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력조정’ 논란 하루 만에 종결, KT 노사 ‘전직 지원금·희망퇴직 지원금’ 상향 합의
KT 노사, 한 차례 결렬 후 17일 인력개편안 합의
근속 10년 이상 전출자 전직 지원금 20%→30%
희망퇴직금도 최대 1억원 상향 조정
대규모 인력 재배치 계획으로 갈등을 빚었던 KT 노사가 빠르게 합의점을 도출했다. KT가 자회사 전출 조건을 상향하고 퇴직금을 1억원가량 더 지급하는 등 노조 측의 요구안을 일부 수용하며 한발 물러난 모양새다. 이에 제2노조인 KT새노조가 노사 협의에 반발하며 단체행동을 예고했다.
KT 노사, 인력구조 개편 합의 도출
17일 업계에 따르면 전국 KT 노조는 전날 김영섭 대표를 만나 인력 재배치와 관련한 합의 조건을 전달했다. 노사는 근속 10년 이상 자회사 전출자에게 KT에서 받던 기본급의 70%, 전직 지원금 20%를 주려던 계획에서 전직 지원금 30%로 상향하는 조건에 합의했다. 또 자회사 전출자가 받는 복지 혜택을 KT 본사와 유사한 조건으로 유지하는 안과 촉탁직 직원 근무를 기존 2년에서 3년 보장하는 방안에 합의했다. 특별희망퇴직금도 당초 계획한 규모에서 확대해 직원당 최대 1억원을 더 지급하기로 했으며, 전출 또는 희망퇴직 목표 인원수도 문건에서 삭제했다.
KT 관계자는 “이번에 시행되는 KT의 인력 구조 혁신은 효율화가 필요한 일부 직무를 재배치해 보다 유연하고 신속한 업무 수행이 가능한 환경을 만드는 것이 목표”라며 “특히 직원에게 다양한 선택권을 부여하고 합리적인 수준의 처우 및 보상과 함께 고용 연장의 기회까지 주어지도록 하는 새로운 인력 구조 혁신 모델”이라고 설명했다.
이를 두고 소수 노조인 KT새노조는 양측을 향해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KT새노조는 인력 재배치에 따라 통신 대란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점을 강조했다. KT새노조는 이날 성명서에서 “직원들과 노동계가 강력하게 반발했고, 국회에서도 반드시 폐기해야 한다고 경고했던 구조조정 계획이 결국 노사 합의라는 명분으로 통과됐다”며 “경영진과 이사회는 아현사태가 반복될 우려가 큰 결정을 내린 책임을 전적으로 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인력 재배치, AI 투자 위한 ‘비용 절감’ 의도
KT 노조 측이 대규모 단체행동에 나선 건 사측이 10여 년 만에 꺼내 든 구조조정 카드에서 비롯됐다. 앞서 KT 이사회는 지난 15일 신설 자회사 2곳(KT OSP·KT P&M)을 설립해 본사 네트워크 인력 3,800여 명을 이동시키는 내용의 ‘현장 인력구조 혁신 방안’을 의결했다. 여기에는 특별희망퇴직을 함께 실시해 총 5,700여 명의 본사 인력을 재배치한다는 계획이 담겼다.
이는 전체 직원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규모로, KT OSP는 관련 직무 담당자 4,400명의 77%에 해당하는 3,400명을, KT P&M은 420명의 90% 수준인 380명을 추려낼 예정이다. 상권영업·법인가치영업, 현장지원 업무(760명)는 비효율 사업으로 판단해 폐지하기로 했다. 자회사로의 이동을 원하지 않는 경우 희망퇴직을 시행하기로 했는데, KT는 근속연수에 따라 최소 165%에서 최대 208.3%까지 퇴직금을 지급한다는 계획이었다.
이에 노조는 즉각 반발하는 성명서를 발표하고 전날 오후 광화문 KT 사옥에서 전국 간부진 280여 명이 참여하는 단체행동에 나섰다. 노측 관계자는 “회사 측은 ‘업무 효율화’라고 하지만 이 단어는 3년 전부터 나온 이야기”라며 “당시에도 다수 직원이 고객관리(CM)로 발령을 받았다. 그런데 이제 와서 다시 구조조정을 한다는 것은 김영섭 대표가 KT에 대한 큰 비전 없이 가장 쉬운 방법으로 타깃(목표)을 처리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치권·노조 압력 이중고
일각에서는 김 대표가 인공지능(AI)에 사업 역량을 집중하기로 하면서 갑작스럽게 구조조정을 추진하는 것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실제 김 대표는 지난해 8월 취임 이후 줄곧 ‘AICT 기업으로의 전환’을 강조해 왔다. 이를 위해 최근 마이크로소프트(MS)와 AI·클라우드 분야에서 2조4,000억원 규모 파트너십을 발표하는 등 조 단위 투자를 시사하기도 했다.
김 대표는 취임 당시 “인위적인 구조조정은 없다”고 약속했으나 AI 등에 투자가 필요한 상황이 되자 대규모 구조조정 카드를 꺼내 든 것으로 보인다. 이를 두고 업계에서도 혁신을 위한 몸집 줄이기가 불가피하다는 견해가 적지 않다. 한때 3만 명이 넘는 임직원이 다녔던 ‘공룡 KT’는 대규모 구조조정을 거쳐 2만 명 이하로 몸집을 줄였지만 올 1분기에 KT가 인건비로 지출한 비용은 1조1,009억원으로, 지난해 동기 대비 3% 상승했다.
다만 정치권에서는 KT의 대규모 구조조정이 인프라 관리 역량 약화로 이어지면 2018년 아현지사 지하 통신구 화재와 같은 통신대란이 재발할 수 있다고 우려가 팽배하다. 이에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과방위)는 오는 25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종합감사에서 김 대표를 불러 이번 구조조정에 대해 집중 질의할 예정이다.
이훈기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KT 대주주가 현대차그룹으로 바뀌자마자 대규모 구조조정 계획을 들고나왔다”며 “구조조정을 철회하지 않으면 과거 아현사태와 같은 통신대란이 발생할 우려가 커지는 만큼 국정감사에서 이 문제에 대해 집중 질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이용우 더불어민주당 의원 역시 “감축하려는 노동자들이 담당하는 업무를 KT가 맡지 않고 자회사 또는 외주화하는 것이 적절한지 심각한 의문이 든다”며 “노동자들의 희생을 바탕으로 하는 기업 경영은 불법 경영이나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해 안정상 중앙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겸임교수는 “민영화된 지 20년이 지났음에도 정권이 바뀔 때마다 ‘주인 없는 대기업’인 KT는 혼란과 수난을 겪어왔다”면서 “KT를 외풍에 흔들리지 않는 기업으로 만드는 건 현 대표의 중장기적 과제인데, 인력 구조조정 때문에 또다시 정치권의 압력에서 자유로울 수 없어 보인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