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유상 역명 병기 사업’으로 150억 벌었다, 최고 이름값 강남역
서울교통공사, 유상 역명 병기 2021년 재개
재정난에 도입한 사업으로 4년간 150억 수익
강남역·성수역·을지로3가역 등 가장 비싸
서울교통공사가 지하철역에 이름을 함께 표기할 권리를 파는 ‘유상 역명 병기 사업’을 통해 최근 4년간 150억원가량의 수익을 올렸다. 계약 금액이 가장 비싼 곳은 강남역으로 11억원이 훌쩍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역명 병기 판매 사업으로 수익↑
29일 서울교통공사는 지하철역에 이름을 함께 표기할 권리를 파는 ‘유상 역명 병기 사업’을 통해 최근 4년간 149억7,000만원의 수익을 올렸다고 밝혔다. 연평균 37억4,000만원에 해당한다. 사업 시행 이후 현재까지의 역명 병기 대상 역사는 39개역으로 집계됐다.
유상 역명 병기 사업은 개별 지하철역 이름을 쓴 명판에 인근 기업이나 기관 이름을 부역명으로 표기하는 사업으로, 재정난 타개를 위해 2016년부터 시작됐다. 해당 사업은 공사의 전신인 서울메트로와 서울도시철도공사가 합쳐져 서울교통공사가 출범한 뒤에는 이뤄지지 않다가 2021년부터 재개됐다. 입찰 대상은 대상 역에서 1㎞ 이내에 있고, 유흥업소처럼 공익적 차원에서 벗어나는 곳은 제외된다. 기준을 충족한 곳 중 가장 높은 금액을 써낸 곳이 최종 낙찰자가 되며, 계약 조건은 3년으로 1회 3년 연장할 수 있다.
입찰 방식이기 때문에 대체로 탑승객이 많은 역일수록 가격이 올라간다. 상위 5개역은 △1위 강남역(하루플란트치과) △성수역(CJ올리브영) △을지로3가역(신한카드) △을지로입구역(하나은행) △선릉역(애큐온저축은행)이다. 유상판매 사업 입찰에서 최고가로 낙찰된 강남역으로, 하루플란트치과의 계약 금액은 11억1,100만원이었다. 2위와 3위는 성수역의 10억원, 을지로3가역의 8억7,450만원 순이다. 이어 역삼역(센터필드·7억500만원), 을지로4가(BC카드·7억70만원), 명동역(우리금융타운·6억5,466만원), 구로디지털단지역(원광디지털대·4억7,700만원), 압구정역(현대백화점·4억7,300만원) 등이 10위 안에 이름을 올렸다.
높은 홍보 효과에 3억 사용료도 척척
서울시는 응찰금액이 동일한 경우 공공성, 편의성을 고려한 순위에 따라 낙찰 기관을 선정한다. 이 가운데 의료기관은 5개 종류 기관 중 3순위에 해당한다. 공익기관(지명, 관공서, 공익시설, 공공기관), 학교보다 순위가 낮고, 기업체, 다중 이용시설(호텔, 백화점 등)보다는 순위가 높다.
순번상으로는 3순위지만 실제 사용 비중은 기업체 다음으로 많다. 서울교통공사에 따르면 전체 역명 병기 35개역 중 11개역(31.4%)을 의료기관이 쓰고 있다. 역명 병기 중인 서울 지하철역(서울교통공사 운영 역) 3곳 중 1곳에 병원 이름이 들어가 있는 셈이다. ‘○○역 △△병원’을 어렵지 않게 보고 들을 수 있었던 이유다.
매년 4,000만원~1억원씩 내가며 역명을 사용하는 이유는 그만큼 홍보 효과가 좋기 때문이다. 서울교통공사 1~9호선의 경우 한 해(2023년 기준) 승차 인원이 15억4,700만 명에 이른다. 역명에 의료기관이 병기된 역으로 범위를 좁혀도 △학동역 765만 명 △구파발역 751만 명 △발산역 738만 명 △문래역 736만 명 △서대문역 650만 명 △강동역 631만 명 등 600~700만 명에 달한다. 이 정도로 많은 사람들에게 이름이 노출된다면 1억원 이상을 지불할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특히 환자 유치 경쟁이 심한 역세권 병원에는 역명 병기가 최고의 홍보 수단으로 통한다. 실제 역명을 사용 중인 한 병원 관계자는 “인지도 측면에서 확실히 효과가 있기 때문에 비용 부담을 감수하는 것”이라며 “비급여 진료를 많이 보거나 마케팅 비용을 높게 책정하는 병원의 경우 환자 유치에 도움이 된다면 그 정도 금액을 지불할 수 있다”고 말했다.
유찰 후 수의계약 입찰 사례 다수
결과적으로 역명 병기는 서울교통공사와 사업체 모두에 ‘윈윈’이 됐다. 기업은 홍보, 매출, 고객 편의성 등의 측면에서 효과를 봤고, 서울교통공사 역시 적자 타개책으로 내놓은 사업에 기업들이 좋은 반응을 보이면서 백억원이 넘는 매출을 올리게 됐다.
하지만 경쟁 입찰이 유찰된 후 수의계약으로 입찰되는 경우도 허다했다. 서울교통공사에 따르면 2022년 역명 병기 대상기관으로 선정된 20개역 중 16개역(80%)이 수의계약이 이뤄졌다. 2023년에는 14개역 중 11곳(78.6%), 2024년에는 4개역 중 1곳(25%)이 수의계약으로 역명 병기 대상 기관을 찾았다. 수의계약으로 이뤄질 경우 최저입찰가와 근접한 가격에서 낙찰가가 형성된다.
지방자치단체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률(지방계약법) 시행령에 따르면 경쟁 입찰이 단독 입찰로 유찰돼 재공고 입찰을 냈는데도 입찰자가 2인 이상의 유효한 입찰자가 나타나지 않을 경우 수의계약이 가능하다. 코로나19 확산에 따라 도입된 지방계약법 특례는 2020년 7월부터 올해 말까지 적용된다. 이 조항은 단독 입찰로 유찰된 경우 재공고 입찰을 실시하지 않고 수의계약을 맺을 수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입찰자가 한 곳도 나타나지 않아 역명 병기 대상기관을 아예 못 찾는 경우도 적지 않다. 2022년에는 입찰 공고가 나온 44개역 중 24개역(54.5%), 2023년에는 28개역 중 14개역(50%), 2024년에는 10개역 중 6개역(60%)의 입찰이 유찰됐다. 입찰자가 나오지 않은 역 중에는 종각·홍대입구·신사·공덕·시청역과 같은 유동인구가 많은 역도 포함됐다. 역마다 차이는 있지만 최저입찰가가 수억 원에 달하고 홍보 효과가 크지 않다는 점이 흥행 저조 이유로 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