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가사관리사 2명 잠적, 급여 높은 곳으로 옮겨 불법체류 가능성
법무부 출석 요구에 응하지 않으면 불법체류 분류
짧은 취업 기간, 교육수당 정산 지연 등 원인 추정
비자 7개월에서 3년으로 늘리고 주급제 적용 추진
외국인 가사관리사 시범사업에 참여하는 필리핀 가사관리사 100명 중 2명이 숙소를 무단이탈, 연락이 두절되면서 불법체류자가 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다른 업종보다 근무시간이 짧아 임금이 적고, 고용이 불안한 것이 이탈의 원인으로 추정된다. 이에 서울시와 고용노동부가 필리핀 가사관리사 이탈을 막기 위해 급여 지급을 현행 월급에서 격주 지급 등으로 변경하기로 했다. 또 비자 기간도 7개월에서 최장 3년으로 연장해 안정적으로 한국에서 근무할 수 있게 지원할 예정이다.
사업주, 외국인 근로자 5일 이상 무단결근 시 이탈 신고
1일 노동계에 따르면 지난달 입국한 필리핀 가사관리사 100명 중 2명이 숙소로 복귀하지 않는 상태가 계속되면서 불법체류자가 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달 23일 고용노동부와 서울시에 의하면 해당 가사관리사들은 추석 연휴 시기인 지난 15일 오후 8시쯤 서울 역삼동에 있는 숙소를 이탈한 뒤 연휴가 끝난 18일까지 복귀하지 않았다. 현재 연락이 두절돼 행방을 확인할 수 알 수 없는 상태다. 관리업체는 필리핀에 있는 해당 가사관리사들의 부모에게 연락해 두 사람이 있는 곳을 파악하려 하고 있다.
‘외국인 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고용허가제 외국인 근로자가 5일 이상(영업일 기준) 무단결근하는 등 소재를 확인할 수 없는 경우, 사업주는 지방고용노동청과 법무부에 이탈 신고를 해야 한다. 관리업체는 필리핀 가사관리사 2명이 복귀 최종시한인 지난달 25일까지 복귀하지 않은 것을 확인하고 지난달 26일 고용노동부에 무단이탈에 대한 외국인 고용변동신고를 했다. 법무부는 이들의 소재가 파악되지 않고 출석요구에도 응하지 않으면 최종 ‘불법체류’ 판정을 내릴 것으로 보인다.
업계에서는 가사관리사들의 이탈 원인으로 적은 급여와 고용 불안을 꼽는다. 국내에서는 한 가정이 부담해야 할 비용이 커 가사 부담 경감에 있어 실효성이 떨어질 것이란 지적이 나오지만 외국인 근로자 입장에서는 주40시간의 전일제로 일하지 못하면 제조업에서 종사하는 다른 고용허가제 근로자보다 임금이 적다. 교육기간이었던 8월분 수당이 제때 지급되지 않은 점과 시범사업이 내년 2월이면 끝나 고용이 연장되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도 이탈 이유로 지목된다.
비자 만료 후에도 국내 남아 불법체류자 되는 사례 늘어
필리핀 가사관리사의 무단이탈과 불법체류에 대한 우려는 이미 제도 도입 전부터 제기돼 왔다. 이민정책연구원이 지난해 지난해 불법 체류 상태였던 자진 출국 신고자와 강제 퇴거 대상자 1,06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60.7%는 이탈을 선택한 이유로 ‘한국에서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서’라고 답했다. 특히 필리핀 가사관리사와 같은 고용허가제 비전문취업(E-9) 비자를 받고 입국한 불법체류자 중 71.9%가 ‘적은 급여’를 이탈의 이유로 들었다.
취업기간이 짧은 것도 문제다. 일반적으로 고용허가제를 통해 입국한 외국인 근로자는 4년 10개월간 국내 취업이 허용된다. 하지만 입국 시 목표했던 금액을 벌기 위해 비자 만료 후에도 본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한국에 남아 불법체류자가 되는 사례가 많다. 그런데 필리핀 가사관리사의 취업 비자 기간은 이보다 짧은 7개월이다. 7개월 동안 일해서는 목표 금액을 채우기 힘들다고 판단하기 때문에 입국 직후부터 불법 체류를 선택한다는 것이다.
이에 서울시는 필리핀 가사관리사의 이탈을 막기 위해 급여 지급을 현행 월급에서 격주 지급 등으로 변경하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 고용노동부는 시범사업 종료 후 시행할 수 있는 본 사업을 고려해 비자 기간을 7개월에서 최장 3년으로 연장해 안정적으로 한국에서 근무할 수 있게 지원할 예정이다. 처우 개선에 대한 논의도 이뤄졌다. 가사관리사 상당수가 2개 가정, 많게는 세 가정에서 일하는 만큼 배치할 때 최대한 이동시간을 줄이고 이동 중 머무를 수 있는 쉼터 공간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160시간에 걸쳐 이뤄진 특화교육의 수당 지급과 관련한 논란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교육수당은 가사관리사와 근로계약을 맺은 정부 인증 관리업체가 지급하는데 총액 201만1,440원 중 숙소비와 소득세를 제외한 147만1,740원을 세 번에 나눠 입급하는 방식”이라며 “정산 지연 논란은 수당을 지급하는 관리업체 2곳이 유동성을 이유로 후불 지급하기로 하면서 발생한 문제로 지난달 말일까지 근무한 데 따른 월급은 다음달 20일 지급된다”고 밝혔다.
외국인 가사관리사 최저임금 차등 적용시 불법체류 우려
이번 시범사업을 계기로 외국인 가사관리사의 임금 수준을 둘러싼 논란도 계속되고 있다. 지난달 27일 오세훈 서울시장은 국민의힘 나경원·김선교·유상범 의원과 공동 주최한 세미나에서 “이번 필리핀 가사관리사 시범사업은 최저임금 적용이 불가피하기 때문에 시행 전부터 높은 비용 문제가 계속 제기되고 있다”며 “지금과 같은 비용이라면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했다. 고소득층 가정을 중심으로 신청자가 몰린 것도 이 때문이다. 서울시가 시범사업 이용 가정을 선정한 결과 강남4구(강남·서초·송파·강동)가 59가정(37.6%)으로 가장 많았다.
법무부와의 비자 확대 논의에 대해서는 “외국인 가사관리사 문제와 관련해 E7 비자 대상 직종에 ‘가사사용인’을 추가하자는 서울시의 제안에 법무부는 지나치게 신중하고 소극적 입장으로 일관하고 있다”며 “삶의 현장에서 국민들이 겪는 어려움과 코앞에 닥친 현실에 비하면 법무부의 대처는 매우 안이한 느낌”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오 시장은 “국회와 지자체, 고용노동부 등 관계부처가 함께 참여하는 협의체를 구성하고 종합적인 논의와 대응책을 마련하자”고 제안했다.
이러한 주장에 대해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은 현실적으로 외국인 가사관리사의 임금을 낮추기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 지난달 30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김 장관은 최근 필리핀 가사관리사의 이탈 상황에 대해 “이주 노동자는 국적별로 커뮤니티가 잘 발달돼 있어 어느 동네 어디에 가면 더 많이 받는지 다 꿰고 있다”며 “무단이탈한 가사관리사도 임금이나 조건이 좋은 데로 옮긴 것으로 파악된다”고 말했다. 가사사용인 제도로 외국인 근로자가 입국하더라도 임금이 적어 곧 다른 곳에서 일하려 불법체류자가 될 우려가 있다는 설명이다.
가구별 직접 계약 방식으로 최저임금을 적용하지 않는 대만, 홍콩, 싱가포르 등과의 비교도 적절치 않다는 지적이다. 홍콩에서는 외국인 가사관리사에게 최소 월 77만원, 싱가포르에서 40만~60만원을 지급하고 있다. 한국에서 지급하는 급여의 3분의1에도 못미치는 금액이다. 하지만 해당국의 근로자와 한국에 온 필리핀 가사관리사는 역량에 차이가 크다. 필리핀 가사관리사는 케어기버(Caregiver) 자격증 소지자로 돌봄 교육을 거쳐 인증받은 전문인력이지만 홍콩의 경우 케어기버보다 자격요건이 낮고 교육시간도 적은 도메스틱 헬퍼(Domestic helper)로 분류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