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가리도 무너진 저출산 대책, 돈 만으로는 안 된다는 것 증명됐다
자녀 3명 낳으면 대출 전액 탕감해 준 헝가리도 출산율 저하
육아휴직, 자금 지원 등 유럽 내 대부분 정책도 실패로 돌아가
전문가들 "보다 근본적인 해결책 찾아야 된다는 것 증명된 셈"
유럽 각국이 막대한 금전적, 제도적 지원을 통해 출산율 높이기에 나섰으나 결국 다시 하락세로 접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헝가리는 국가 중산층 연봉의 3배에 달하는 대출을 무이자 혹은 지원금 형태로 제공했고, 노르웨이는 1년 이상의 육아 휴직을 보장해 줬지만, 결국 출산율 저하를 막지 못했다.
‘모범사례’였던 헝가리도 출산율 저하 못 막아
14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헝가리 여성 1인당 합계출산율은 2021년 1.59명에서 2022년 1.52명, 2023년 1.51명으로 감소했다. 올해 8월까지의 출생아 수는 전년 같은 기간 대비 10% 감소한 5만1,500명에 그쳤다. 그간 헝가리는 막대한 자금 지원을 통해 출산율 문제를 극복한 대표적인 사례로 지적됐으나 출산율 저하 폭이 줄어든 것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세계적으로도 저출산 대책을 재검토해야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헝가리는 지난 1975년부터 합계출산율이 감소하기 시작해 2011년에는 1.23명으로, 당시 기준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헝가리 정부는 출산율 하락세를 반전시키기 위해 2015년부터 부부가 새 주택을 구입할 경우 보조금·세액 공제·이자 감면 등을 통해 자녀 수에 따라 최대 5만 달러(약 7,000만원)를 지원했다. 이는 당시 헝가리 평균 연봉의 3배가 넘는 금액이다. 지난 2015년 기준 헝가리의 1인당 국민소득은 연간 12,717달러, 2022년 기준은 연간 18,390달러(약 2,500만원)다. 형가리는 직접 지원금 외에도 주택 지원을 포함해 △패밀리카 보조금 △난임부부 지원 △아동수당 등 가족 정책에 국내총생산(GDP)의 5% 이상을 쓰고 있다.
정책 수립 논의 시점부터 회복세를 보였던 합계출산율이 2021년 들어 최근 10년 내 최대치인 1.59명까지 올라가자 정책의 효과에 대해 각국의 관심이 집중되기도 했으나, 다시 2022년부터 하락세로 돌아서면서 자금 지원만으로는 부족했다는 지적이 대두되고 있다. 헝가리 내에서는 출산율 하락의 원인으로 ‘중산층 마자르인 가정에만 집중된 대책’이라는 점을 지적한다. 어느 정도 경제적 여건이 뒷받침되는 가정만 대출 지원과 세액공제 등의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민자 가정, 유럽 지역 내 타민족 가정 등에는 혜택이 돌아가지 않는 점도 지적받는 대목이다. 중산층과 빈곤층의 격차를 키우고, 헝가리 내의 인종차별을 확대하는 데 일조했다는 따가운 비판이 쏟아진다.
1년간 육아휴직 보장했던 노르웨이도 출산율 저하 중
유럽 지역에 비금전적인 육아휴직을 지원했던 국가들도 출산율 저하를 피하지 못하고 있다. 2009년 1.98명이었던 노르웨이의 합계 출산율은 지난해 1.4명까지 하락했다. 자녀가 3명 이상인 45세 여성의 비율도 2010년 33%에서 지난해 27.5%로 줄어들었으며, 초산 연령도 높아지고 있다. 같은 기간 첫 아이를 낳은 여성의 평균 연령은 28.1세에서 30.3세로 상승했다.
노르웨이는 수십 년 동안 세계 최고 수준의 가족 정책을 시행해 왔다. 첫 아이를 가진 부모는 약 1년간 전액 유급 휴가를 받거나 80% 급여로 14개월을 쉴 수 있으며, 아빠는 최소 3개월의 육아휴직을 보장받는다. 또한 엄마는 직장에서 최소 1시간 동안 모유 수유나 유축 시간을 보장받는다.
노르웨이 아동가족부 장관 키에르스티 토페는 “사람들이 아이를 적게 낳는 이유를 정확히 말하기 어렵다”며 출산율 하락의 원인을 분석하는 데 어려움을 나타냈다. 이에 따라 노르웨이는 지난 8월 처음으로 저출산위원회를 설립해 출생률 감소의 원인을 연구하고 있다. WSJ은 인구학자들의 의견을 인용해 “출산 기피 현상은 단순히 경제적 이유 때문이 아니라, 근본적인 문화적 변화”라고 분석했다.
저출산 극복, 근본적인 해결책 다시 찾아야
인구 전문가들은 헝가리 및 노르웨이의 사회 실험 실패와 한국의 저출산 대응 전략 실패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지적한다. 자금 지원만 해 주면, 육아 휴직만 보장해 주면, 아동 보육만 해 주면, 등의 일편향된 관점이 문제 해결을 어렵게 만드는 원인 중 하나라는 것이다. 근본적으로 왜 결혼과 육아를 기피하는지에 대한 원인 분석이 이뤄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해외에서 성공한 사례나 근거 없는 논리만을 바탕으로 집행된 정책들이 성공하기는 쉽지 않다는 설명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이미 젊은 세대의 사고방식이 바뀐 데다, 피임 도구의 발달 등에 미뤄볼 때 출산을 장려하는 전략 자체를 포기해야 한다는 논리도 제시한다. 인구 축소를 받아들이고 줄어든 인구를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데 예산을 써야 한다는 것이다. 김상훈 국민의힘 의원이 국토교통부와 한국감정원, 통계청으로부터 받은 ‘2016~2020년 가구주 연령대별 서울 아파트 PIR’ 자료에 따르면 △1960년~80년대 사이에 가정을 꾸렸던 베이비 붐 세대가 내 집을 마련하는 데 걸리는 노동 시간 △1980년대 이후 세대가 내 집을 마련하는 데 걸리는 시간 △2000년대 이후 세대가 내 집을 마련하는데 걸릴 것으로 예상되는 시간이 각각 9.5년, 15년, 24년으로 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내 집 마련에 걸리는 시간이 늘어나는 만큼 가정을 꾸리는 것을 포기하고 다른 활동에 노력을 쏟아붓는 비중이 가파르게 늘어나고 있다는 분석이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이혼 시 재산 분할에서 불리함을 인지한 남성들의 결혼 기피, 결혼 생활 자체가 여성에게 가중하는 압박 등의 사회 문화 및 제도적인 문제들을 개혁해야 한다는 논리도 꾸준히 제시된다. 여기에 헝가리에서 결혼과 출산이 정부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일부 계층에게 국한돼 버린 탓에 출산 지원 정책이 반쪽 정책이라는 지적을 받는 것처럼, 현재의 국내 출산 지원 정책도 출산과 육아가 가능한 일부 계층에만 국한된 상태라는 비난도 뒤따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