 지난 9일부터 1주택자의 수도권 주택 추가 구입 목적 주담대 취급을 제한하고 나섰다. 지난 7월 29일부터 다주택자(2주택자 이상)를 대상으로 시행된 주담대 취급 제한 조치를 1주택자 대상으로까지 확대한 것이다. 우리은행, 신한은행 등도 줄줄이 유사한 규제 조치를 내놓으며 유주택자의 주담대 상품 이용을 제한했다.
인터넷전문은행들도 대출 규제를 속속 강화하는 추세다. 카카오뱅크는 3일부터 주택구입자금 목적의 주담대 대상자를 무주택 세대로 한정, 임차보증금 반환이나 기존 대출 상환 목적이 아닌 생활안정자금의 대출 한도는 1억원으로 제한하고 있다. 케이뱅크도 5일부터 아파트담보대출의 구입자금 취급 대상을 무주택자로 제한했고, 원금 상환 없이 이자만 납부하는 ‘거치 기간’ 제도를 폐지하며 대출 장벽을 높였다.
신용대출·제2금융권 ‘풍선 효과’ 우려
다만 강력한 규제의 지속 가능성에 대해서는 의문이 뒤따른다. 강도 높은 주담대 규제에서 기인한 풍선 효과가 금융권 곳곳에서 혼란을 초래하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권에 따르면 5대 은행의 개인 대상 신용대출 잔액은 지난 5일 기준 103조9,321억원으로 전월 말(103조4,562억원) 대비 4,759억원 늘었다. 9월 들어 하루 평균 952억원씩 신용대출이 불어난 셈이다. 이와 관련해 한 금융권 관계자는 “신용대출이 급증한 것은 정부의 가계대출 억제 정책에 따라 은행권이 주담대 금리를 줄줄이 올렸기 때문으로 보인다”며 “주담대를 중심으로 강화된 각종 대출 제한 조치를 피해, 규제가 덜한 신용대출로 수요가 몰렸을 가능성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금융당국은 억눌린 주담대 수요가 시중은행 신용대출을 넘어 제2금융권까지 확산할 수 있다고 판단, 금융권 대출 현황을 적극적으로 모니터링하고 있다. 박충현 금융감독원 부원장보는 지난달 27일 가계부채 현황 브리핑에서 “아직 다른 업권으로 대출이 몰리는 풍선 효과는 나타나지 않고 있고, 현재까진 걱정할 수준이 아니다”라면서도 “이상 징후가 발생하면 현장 검사 등을 통해 지도하겠다”고 말했다. 현재 금융감독원은 주간 단위로 보고받던 저축은행 신용대출과 카드사 카드론(장기카드대출) 추이를 하루 단위로 집계하고 있다.
시중은행에 집중돼 있던 당국의 가계대출 억제 압박이 제2금융권까지 확대된 가운데, 제2금융권의 한숨은 깊어져만 가고 있다. 한 저축은행 업계 관계자는 “저축은행 업권은 부동산 PF(프로젝트파이낸싱) 등 기업 대출이 축소돼 신용대출을 늘려야 하는 상황으로, 당국이 가계대출 관리를 주문하면 수익성이 악화될 수밖에 없다”며 “카드사들 역시 주요 수익원인 카드론이 규제 영향권에 들까 우려하고 있는 상태”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