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로 나선 사전청약 당첨자들 “구제책 마련해 달라” 촉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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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H '가든쇼'에서 팻말 든 사전청약 피해자 비대위
"당첨자 지위 복원과 대책 마련 촉구" 목소리
건설사도 수백억 손실, 정부는 "민간 사정" 일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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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 사전청약 당첨자들이 집회를 열고 있다/사진=사전청약 피해자 비상대책위원회

국토교통부 산하 공공기관인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개최한 행사에서 사전청약 제도 취소에 항의하는 당첨자들이 정부의 책임 있는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사전청약은 정부가 주도한 공적 제도로, 제도에 대한 정부의 보증과 신뢰가 바탕에 있었던 만큼 정부가 법적·사회적 책임을 져야 한다는 주장이다.

민간 사전청약 당첨자들, ‘LH-파주가든’서 집회

28일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LH가 파주시 운정중앙공원에서 개최한 공공정원 박람회인 ‘LH-파주가든’에서 26일 소란이 일었다. 민간 사전청약 당첨자들이 팻말과 풍선, 현수막 등을 들고 난입하면서다. 민간 사전청약 당첨자들은 사전청약 취소에 항의하는 집회를 열었고 운정중앙공원에서는 “국토부는 사과하라”, “국토부는 거짓과 기만을 중단하라”, “책임 회피 말고 대책 마련하라” 등의 구호가 울려 퍼졌다.

이 자리에서 민간 사전청약 당첨자 모임인 사전청약 피해자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는 “우리의 요구는 단순하다. 이 문제에 대해 국토부가 책임을 그만 회피하라는 것”이라며 “사전청약 당첨자 지위 복원과 실질적 대책 마련을 촉구한다”고 요구했다.

비대위 관계자는 “아무 잘못도 없는 사전청약 당첨자들이 당첨 지위를 유지할 수 없다는 국토부 주장은 법적·정책적 근거가 부족하다”며 “단지 민간 계약이라는 이유만으로 책임을 회피하려는 국토부의 태도는 도덕적·사회적 책임을 방기하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국토부는 사전청약 계약서에 사업 취소 가능성이 명시됐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불공정 조항”이라며 “계약법에서 애매한 조항은 계약서를 작성한 측에게 불리하게 해석되는 만큼, 보호 조항도 없이 당첨자들이 사업 취소를 강요받는 것은 불공정 계약”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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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한국토지주택공사(LH)

민간 분양 사전청약 폐지에 이어 공공 청약도 폐지

문제가 된 사전청약 취소는 정부의 제도 폐지에서 비롯됐다. 주택 수요를 분산시켜 시장 과열을 잠재우기 위해 시행됐지만, 본청약까지 이어지지 않는 사례가 늘자 정부는 2022년 11월 민간 분양 사전청약을 폐지한 데 이어 지난 5월에는 공공 사전청약 신규 시행 중단을 발표하며 사실상 사전청약 제도를 없앴다.

국토부에 따르면 민간 사전청약이 진행된 사업장 중 올해만 △인천 가정2지구 2블록 우미린 △경기 파주 운정3지구 주상복합용지 3·4블록 △경북 밀양 부북지구 제일풍경채 S-1블록 △경기 화성동탄2 주상복합용지 C28블록 리젠시빌란트 △인천 영종하늘도시 영종A41블록 ‘한신더휴’ 등 6곳에서 사업이 취소됐다.

이에 LH는 시공사로부터 해당 부지를 반환받은 이후 재공급 공고를 냈으나, 사전청약 당첨 취소자들의 반발에 기존 재공급 계획을 철회하고 현재까지 공고를 내지 않고 있다. LH 관계자는 “민간 사전청약이 취소된 용지에 대해서는 신속하게 주택이 공급될 수 있도록 재매각 또는 공공 전환 등을 두루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분양가 상승률을 최대한 억제하고 주변 시세에 비해 저렴하게 공급하는 것은 공공분양 사전청약”이라며 “민간 사전청약 분양가는 LH에서 조절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국토부도 민간 사전청약은 토지를 매입한 기업에 주택을 공급할 책임이 있고, 취소된 사업지는 사업자가 달라지며 주택 유형과 성격이 바뀌는 만큼 당첨자 지위를 보장할 수 없다고 말했다.

‘패자’만 있는 사전 청약

민간 사전청약이 재도입된 것은 문재인 정부 때인 2021년 8월로, 당초 문 정부의 공공분양 정책인 3기 신도시에 대해 사전청약을 실시했는데 물량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민간분양으로까지 확대했다. 6개월 내 사전청약을 진행하는 조건으로 공공택지를 민간에 싸게 분양한 것이다. 하지만 제도 도입 당시에도 민간 사전청약은 책임 소재가 분명치 않다는 경고가 적지 않았다. 공공 사전청약은 사업성이 떨어질 경우 LH가 책임시공을 할 수 있지만 민간 분양의 경우 사업 취소나 변경 위험으로부터 당첨자를 보호할 장치가 부족하다는 이유에서였다. 특히 건설업체들은 사전청약 단계에서 사업을 중도 포기해도 페널티가 없다.

그런데 건설업계는 사업 취소는 어쩔 수 없었던 선택이라는 입장이다. 특히 시행·시공사 역시 사업 포기로 큰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한다. 실제 주택 사업을 포기할 때마다 건설사는 적지 않은 손해를 보게 된다. 일례로 동부건설은 지난 2021년 LH로부터 낙찰받은 ‘영종하늘도시’ 내 부지를 반납하고 사업을 취소하기로 결정했는데, 회사는 해당 부지를 3,025억원에 낙찰받으면서 3,000억원 규모의 대출을 받은 상황이었다. 그러나 분양 일정이 밀리면서 동부건설은 유입된 분양 대금 없이 해당 부지 관련 월 이자만 11억5,000만원(연 138억원)을 내야 했다. 이런 상황에 대출금 절반을 올해 안에 상환해야 부담까지 겹치자 결국 계약금 300억원과 함께 사업을 포기했다.

건설업계는 LH와의 계약적 불균형 문제도 지적한다. LH로부터 낙찰받은 토지들은 대부분 주택 경기가 좋았던 수년 전으로, 이 때문에 건설사들은 당시 시세 대비 높은 가격에 계약을 맺을 수밖에 없었다. 더욱이 LH와 맺는 토지 계약은 낙찰 후 땅값이 오르면 시세 차익을 보는 구조도 아니다. 사업성이 악화해 택지를 반환하면 LH는 계약금(공급가액의 10%)과 가산금리가 붙은 위약금마저 받아 간다.

하지만 이 같은 피해 속출에도 정부는 민간의 사정이라며 손을 놓고 있다. 현재 정부는 민간 사전청약 당첨 취소자들의 청약통장 효력을 살려주는 것 이외에 다른 구제책을 고려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당첨 자격이 취소된 사전청약 당첨자들에 대해 정부도 안타깝게 생각한다”면서도 “정부가 ‘당첨자 지위를 승계해 주겠다’고 확답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할 수 있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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