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판 트로이 목마’ 이스라엘이 심은 삐삐 폭탄에 수천명 사상, 확전 도화선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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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바논 전역서 호출기 동시 폭발, 4,000여 명 사상
이스라엘 '모사드' 배후 지목, 전면전 위기 고조
진화하는 전쟁, 세계 각국 첨단 무기 개발 총력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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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親)이란, 반(反)이스라엘 무장단체 헤즈볼라의 근거지인 레바논 전역에서 호출기 폭발 테러가 벌어지면서 중동에 또다시 전운이 드리우고 있다. 통신 단말기 공급망에 침투해 대규모 공격을 감행한 최초 사례인 만큼 공급망 보안이 안보의 새로운 변수로 떠오른 한편, 1년간 무력 공방을 이어온 양측 분쟁이 전면전으로 치달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일상 통신수단이 무기로 돌변, 방첩 치명타

17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이날 오후 3시 30분쯤부터 1시간가량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 남부 티레, 북동부 헤르멜 등 전국 각지에서 호출기 수백대가 폭발하면서 최소 12명이 숨지고 4,000명이 넘게 다쳤다. 부상자 가운데 200여 명이 중태인 만큼 사망자는 더욱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공습과 테러가 빈발하는 중동에서도 특정 인물을 겨냥한 원격 공격이 일어난 적은 있지만, 이번처럼 불특정 다수를 겨냥해 통신기기를 폭발물로 활용한 경우는 전례가 없다.

폭발된 기기는 국내에서 ‘삐삐’로 불렸던 무선통신기로, 헤즈볼라가 올해 초 대원들에게 지급하려고 일괄 구입한 제품이었다. 대부분 AR924 기종으로 각 기기의 배터리 옆에 1~2온스(28~56g)의 폭발물이 들어가 있었으며 이를 원격으로 터뜨릴 수 있는 스위치도 함께 내장된 것으로 전해졌다. 또 호출기가 폭발 직전 수초간 신호음을 내게 하는 프로그램까지 설치했다는 게 당국자들의 전언이다.

실제 로이터에 따르면 사고 당일 호출기에서 경고음이 울렸고, 호출기 화면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폭발이 이어진 탓에 피해자 상당수가 손이나 얼굴, 복부, 허벅지를 심각하게 다친 것으로 파악됐다. 외신들이 공개한 영상을 보면 공개한 영상을 보면 과일가게에 있던 한 대원의 허리춤에서 호출기가 갑자기 폭발했고, 마트 계산대에 있던 사람이 신호음을 확인하며 호출기를 만지자 곧바로 강한 폭발음과 함께 연기를 내뿜었다. 피해자들은 폭탄 반발력에 2~3m 뒤로 나동그라졌다.

이번 테러의 배후로는 그간 헤즈볼라와 강도 높게 무력 충돌해 온 이스라엘이 지목된다. 이스라엘은 이와 관련해 어떤 입장도 내지 않고 있으나, 이번 공격의 확실한 주체로 여겨진다. 이런 가운데 주요 외신에선 이번 테러의 2가지 방법론이 제기됐다. 호출기에 악성코드를 심어 배터리를 과열시킨 뒤 폭발을 유도하는 ‘사이버 공격’과 장치 내부에 폭발물을 삽입하는 ‘공급망 공격’이라는 분석이다.

현재로서는 공급망 공격이 더 유력하다고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미국 정보당국 관계자들은 이스라엘이 헤즈볼라가 수입한 대만 기업의 호출기에 직접 소량의 폭발물을 심은 것으로 보고 있다. 헤즈볼라가 대량으로 호출기를 주문하자 이스라엘 정보당국이 이를 역이용해 공격 수단으로 삼았다는 것이다.

반면 사이버 공격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하는 쪽은 폭발 규모가 작았다는 점 근거로 들었다. 통신 장비 해킹 경력이 있는 이스라엘 전직 관리는 파이낸셜타임스(FT)에 “하나의 장치에 원격으로 (배터리 과열을) 실행하는 것은 기술적으로 가능하지만, 실제 폭발할지는 확실히 알 수 없다”며 “수백 개의 호출기에 동시에 적용하는 것은 매우 복잡하고 정교한 기술을 요구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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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북부 공군기지를 방문한 요아브 갈란트 이스라엘 국방부 장관의 모습/사진=이스라엘 국방부

‘드론 한방’에 전쟁 판세 흔들, 전쟁이 불러온 기술 진화

한편 이번 폭발을 놓고 전문가들은 갈수록 고도화하는 테러 기술에 주목한다. 실제로 현대 전쟁은 신무기의 실험 무대를 방불케할 정도로 양상이 급격히 변모하고 있다. 이 중 게임체인저로 평가받는 무기는 드론이다. 특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현대전은 ‘드론 전쟁’이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드론의 쓰임새가 광범위해졌다.

드론 전술이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우크라이나군이 적극적인 드론 전술을 채택한 이후다. 전쟁 초기만 하더라도 드론은 정찰용으로만 사용됐으나 최근에는 대포 발사용 드론, 제트엔진 드론, 함정 공격용 수상드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로 발전하고 있다. 우크라이나군이 최근 러시아 본토 쿠르스크를 기습 점령할 수 있었던 것도 드론 전력 우위를 활용한 덕이다. 러시아군의 수백억 원짜리전투기와 폭격기조차 드론 공격에 파괴되기 일쑤였다.

러시아 역시 드론을 중요시 여기고 있다. 우크라이나 인터넷매체 유로마이단 프레스에 따르면 우크라이나의 1인칭 시점(FPV) 드론 생산량은 매달 5만 대인 반면, 러시아는 30만 대에 이른다. 러시아는 드론을 이용해 우크라이나 댐이나 에너지 시설, 탱크 등을 여러 차례 파괴한 바 있다.

대규모 시가전이 진행 중인 중동 전쟁에서도 드론 무기를 통한 전투 사례가 지속적으로 늘어나는 추세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의 도발을 선제적으로 파악하고 제압하기 위해 천문학적인 돈을 들여 만든 최첨단 방벽 ‘스마트 펜스’의 원격통제 무기 시스템(RCWS)은 하마스의 ‘취미용 드론’ 공격에 허무하게 폭파됐다. 이스라엘도 드론을 활용한 타격을 늘리고 있다. 지난달 이스라엘군이 헤즈볼라 지휘관 알리 자말 알딘 자와드를 제거할 때 사용한 무기도 드론이었다.

이처럼 드론 기술 혁신이 가속화하는 가운데, 주요국의 발걸음도 빨라졌다. 새로운 기술이나 전술이 도입되면 곧바로 이에 대한 대응 무기를 개발하는 순환이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군사 기술 발전의 동적인 특성을 드러내는 대목으로 비대칭 전력의 진화적인 변화를 나타낸다. 실제로 드론과 대드론(Counter-Drone) 기술의 발전은 전자기기 스펙트럼에서의 우위 확보가 현대전에서 얼마나 중요한지를 명확히 보여주고 있다. 더욱이 이 같은 기술 확산은 국가 간 힘의 균형을 변화시키고, 새로운 형태의 위협을 만들어내는 등 국제 안보 환경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여기엔 상용 드론 기술과 제품의 수출, 군사적 개조·활용 및 민간 기술의 군사 전용 가능성 등도 포함된다.

병력·보급 만으로 승기 잡던 시대 저물었다

전쟁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는 또 하나의 무기는 군사 로봇이다. 군사 로봇의 전쟁 수행 능력은 다양한 핵심 기술에 기반을 두고 있는데, 특히 다중 스펙트럼(Multi-Spectral) 센서 기술은 전장 인식 및 표적 식별 능력을 크게 개선했다. 이는 여러 파장 대역에서 데이터를 수집할 수 있는 기술로, 물체에서 반사 또는 방출되는 에너지를 측정해 환경 및 대상에 대한 정보를 제공한다.

아울러 실시간 데이터 교환 및 원격 조종을 위한 암호화된 통신 체계는 로봇의 작전 수행 능력을 한층 강화시키는 데 일조하고 있으며, 장시간 작전 수행을 위한 고효율 에너지 솔루션과 GPS 교란 환경에서도 작동 가능한 관성항법장치(INS·Inertial Navigation System) 역시 군사 로봇의 생존 가능성과 작전 지속성을 크게 향상시켰다.

군사로봇과 함께 AI 기술도 복잡한 전장 환경에서의 의사결정과 적응력을 재고하는 데 중추적 역할을 하고 있다. 실제 AI 기반 표적 식별 및 정밀 유도 무기의 발달로 인해 부수적 피해를 최소화하면서도 효과적인 타격이 가능해졌다. 이는 현대 전쟁에서 중요시되는 정밀 타격 능력을 크게 개선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이뿐만 아니라 AI는 단순히 타깃 공격을 넘어 전쟁 시나리오를 설계하는 사령관의 역할로도 확대되는 양상이다. 이에 미국과 중국은 AI를 활용한 대규모 워게임을 통해 최선의 전략을 도출하는 실험을 진행 중이다. 병력과 물자만으로 전쟁의 승기를 잡는 시대는 사실상 끝났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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