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포럼] 일본-필리핀 군사 협력, 긴장 완화에 득이 될까 독이 될까?
일본-필리핀, 합동 훈련 및 해상 안보 강화 목적 군사 협정 체결
남중국해 갈등 고조 속 지역 내 ‘전쟁 억제력 강화’ 평가
긴장 악화 위험 및 필리핀 주권 침해 논란 해결해야
[동아시아포럼] 섹션은 EAST ASIA FORUM에서 전하는 동아시아 정책 동향을 담았습니다. EAST ASIA FORUM은 오스트레일리아 국립대학교(Australia National University) 크로퍼드 공공정책대학(Crawford School of Public Policy) 산하의 공공정책과 관련된 정치, 경제, 비즈니스, 법률, 안보, 국제관계에 대한 연구·분석 플랫폼입니다. 저희 폴리시 이코노미(Policy Economy)와 영어 원문 공개 조건으로 콘텐츠 제휴가 진행 중입니다.
지난 7월 체결된 일본-필리핀 ‘상호 접근 협정’(Reciprocal Access Agreement)은 중국과의 남중국해(South China Sea) 영유권 갈등 증폭 상황에서 양국 간 합동 훈련과 해상 안보 강화를 통한 군사 협력 증진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필리핀으로서는 일본과의 협력을 통해 중국과 힘의 균형을 맞춰 전쟁 억제력을 강화하는 데 큰 도움을 받을 것으로 분석된다. 하지만 중국이 남중국해 영유권 주장을 여전히 노골화하는 상황에서 이번 협정이 안보 딜레마(security dilemma)를 더욱 악화시킬 위험과 함께, 일본군 주둔으로 인한 필리핀 내부의 ‘자주권 침해’ 우려도 무시할 수 없는 수준으로 터져 나오고 있다.
일본-필리핀 군사 협정, 남중국해 보안과 해상로 보호에 초점
지난 7월 8일 일본-필리핀 2+2 외교 및 국방 장관 회의(Japan–Philippines 2+2 Foreign and Defence Ministerial Meeting)에서 체결된 양국 간 ‘상호 접근 협정’은 합동 군사 훈련과 공동 안보 노력 증대를 통한 군사 협력 증진을 골자로 하는데 특히 중국과 갈등이 격화되고 있는 남중국해 지역에서의 안보 협력 강화가 주된 목적이다.
일본으로서는 재작년과 작년 호주, 영국과 상호 접근 협정 체결 이후 동남아시아 국가 중에서는 필리핀과 최초로 군사 협정을 맺은 셈인데 호주, 영국과의 협정이 인도-태평양 지역에서의 전략적 협력을 포괄적으로 규정하고 있다면, 일본-필리핀 협정은 해상 보안과 남중국해 해상로 보호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것이 차이점이다. 호주, 영국에 비해 취약한 군사력을 보유한 필리핀 정부는 이번 협정을 자국과 지역 안보 위협에 맞설 수 있는 중요한 전략적 보완책으로 평가하고 있다.
이번 협정은 특히 역사적으로도 전환점이 되는 사건으로, 제2차 세계대전 중 일본의 필리핀에 대한 점령과 침략 행위 이후 1956년 재개된 양국 외교 관계가 완전한 화해 모드에 접어들었음을 입증한다. 상호 신뢰 회복을 통한 지역 안정 유지 필요성이 적대국 관계를 긴밀한 안보 동맹으로 돌아서게 한 것이다.
또한 이번 협정은 미국이 주도하는 지역 안보 체계 내에서도 중요한 변화를 시사한다. 지금까지 미국의 아시아 지역 안보 전략의 핵심은 지역 내 국가들과 1:1 상호 방위 조약을 근간으로 한 허브 앤 스포크 체계(hub-and-spokes system, 미국이 개별 동맹국들의 중심이 되는 체계)였는데 이번 협정으로 필요에 따라 지역 내 동맹국들끼리 협력을 강화하는 소다자주의(minilateralism) 방식이 도입된 것이다. 이를 통해 앞으로 더욱 유연해진 동맹국 간 협력을 통한 집단 방위 역량으로 위협에 대응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안보 딜레마 악화’ 및 필리핀 ‘자주권 침해’ 우려 이어져
필리핀이 이번 협정으로 얻은 전략적 이익은 무엇보다 방위력 증강이다. 일본 자위대(Self-Defense Forces)의 자국 내 배치를 허용함으로써 남중국해 긴장 고조 상황에서 전쟁 위협에 대한 억제력(deterrent)을 강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양국 간 합동 군사 훈련을 통해 재난 대응, 해상 보안, 대테러 등의 분야에서 필리핀의 군사적 역량을 강화하는 데도 보탬에 될 것으로 예상된다.
더불어 일본과의 군사 협력을 통한 국방 기술 이전 및 공동 개발 진전 등은 필리핀 국방 현대화에도 기여할 것으로 관측된다. 양국 협정이 촉매가 돼 미국, 호주 등의 동맹국들을 아우르는 보다 넓은 범위의 지역 안보 네트워크 결성과 강화도 기대되는 대목이다.
다만 우려 사항도 있다. 남중국해 영유권 주장을 멈추지 않고 있는 중국이 일본과 필리핀 간 군사 협력 강화를 중국 봉쇄 시도의 일환으로 해석해 지역 내 긴장을 더욱 증폭시키는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필리핀 내부에서 자주권 침해에 대한 우려와 반대도 이어지고 있다. 이번 협정으로 군사력 강화에 도움을 받는다 쳐도, 자국 영토 내 상당한 규모의 외국군 주둔을 허용하는 것은 안보 및 외교 문제에 대한 필리핀의 독자적 결정권을 제약해 일본을 포함한 미국 주도 군사 동맹에 지나친 의존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이미 필리핀 진보정당 연합 마카바얀 블록(Makabayan Bloc)은 이번 협정이 미국의 지원을 받는 일본 제국주의의 부활 신호며 일본 지배의 뼈아픈 유산과 과거사 문제를 망각한 처사라고 비난하고 있다.
긴장 악화 막기 위한 외교적 대화와 신뢰 구축 이어져야
물론 위안부 이슈를 비롯한 과거사 문제를 무시할 수는 없다. 하지만 현재 일본의 방위 전략은 과거의 제국주의 부활이 아닌 지역 안보 유지에 초점이 맞춰져 있고 상호 접근 협정 역시 중국의 영유권 주장에 따른 안보 위협에 대한 필요적 대응이라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또한 필리핀의 전략적 우선순위는 일본과의 동맹과 미국의 지원을 통해 급변하는 지정학적 상황 속에서 자국 안보를 강화할 방안을 적극적으로 모색하는 것일 수밖에 없다.
이번 협정의 성공은 일본과 필리핀이 상호 협력해 복잡한 지역 안보 문제를 어떻게 풀어가느냐에 달려 있다. 무엇보다 잊지 말아야 할 위험은 중국이 양국 간 군사 협력 강화를 추가된 위협으로 간주하고 군비 증강으로 대응해 안보 딜레마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중국을 비롯한 이해관계자들과 지속적인 외교적 대화와 신뢰 구축을 병행하는 것만이 양국 간 군사 협력이 긴장의 촉매제가 아닌 지역 안정의 기반으로 기능할 수 있도록 하는 길이다.
원문의 저자는 마리아 테마르 타나(Maria Thaemar Tana) 도쿄대학교(University of Tokyo) 아시아 고등연구소(Institute for Advanced Studies on Asia) 연구원입니다. 영어 원문은 Japan–Philippines defence deal reflects regional security dynamics | EAST ASIA FORUM에 게재돼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