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과수 “인천 전기차 화재, 외부 충격 가능성 배제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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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전기차 화재 차량 살펴본 국과수, 외부 충격 사실 확인
전기차 리튬이온 배터리, 충격 발생 시 화재로 이어질 가능성
배터리 결함 가능성 고려해 대책 제시한 정부 '난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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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초 인천 청라국제도시의 한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 발생한 벤츠 전기차 화재의 최초 발화 지점으로 차량 하부 배터리 팩이 지목된 가운데, 외부 충격으로 인한 배터리 셀의 손상이 화재 발생에 영향을 끼쳤을 수 있다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분석이 나왔다. 전문가들도 외부 충격에 취약한 리튬이온 배터리(LIB)의 특징을 고려, 충격으로 인한 화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평을 내놓고 있다.

국과수, ‘외부 충격’으로 인한 발화 가능성 조명

26일 인천경찰청 과학수사대에 따르면 최근 국과수는 인천 전기차 화재 사건과 관련해 “차량 하부 쪽 배터리 팩에서 발화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감정 결과를 경찰에 통보했다. 이어 국과수는 “차량 밑면에 대한 외부 충격으로 배터리 팩 내부의 셀이 손상돼 절연 파괴되면서 발화했을 개연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의견도 제시했다.

앞서 경찰은 지난달 3차례에 걸쳐 국과수, 인천서부소방서, 자동차안전연구원 등과 함께 화재 전기 차량의 배터리 팩을 분해하는 등 합동 감식을 벌였다. 조사 당국은 배터리 모듈과 셀을 정밀 감정, 발화 지점 등을 확인하는 데 주력했다. 경찰 관계자는 “국과수 감정 내용을 바탕으로 형사기동대에 전기차 화재 원인에 대한 수사를 이어갈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시장에서는 이번 국과수의 분석 결과로 인해 벤츠 화재 사건의 분위기가 반전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된다. 지금까지는 발화 차량에 탑재된 중국산 배터리의 결함으로 인해 화재가 발생했을 것이라는 추론이 많았다. 화재 발생 차량인 벤츠 EQE350 모델의 배터리 셀이 중국 업체인 파라시스 제품이었기 때문이다. 만약 주행 중 발생한 외부 충격이 실제 화재에 영향을 끼친 것으로 판명될 경우, 벤츠는 화재 책임 부담을 다소 해소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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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튬이온 배터리, 충격에 취약해

전문가들도 국과수 감정과 같이 리튬이온 배터리(LIB)의 특성을 고려하면 외부 충격으로 인해 사고가 발생했을 여지가 충분하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이차전지 분야 전문가는 “리튬이온 배터리는 구조적 특성상 외부 충격과 열에 약하다”며 “국과수의 분석대로 화재 차량에서 외부 충격으로 인한 배터리 셀 손상이 발생했을 경우, 이로 인해 화재가 발생했을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고 말했다.

리튬이온 배터리의 셀은 양극, 음극, 두 극의 접촉을 차단하는 분리막, 이온의 원활한 이동을 돕는 매개인 전해액으로 구성돼 있다. 충전될 때 리튬 이온이 양극에서 음극으로 이동하고, 방전될 때 다시 양극으로 돌아오는 방식이다. 만약 차량 외부에서 충격이 발생해 배터리 모듈·팩이 과도하게 변형될 경우, 배터리 셀 역시 기존의 형태를 잃고 불안정한 양상을 띠게 된다.

배터리 셀의 변형으로 분리막이 파손되면 양극과 음극의 직접적인 접촉으로 인한 내부 단락(internal short circuit)이 발생한다. 셀 내부에 쌓여있는 양극과 음극이 강한 화학 반응을 일으키며 급격한 전압 강하와 온도 상승을 일으키는 것이다. 이 같은 현상을 열폭주(thermal runaway)라고 지칭한다. 열폭주로 인해 배터리 내부의 온도가 제어할 수 없을 정도까지 치솟을 시, 배터리는 여러 부반응을 일으키다 폭발하며 화재를 일으키게 된다.

“정부 대책 의미 퇴색될 것” 우려도

이런 가운데 업계에서는 청라 화재 사고의 원인이 외부 충격으로 규명될 경우 정부가 최근 내놓은 ‘전기차 화재 대책’의 의미가 퇴색될 수 있다는 우려가 흘러나온다. 한 완성차 업계 관계자는 “정부는 사고 차량에 탑재된 배터리의 결함이 화재의 원인이라는 가정하에 각종 배터리 관리 대책을 제시했다”며 “실제 청라 화재 사고의 원인이 외부 충격이라면 정부가 부랴부랴 수립한 대책들은 의미를 잃어버리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실제 행정안전부는 지난 6일 전기차 안전 확보를 위한 ‘전기차 화재 안전관리 대책’을 발표, 정부 차원의 전기차 배터리 관리 강화 방안을 제시한 바 있다. 내년 2월에 시행될 예정이었던 ‘전기차 배터리 인증제’의 시범사업 실시 시기를 올해 10월로 앞당기고, 완성차 기업이 배터리 제조사와 제작 기술 등 주요 정보까지 의무적으로 공개하도록 조치하는 것이 골자다. 사실상 전기차 배터리의 결함 가능성에 초점을 맞춘 대책인 셈이다.

다만 일각에서는 정부가 해당 대책을 통해 제시한 중장기적 전기차 화재 예방‧대응 방안은 화재 원인과 무관하게 유의미하다는 평가도 제기된다. 한 시장 관계자는 “정부는 (해당 대책을 통해) 배터리 내부 단락으로 인한 화재 위험을 줄이기 위해 첨가제와 배터리 팩 소화 기술을 개발하고, 전고체 배터리 기술 개발을 계속하겠다고 밝혔다”며 “이 같은 계획은 충격에 취약한 리튬이온 배터리의 한계 자체를 극복하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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