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상장사 ‘자사주 소각’ 움직임 활성화, 밸류업 프로그램·당국 제도 개선 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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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자사주 소각 공시 수·규모, 지난해 수준 뛰어넘었다
정부 밸류업 프로그램·금융위 제도 손질에 소각 사례 급증
자사주 소각 기피하던 국내 상장사들, 전환점 맞이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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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들어 국내 상장사들의 자사주 소각 규모가 눈에 띄게 증가했다. 주요 기업들이 정부의 밸류업 프로그램 도입에 발맞춰 줄줄이 주주 환원을 강화하고 나선 가운데, 금융위원회가 공시 의무 강화·규제 손질 등 자사주 관련 제도 개선 의지를 드러내며 소각 압박을 더해가는 양상이다.

확대된 자사주 소각 규모

24일 대신증권에 따르면 전날 기준 올해 발표된 자사주 소각 결정 공시 수는 78개(7조1,844억원)에 달한다. 지난해 자사주 소각 결정 공시 수가 64개, 소각 금액이 4조9,325억원 수준에 그쳤다는 점을 고려하면 큰 폭의 증가다. 이와 관련해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올해 금융위가 자사주 관련 제도를 대폭 개선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바 있다”며 “공시 의무 등이 강화될 것으로 전망되는 만큼, 기업들의 자사주 소각 움직임 역시 자연히 활발해진 것으로 풀이된다”고 평가했다.

실제 금융당국은 자본시장법 시행령 개정안을 통해 자사주 관련 제도를 손질하겠다는 뜻을 밝힌 상태다. 개정안의 골자는 일정 규모 이상 자사주를 보유하거나 처분할 때 기업에 공시 의무를 부과하는 것이다. 자사주 보유 비중이 발행주식총수의 5%를 넘을 경우, 기업은 자사주 보유 현황과 목적, 향후 처리 계획을 이사회에서 검토하고 이를 의무적으로 공시해야 한다. 자사주 취득 이후 처분 방식(소각 또는 매각), 주식 가치 희석에 따른 영향 등을 면밀히 확인·공개하는 식이다.

자사주 취득·처분 과정에서 발생하는 규제 차익도 해소했다. 기존엔 기업이 자사주를 직접 취득하는 경우와 신탁을 통해 간접적으로 취득하는 경우에 적용되는 규제가 달랐다. 기업이 자사주를 직접 취득할 때 취득 예정 수량이 계획보다 적을 경우 사유서를 제출해야 했지만, 신탁을 통해 자사주를 취득할 경우 이 같은 규제가 적용되지 않았다. 이에 당국은 상장사가 자사주를 신탁 취득할 시에도 직접 취득과 동일한 규제를 적용받도록 제도를 개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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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밸류업 프로그램’ 영향

일각에서는 정부 밸류업 프로그램이 국내 기업들의 자사주 소각 활성화에 일부분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밸류업 프로그램은 정부가 코리아 디스카운트(국내 증시 저평가) 현상을 해소하기 위해 올해 초 본격 도입한 정책으로, 자사주 소각·배당액 확대 등을 통한 주주 환원 및 기업가치 제고에 중점을 두고 있다.

실제 밸류업 프로그램 도입이 발표된 올해 2월 이후, 주요 대기업과 금융지주를 중심으로 활발한 자사주 소각이 발생했다. 기아는 지난 1월 25일 주주가치 제고 정책의 일환으로 올해 5,000억원 규모 자사주 취득을 완료한 뒤 그중 절반(50%)을 소각하겠다고 공시했다. 신한금융도 지난 2월 올해 1분기 중 1,500억원 규모의 자사주를 취득해 소각하겠다고 발표했으며, 3월 우리금융지주 역시 예금보험공사가 보유 중인 우리금융 잔여 지분을 전량(약 1,400억원) 매입해 소각하겠다고 밝혔다.

같은 달 OCI홀딩스, 메리츠금융지주, SK스퀘어, 크래프톤 등도 자사주 소각에 나섰으며, 4월에는 셀트리온, 신세계 등이 자사주 소각 계획을 밝혔다. 5월에는 효성, 신세계가 자사주 소각 흐름에 동참했고, 셀트리온도 추가 자사주 소각을 통해 밸류업 의지를 드러냈다. 이 같은 기업들의 적극적인 자사주 소각 움직임과 관련해 한 시장 관계자는 “정부의 밸류업 프로그램에 발맞춰 주주 환원을 강화하는 기업들이 점차 증가하는 추세”라며 “지난 7월 발표된 기획재정부의 경제정책 계획에서 밸류업 세제 혜택의 방향성이 구체화된 만큼, 추후 산업계의 (밸류업 프로그램) 참여도 한층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이처럼 주요 기업들의 활발한 자사주 소각 움직임이 지속된다면 자사주 소각에 비교적 소극적이던 국내 시장의 분위기 역시 반전될 수 있다. 한국ESG기준원이 2011년부터 2020년 말까지 코스피와 코스닥에 상장된 2,172개사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해당 기관 자사주 취득에 참여한 기업은 1,418개사(65.3%)에 달한다. 반면 자사주 소각에 참여한 회사는 88개사(4.1%)에 그쳤다. 자사주를 매입한 뒤 주주 환원 외의 용도로 처분한 기업이 다수라는 의미다.

자사주 활용한 기업들의 ‘편법’

지금까지 소각되지 않은 자사주는 지배주주의 지배권을 강화하는 데 편법적으로 활용돼 왔다. 자사주 자체는 의결권이 없지만, 제3자에게 매각되며 ‘자기주식’이 아니게 된 자사주는 의결권이 있다. 자사주 처분 방식에 대한 별다른 규제도 없다. 기업이 자사주를 자유롭게 제3자에게 지급하거나 매도해 의결권을 부활시키고, 지배권 강화를 위한 ‘판’을 짤 수 있다는 의미다.

실제로 인적분할 시 자사주를 이용하면 대주주는 돈을 들이지 않고 기업에 대한 지배력을 높일 수 있다. 인적분할은 기존 주주의 지분율이 ‘새로 분할돼 생긴 회사들(존속회사와 자회사)’에서도 유지되도록 기업을 분할하는 방식이다. 자사주를 갖고 있는 기업이 인적분할을 단행할 경우, 자사주에도 쪼개서 신설된 회사의 신주가 배정된다. 대주주는 자사주에 배정된 신주만큼 신설 회사에 대한 간접적 지배력을 추가로 확보할 수 있는 셈이다. ‘자사주 맞교환’ 역시 지배권 강화를 위해 자주 쓰이는 편법 중 하나다. 자사주를 우호 세력끼리 서로 사고팔면 의결권이 부활하며 일정 수준의 우호 세력을 확보할 수 있다.

이에 시장에서는 자사주 악용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제도적으로 자사주 소각을 활성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국내 기업들의 자사주 활용 행태는 미국 등 주요국과 비교하면 상당히 기형적이었다”며 “밸류업 프로그램과 당국의 제도 개선 움직임을 계기로 시장 분위기가 바뀌길 기대해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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