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포럼] 라이칭더 대만 총통, 의회 갈등으로 되레 이득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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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칭더 대만 신임 총통, 취임 직후부터 중국과 마찰
경선 득표율 40% 그쳤지만 의회 내 논란으로 돌파구 마련
시급 과제 많지만 라이 총통 추진력에 긍정 기대 확산


[동아시아포럼] 섹션은 EAST ASIA FORUM에서 전하는 동아시아 정책 동향을 담았습니다. EAST ASIA FORUM은 오스트레일리아 국립대학교(Australia National University) 크로퍼드 공공정책대학(Crawford School of Public Policy) 산하의 공공정책과 관련된 정치, 경제, 비즈니스, 법률, 안보, 국제관계에 대한 연구·분석 플랫폼입니다. 저희 폴리시 이코노미(Policy Economy)와 영어 원문 공개 조건으로 콘텐츠 제휴가 진행 중입니다.


지난 5월 취임한 라이칭더(Lai Ching-te) 대만 총통이 벌써부터 복잡한 국내외 정세를 마주하고 있다. 양안 관계, 에너지 부족 문제 등 안팎으로 과제가 산적한 가운데 대만 독립을 지지하는 그의 강경한 입장이 중국을 자극해 지정학적 불안을 야기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다만 라이 총통의 추진력을 의심하는 목소리는 높지 않다.

Taiwan's President Lai Ching-te attends the annual Ketagalan Forum in Taipei
사진=동아시아포럼

난관과 기회 동시에 마주한 라이 총통

‘최악의 시기이자 최고의 시기’라는 말은 대만 민주진보당(DPP, 이하 민진당)을 이끄는 라이 총통이 마주한 상황을 일컫는 말일 듯하다. 최근 취임한 그의 임기는 여러 도전과 성취 과제로 꽉 차 있다. 대만은 특히 중국과의 문제에서 중요한 지점에 서 있다. 라이 총통의 독립 지지 성향은 중국의 심기를 건드릴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국내 문제에서도 라이 총통은 상당한 도전에 직면했다. 그는 선거에선 승리했지만 3자 경선에서 40%를 득표하는 데 그쳤다. 대만의 국회인 입법원(Legislative Yuan)에선 민진당이 51석, 중국국민당(KMT)이 52석, 대만민중당(TPP)이 8석을 꿰찼다. ‘여소야대’일뿐 아니라 입법에 필요한 과반도 확보하지 못한 것이다. 일각에선 라이 총통이 정책 아젠다를 추진해 나가는 과정에서 난관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전망했으나 취임 한 달이 지난 현재, 라이 총통은 위기를 어느 정도 기회로 바꾼 모습이다.

라이 총통 취임 전 입법원은 여러모로 시끄러웠다. 야당인 국민당과 민중당은 민진당이 반대하던 의회 개혁 법안을 발의했는데, 이는 의회 내에서의 물리적 충돌로 번졌다. 민진당은 야당들을 향해 법안을 강제로 통과시켰다고 비난했고, 야당들은 의회 개혁이 민진당이 야당 시절부터 요구했던 것이라고 맞섰다.

그럼에도 많은 이들은 입법부의 조사 권한을 확대하는 이번 법안이 위원회 심의와 주요 용어 정리, 삼권분립에 대한 고려 등 안전장치 없이 성급하게 통과됐다고 비난을 이어갔다. 특히 법학계의 지적이 거셌다. 이번 법안의 일부가 헌법에 어긋날 수 있다는 것이다. 대규모 거리 시위도 벌어졌다. 시위대는 법안이 민주주의와 국가 안보를 훼손한다고 우려의 목소리를 높였다.

결국 대만 최고행정기관인 행정원이 헌법재판소에 이번 개혁의 합헌 여부를 검토해 달라고 요청하며 진화에 나섰다. 이에 따라 헌재는 법안 시행을 일시 중단한 상태며, 헌재의 판단은 앞으로 석 달 이내에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의회 개혁 법안 논란, 라이 총통엔 기회

다만 민진당은 이번 논란을 통해 더 많은 것을 얻었을 가능성이 있다. 선거 전까지만 해도 유권자들은 민진당에 대한 신뢰를 잃은 듯했고, 이는 고스란히 선거 결과에 반영됐다. 그러나 의회 개혁 법안을 둘러싼 논란은 국민당과 민중당에 ‘중국과 연계돼 있다’는 프레임을 씌우는 결과로 이어졌다. 특히 여론 속 민중당은 국민당의 2중대로 전락한 모습을 보였는데 그러는 사이 민진당과 라이 총통의 인기는 더욱 올라갔다.

앞서 지난 5월 라이 총통이 취임식에서 발표한 연설은 양안 관계를 재정의하는 데 중요한 기반이 됐다. 라이 총통은 ‘중화민국헌법에 따라 중화민국(대만)의 주권은 모든 국민에게 있으며, 중화민국 국적을 소유한 사람은 모두 중화민국 국민’이라고 강조했다. ‘중화민국과 중화인민공화국(중국)은 서로 종속적이지 않다’는 점을 분명히 하며 중국을 향해 선을 그은 셈이다.

중국이 꾸준히 ‘하나의 중국’을 주장하는 가운데 나온 라이 총통의 이 발언은 ‘새로운 두 국가론’이라는 비판에 휩싸였다. 라이 총통의 연설이 진행되는 동안 대만 주식 시장은 폭락을 겪었고, 중국은 그 직후 대만을 겨냥한 군사훈련에 돌입했다. 그러나 대만 국민들은 중국의 군사 훈련에 이미 익숙해진 상태다. 현지 언론도 보도를 자제하면서 대만에선 여느 때처럼 평범한 일상이 흘러갔다. 여론도 나쁘지 않았다. 현지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 절반 이상이 라이 총통의 취임 연설에 만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라이 총통에 더욱 힘을 실은 건 지난 6월 대만에서 열린 컴퓨텍스 2024(Computex 2024) 행사에 젠슨 황(Jensen Huang) 엔비디아(Nvidia) 최고경영자(CEO)가 방문한 사실이었다. 대만은 전 세계 반도체의 절반 이상을 생산하며 반도체 강국이자 인공지능(AI)의 공급망 핵심으로 자리 잡은 상태다.

이 덕에 경제 전망은 좋지만, 대만이 해결해야 할 과제는 여전히 많다. 그중 하나가 에너지 부족 문제다. 산업을 발전시키려면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이 필수적이지만 대만은 여러 차례 정전으로 몸살을 앓았다. 전력 사용량이 최고조에 달하는 여름이 오기 전에도 정전이 일어났을 정도다. 이에 라이 총통은 기후 변화를 다루는 위원회를 포함해 에너지 문제를 집중적으로 고민할 위원회 3개를 설립했다. 그러나 이런 대응책들이 대만의 고질적인 에너지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이렇듯 많은 어려움이 산적해 있으나 라이 총통은 비교적 굳건하게 임기를 수행해 나갈 듯하다. 여소야대를 직면한 라이 총통의 정치적 입지를 두고 일각에선 우려를 제기하기도 하지만, 그가 지금껏 걸어온 길이 세간의 우려를 불식시킨다. 그는 타이난(Tainan) 시장으로 재임하던 시절, 의장 선거를 둘러싸고 논란이 일자 234일간 의사 일정을 거부했다. 지난 2014년 상해에서 한 연설에선 스스로를 ‘대만 독립을 위한 실용적 일꾼’이라고 칭하며 눈길을 끌기도 했다.

이 같은 그의 결단력은 여전해 보이는 만큼 흔들리지 않고 라이 총통은 자신이 확신하는 대로 정책을 추진할 가능성이 높다. 더욱이 라이 총통은 대만의 정치 지형에서 유독 눈에 띄는 인물이기도 하다. 차이잉원(Tsai Ing-wen) 전 총통에 이어 집권하며 선거 때마다 정권이 교체되던 대만의 정치 상황에 새로운 선례를 남겼기 때문이다. 이에 힘입어 개헌과 의원 소환제를 활용하며 입법부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라이 총통은 광부의 아들로 태어나 의사를 거쳐 총통이 된 인물이다. 의심의 여지가 없는 강한 결단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대만의 민주주의를 사수하려는 그의 열망도 뜨겁다. 정치적 경험이 많아 대화와 합의를 통해 문제를 해결해 나갈 능력도 충분하다. 다만 라이 총통은 민주주의가 근본적으로 국민들을 위한 것이란 점과 많은 국민이 현상 유지를 더 선호한다는 사실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 그에게 가장 시급한 과제는 내부의 정치적 갈등을 잠재우고 나라 내 세력들을 통합해 대만의 발전을 위한 토대를 본격적으로 다지는 것이다. 이제 대만의 흥망성쇠 여부는 라이 총통의 결단에 달려있다.

원문의 저자는 원치 양(Wen-Chi Yang) 대만 국립청치대(National Chengchi University) 외교학부 부교수입니다. 영어 원문은 A tale of two futures for Taiwan | East Asia Forum에 게재돼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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