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포럼] 쌀 부족 사태 부른 일본 정부의 ‘정치적 계산’과 ‘소통 부재’
일본 쌀 부족 사태, 일 정부 ‘식량 안보 정책’ 결함 노출
자민당 지지층인 농민들 위한 ‘정치적 셈법’이 문제 확대
비축량 충분한데 국민에게 알리지도 않아
[동아시아포럼] 섹션은 EAST ASIA FORUM에서 전하는 동아시아 정책 동향을 담았습니다. EAST ASIA FORUM은 오스트레일리아 국립대학교(Australia National University) 크로퍼드 공공정책대학(Crawford School of Public Policy) 산하의 공공정책과 관련된 정치, 경제, 비즈니스, 법률, 안보, 국제관계에 대한 연구·분석 플랫폼입니다. 저희 폴리시 이코노미(Policy Economy)와 영어 원문 공개 조건으로 콘텐츠 제휴가 진행 중입니다.
올여름 일본의 쌀 부족 사태는 소비자들과 시장을 혼란에 빠뜨렸을 뿐 아니라 일본 정부의 ‘식량 안보 정책’(food security policy)이 가진 결함까지 노출했다. 지난해 이상 고온 및 수요 증가로 발생한 단기 공급 부족이 품절 사태와 가격 폭등으로 확대되면서 정부의 시장 안정화 역량에 대한 의구심이 짙어진 것이다. 지속적인 수요 감소 상황에서 일시적으로 일어난 공급 부족에도 적절히 대응하지 못한 이번 사태는 정부가 정치적 영향을 고려해 소비자보다 생산자 이익을 우선시한 점과 명확한 소통을 통해 국민을 안심시키고 혼란을 수습하지 못했다는 면에서 되돌아볼 필요가 충분하다.
일본 쌀 부족 사태, 일시적 ‘수요-공급 불균형’으로 발생
일본에서는 올여름 쌀을 구하는 것이 ‘하늘의 별 따기’ 수준이었다. 지난 6월부터 쌀 공급이 불안정해지더니 8월 초부터는 일본 전국 대형마트와 슈퍼마켓의 쌀 매대가 텅텅 비기 시작했다. 일본 쌀 부족 사태는 생산량 자체가 적정 수준을 기록한 상황에서 발생했는데, 폭염 및 이상 고온으로 고품질 쌀이 줄고 저품질 쌀이 늘어나 유통 과정에서 기준에 못 미치는 쌀이 더 많이 걸러지며 전체 공급량이 감소하게 된 것이다.
반면 수요는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관광 산업의 성장과 8월 미야자키(Miyazaki) 지진에 이은 난카이 트로프(Nankai Trough, 일본 혼슈 남쪽에 위치한 거대 해곡)에서의 대지진 가능성에 대한 일본 기상청(Japan Meteorological Agency) 예보로 사재기가 증가한 것이 원인이었다. 이러한 요인들이 결합해 단기간의 수요-공급 불균형을 일으켰다.
사실 일본의 쌀 공급은 장기간에 걸친 소비 감소로 지속적으로 줄고 있었다. 1962년 118kg이던 1인당 쌀 소비량은 2022년에 51kg으로 절반 이상 줄었고 생산량도 이에 맞춰 1967년 1,430만 톤에서 2022년 730만 톤으로 감소했다. 다만 1971년에 도입된 정부 정책은 생산량 통제를 통해 높은 가격을 유지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고, 이로 인해 일본 쌀 시장은 작은 공급 차질에도 취약성을 드러내게 됐다.
자민당 지지층인 농민들 이익 고려해 ‘재고 안 풀어’
1993년 흉작과 이로 인한 쌀 부족을 경험한 일본 정부는 이후 쌀 재고를 늘려 91만 톤에 이르는 충분한 비축량을 보유한 상태다. 그러나 정부는 쌀 공급이 수요에 미치지 못하는 것을 보면서도 재고를 풀지 않았다. 규정상 대규모 또는 연속적인 흉작에만 사용하게 돼 있다고 하지만 정치적 계산이 포함된 결정이라는 사실은 부정하기 어렵다.
선거를 앞두고 집권 자민당의 핵심 지지 기반인 쌀 생산자들의 이익을 보호하려 한 것인데, 비축분을 풀어 쌀 가격을 낮출 경우 소비자들에겐 좋은 일이지만 농민들과 농업 협동조합(agricultural cooperatives)에는 해가 되는 상황이었다. 당시 자민당 총재 및 일본 총리 선거를 9월 말, 중의원(House of Representatives) 선거를 10월 말에 앞두고 있던 일본 정부는 핵심 유권자인 농민들의 이반을 불러올 쌀 비축량 반출을 고려 대상에서 제외함으로써 국민 혼란을 가중시키는 선택을 한 셈이다.
이에 쌀 생산자 및 유통업자들은 이번 쌀 부족 사태로 일시적인 이익을 볼 수 있었다. 10월 수확기를 앞두고 쌀 수요가 급등하며 햅쌀 가격이 전년 대비 30~40% 올라, 쌀 유통을 담당하는 농업 협동조합의 단기 수익이 급등했을 것으로 예측된다. 다만 이는 장기 수익에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 일본의 쌀 소비는 지속적으로 줄어 2040년이면 375만 톤까지 떨어질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일시적 부족 사태와 가격 인상이 잠잠해지면 시장은 다시 공급 과잉 상태로, 쌀 가격은 장기적 하락 추세로 되돌아가 가격 하락을 막으라는 정치적 압력만 거세질 것이 뻔하다.
‘재고 비축량’과 ‘사태 해결 의지’만 밝혔어도 혼란 없었을 것
쌀 부족 사태에 대한 정부의 대응 실패는 국민에 대한 소통 부재에서 기인했다고도 할 수 있다. 쌀 부족 사태가 일시적인 현상이었음에도 일본 정부는 충분한 양의 재고를 비축하고 있다는 점과 혼란을 해결할 능력이 있다는 점을 국민에게 명확히 알리지 않았다. 정부가 쌀을 비축하고 있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국민이 많았다는 것이 문제의 본질을 잘 보여준다.
게다가 올해 5월에 개정된 ‘식량, 농업 및 농촌에 관한 기본법’(Basic Law on Food, Agriculture and Rural Areas)은 식량 안보에 높은 우선순위를 두고 ‘식량 생산’ 및 ‘비상 상황 시 충분한 식량 공급’을 강조하고 있음에도 일본 정부는 이번 사태 동안 주어진 의무를 다하지 못했다. 비축량을 풀거나 비축량에 대한 정확한 정보만 제공했어도 국민을 안심시켜 불필요한 혼란을 막을 수 있었음에도 말이다. 식량 안보는 단지 충분한 재고를 비축한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비상시에도 정부가 식량 공급을 책임질 능력이 있음을 국민에게 확신시킬 수 있어야 가능하다. 비교적 심각하지 않은 공급 부족이 체계적 대응과 소통 부재로 큰 혼란을 야기했다는 점에서 일본 정부는 분명한 교훈을 얻어야 한다.
또한 일본 정부는 식량 안보를 위해 생산자의 이익과 소비자의 권익을 조화시킬 방법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한다. 그간의 정부 정책은 농업 생산자 보호에만 우선순위를 두면서 소비자 신뢰와 시장 안정성을 과소평가한 측면이 분명 존재한다. 따라서 앞으로의 정책은 장기 수요 대응과 함께 단기적 시장 혼란에 대한 대처 방안도 강화할 필요가 있다. 여기에는 충분한 비축량 보유에 그치지 않고 재고를 반출해야 하는 시기와 상황을 구체적으로 명시하는 일도 포함된다. 아울러 국민들이 상황을 정확히 이해하고 정부의 노력과 조치를 신뢰할 수 있도록 소통 방식도 개선해야 한다. 일본 농업 분야가 장기적으로 유지되려면 생산자뿐 아니라 소비자의 이해도 포용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원문의 저자는 혼마 마사요시(Masayoshi Honma) 아시아 성장 연구소(Asian Growth Research Institute) 교수입니다. 영어 원문 기사는 Japan’s rice crisis shows the price of faulty food security policy | EAST ASIA FORUM에 게재돼 있습니다.