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바 시레루 日 신임 총리 공식선출, 무파벌 중심으로 새 내각 출범
일본 중의원, 새 총리로 이시바 선출, 참의원서 곧 확정
무파벌 10명, 하야시 관방 유임, 외무상·방위상엔 측근들 중용
"韓은 중요 국가" 국익 우선 외교, 한일 협력 관계 순항 전망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일본 자민당 신임 총재가 집권 자민당과 공명당 지지로 과반 표를 얻으며 총리로 지명됐다. 미국 대선과 지역분쟁 등 국제정세의 불확실성이 커진 상황에서 이시바 내각의 출범은 한·일관계는 물론 동아시아 국제관계에 호재로 평가된다.
日 중의원·참의원, 이시바 시게루 총리 선출
1일 일본 중의원(하원)과 참의원(상원)은 임시국회를 열고 지명선거를 통해 이시바 자민당 총재를 총리로 선출했다. 이후 이시바 총리는 신임 내각 각료와 함께 왕궁에서 열린 새로운 총리를 임명하는 친임식에 참석했다. 나루히토 일왕은 이시바 총리에게 “내각 총리대신으로 임명한다”고 말하며 임명서를 전달했다.
이어진 기자회견에서 이시바 총리는 정상외교와 관련된 질문에 “한국 호주 아세안 미국 모두 중요한 국가지만 정상외교에서는 국익을 바탕으로 어떤 성과를 얻을 것인지를 최우선에 둬야 한다”고 답했다. 그는 “미국 대선에서 어느 후보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얘기할 수 있는 상황은 만들어둬야 한다”며 “미·일 주둔군 지위협정을 개정해 이를 미일 동맹 강화로 연결하겠다”고 덧붙였다. 그동안 주장해 왔던 일본에 주둔하는 미군의 법적 특권을 인정한 미일 지위협정 개정과 미국 내 자위대 훈련기지 설치를 재확인한 것이다.
이시바 총리는 이날 총리공관에서 19명의 내각 인사도 발표했다. 일본 정부 대변인 격인 관방장관에는 옛 기시다파이자 자민당 총재선거에도 출마했던 하야시 요시마사 관방장관이 유임됐다. 한일관계에 중요한 인물인 외무상에는 이시바 캠프 선거대책본부장이었던 이와야 다케시 전 방위상이, 방위상에는 나카타니 겐 전 방위상이 각각 기용됐다. ‘국방족’으로 불리는 이들은 역시 방위상을 지낸 이시바 총리의 측근으로 분류된다.
총무상에는 무라카미 세이이치로 전 행정개혁상, 농림수산상에 오자토 야스히로 총리 보좌관, 디지털상에 다이라 마사아키 자민당 홍보본부장 대리, 경제재생상에는 아카자와 료세이 재무성 부대신이 각각 임명됐다. 이들은 이시바 총리가 선거에 입후보했을 때 추천인 20명에 포함된 인물이다. NHK는 과거 파벌 기준으로 무파벌이 10명으로 가장 많고 아소파, 옛 모테기파, 옛 니카이파가 각각 2명이라고 보도했다.
‘의회 해산’ 승부수, 비주류 한계 넘을까
이런 가운데 외교 전문가들은 이시바 총리가 지명 전인 지난달 30일 빠르게 중의원 조기 해산 및 총선 실시 계획을 밝힌 것에 주목하고 있다. 그가 밝힌 계획은 이달 27일 투·개표하는 것이다. 지난달 27일 자민당 총재 당선부터 한 달 이내에 의회 해산, 선거 고시 등을 마무리하는 시간표인 셈이다. 중의원 해산은 총리 취임 8일 만인 오는 9일로 계획했는데, 이는 전후 최단 시간 내 해산 사례다. 아사히신문은 “다음날 총리 취임 예정이라고는 해도 사전 단계에서 의회 해산, 조기 총선을 표명하는 건 이례적”이라고 평가했다.
애초 이시바 총리는 의회 해산 ‘신중론’ 쪽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총리에 대해 “모든 각료가 참석하는 예산위원회에서 정권이 무엇을 목표로 하는지를 국민에게 보여준 뒤 믿음을 얻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총재 선거 기간 라이벌이던 고이즈미 신지로 전 환경상이 조기 해산을 언급했을 때도 “아직 총리가 안 된 사람이 언급할 문제가 아니다”라며 선을 그었다. 이에 현지 언론은 예산위에서 총리와 야당 당수 간 장시간의 1대 1 토론이 가능한 만큼, 11월 10일쯤 선거 개최 가능성이 크다는 쪽에 무게를 실었다.
돌연 앞당겨진 시간표의 배경에는 당내 압력이 작용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새 총리가 야당의 추궁을 받는 예결위를 열어선 안 된다는 요구가 거셌다는 것이다. ‘비자금 스캔들’ 얘기가 다시 뜨거워지기 전에 새 내각 출범의 축포 분위기를 선거로 이어가야 한다는 주장도 많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뿐만 아니라 불륜, 비서 급여 부정 수령 등 잇단 논란에 휩싸였던 히로세 메구미 참의원의 사퇴로 오는 27일 자민당 험지인 이와테현 보궐선거가 예정돼 있는데, 자민당의 현 기세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는 우려도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와 관련해 이시바 총리는 오는 7일 대표 질문, 9일 당 대표 토론회를 열어 국민 앞에서 질의응답 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전자는 사전 정리된 질문에 각료가 답하는 형식이라 질의응답이 오가기 어렵고, 후자는 시간이 45분으로 한정돼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마이니치는 이날 사설에서 “이시바 의원이 오랫동안 여론의 지지를 받아온 것은 ‘당내 야당’으로서 집행부 비판도 마다하지 않는 자세가 있었기 때문”이라며 “국회를 무시하고 해산과 총선을 서두르는 것은 국민의 기대를 저버리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실제 이시바 총리는 당내 기반이 취약한 것으로 평가된다. 그가 총재 선거 1차 투표 때 얻은 의원 표는 총 368표 중 46표에 불과했다. 당선 후 아소 다로 전 총재를 당 최고고문에 앉히며 54명 의원이 속한 유일 존속 파벌 ‘아소파’와 관계를 구축했지만, 한때 당내 최대 파벌이던 ‘아베파’ 의원들과는 관계가 좋지 않다. 아베파 지지를 받은 다카이치 사나에 전 경제안전보장상이 이시바 총재의 당 요직 제의를 대놓고 거절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기시다 정책 승계, 한·일 협력 이어 나갈 듯
한편 이시바 총리 집권 기간에도 윤석열 대통령과 전임 기시다 후미오 총리가 구축한 한일관계 협력 기조는 유지될 것으로 관측된다. 그는 태평양전쟁 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하지 않았으며, 일본의 전쟁 책임 문제를 직시해야 한다고 말하는 등 다른 자민당 내 강경 보수 인사들과는 달리 비교적 온건한 역사 인식을 갖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더욱이 이시바 총리는 이전부터 한·일협력을 중시하고, 재일교포 문제에 관심을 보여왔다. “위안부 문제에 관해서 한국민이 납득할 때까지 사죄해야 한다”고 발언하는 등 일본의 한반도 식민지배와 관련한 사과에 전향적인 정치가로 알려져 있다. 그는 2019년 7월 아베 신조 내각이 취한 대한국 경제 제재에 대해 “지역의 평화와 안정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이시바 총리는 방위청 장관과 방위성 대신을 역임하며 안보 문제에도 정통한 인물이다. 특히 중국의 해양 진출, 북한의 핵과 탄도탄 능력 고도화 등에 대응하기 위해 한국과의 협력을 중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수년간 윤 정부와 기시다 내각은 한·일관계를 개선하고, 바이든 정부와 함께 한·미·일 삼각협력 체제를 강화해 온 만큼 한·일협력의 중요성을 숙지하고 있는 이시바 총리는 삼국 협력 체제를 더욱 발전시켜 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이시바 내각의 정권 안정성은 10월 말에 치러질 중의원 선거와 내년 7월의 참의원 선거에서 자민당이 승리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신내각 출범이라는 컨벤션 효과와 자민당과 공명당의 연립 유지, 경제정책에 대한 재계의 지지, 야권의 분열 등을 감안한다면 무난히 승리할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중장기적으로 안정적인 정국 운영에 성공할지는 불투명하다. 만약 이시바 내각이 단명 정권으로 마감할 경우, 자민당에서 보수 우파가 재등장할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